"60년 4.19..2005년에 되새기는 4월"

평화뉴스
  • 입력 2005.04.1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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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 보기 20>
...“우리 역사의 공동체적 꿈은 어디에 있는가”

4월이다.
한 때 온 나라가 가슴벅차하던 4.19혁명이 있었던 4월이다. 가난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어두운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던 시퍼런 눈을 부릅뜬 젊은이들의 기개가 살아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신을 곱씹듯 되살리며 사노라면 언젠가 올 ‘아름다운 이 땅’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한 많은 젊은이들이 배출된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4월, 오늘의 4월은 그저 따스한 봄빛과 파릇파릇한 실록만이 아른거리는 “역사적 지층”을 잃어버린 4월인 듯 보인다. 이젠 젊음의 지성들에게 저항할 특권이 있다는 의미가 그저 교과서적인 언술정도로나 들린다.

정부가 앞장서서 경제 살리기와 벤처기업 육성을 경제주요정책으로 삼고 있는 요즘, 대학생활을 무엇보다도 영어공부와 취직시험에 할애해 치열한 취업생존경쟁을 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눈엔 그 꿈과 이상을 ‘물질화’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주변을 느끼기보다 직업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신경끄고 살기로 한 모습을 보면서, 청년시절에 사회와 역사를 고민하고 가난한 이웃과 동참하고자 한 젊은이들의 치열한 열정이 그래도 있었던 4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

한동안은, 아마도 식민주의, 민주주의, 분단과 통일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강하게 느끼던 시대를 뛰어넘어 세계화의 시대, 더 나아가 보편화의 세계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느끼는 것은 물질적 삶의 풍요만이 문제가 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과학과 기술의 혁명만을 희망과 진보로 이야기 하고, 마치 우리의 이상을 물질화하는 속에 가장 인간화된 미래가 있다는 착각을 던져주기도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지배적인 ‘경제발전’의 열풍속에서, 또 다시금 ‘쉬지 않고 뛰지 않으면 죽는다’는 조급성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우리의 경제지배적 패러다임 속에 이제 우리는 우리 역사의 공동체적 꿈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에도 번역돼 있는 “희망의 원리”(Das Prinzip der Hoffnung)를 쓴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1977)라는 동독출신의 철학자가 있다. 블로흐는 나찌때 독일을 떠나 미국서 생활을 했으며 1948년 동독에 다시 돌아와 강단에 서서 가르치다가, 1961년 서독에 강연으로 나왔다가 베를린장벽이 세워지자 귀국하지 않고 그대로 서독에 눌러앉은 철학자이다. 좌파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사회주의와는 그 이상이 맞질 않았다.

그의 철학의 핵심에는 항상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희망"은 “아직 있지 않은 것(Noch-Nicht)”것이라고 그의 책에서 기술한다. “나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될 것이다”라고도 인간의 유토피아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적어놓았다. 그는 역사는 희망의 자기실현과정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의식할 때 말이다. 블로흐에게 이성은 희망없이 실현될 수 없고 희망은 이성없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격변기의 중심에 서있다.
‘동북아 중심론’을 공언하지만 약육강식의 국제적 세력관계속에 이기주의적 패권경쟁에 휘둘릴 가능성이 산재하며, 이웃이라고 있는 일본은 우리 주변의 동북아구조를 더 경색되게 만들고 있고, 남북관계의 난항도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들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사건들이 많다. 사회적 불안도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희망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 4월에는, 불길한 전망을 넘어 여전히 괴로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실천해낼 살아있는 매개체도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역사’를 읽고 정의를 말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삶을 걱정하고 이론화 해가는 지성인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강대국의 패권경쟁속에서 이러저러한 장단맞추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점검해보고, 총체적이고 거시적이면서도 기본적인 안목을 키우며, 민주주의적 공동체의 이상을 책임있게 일궈내고자 하는 젊은이의 “희망”과 구체적 실천은 여전히 필요한 시대이다. 그래야 다시금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헛발질을 안할 것이다.

탈산업사회, 탈이념사회라고 말하는 요즘도 여전히 이 세계는 초강대국의 거대한 장기판인지도 모른다. 거기서 놀아나게 될 위험을 줄이는 방법은, 역사적 상처의 기억상실증에서 벗어나 책임있는 생각과 말, 행동을 할 줄아는 사람들이 ‘지구촌’의 지평에서 움직이는 것일 것이다. 여기에 젊은이들의 희망에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 지난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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