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참여'의 가치마저 저버렸나?"

평화뉴스
  • 입력 2007.03.3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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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보기]...
"참여의 비효율이 비참여의 효율보다 훨씬 교육적이다"

여성복지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한번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한 유명칼럼니스트가 쓴 글에 있는 내용이었는데, 최근의 대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내용인 즉은, 핵전쟁이 나면 숨을 수 있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여섯 명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다음의 직업을 가진 열명의 사람이 있다: 수녀, 정치인, 가수, 농부, 물리학자, 창녀, 가수, 교사, 맹인 그리고 본인. 그럼 여러분들 같으면 누구를 살리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이들에게 내걸은 조건은 조를 짜서 의견을 모으되, 살리는 경우 그 근거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학생들은 열심히 토론하였고, 선택도 다양하게 나왔지만 그 선택의 기준은 큰 차이가 없었다.

학생들 의견의 대표성은 없지만, 발표시간에 자신있게 발표했던 “정신가출조”(정신이 가출했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보다 창의적이고 심도있는 사고를 하기 위해 만든 3년의 역사를 가진 팀명이란다)의 설명을 인용해 보자:

한 조원이 먼저 “가장 현실적인 제안”을 했단다. 동굴앞에 선을 긋고 달리기로 순위를 정하는 방법이다.
현 사회는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는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이 선택되도록 게임의 룰을 정하자는 제안이었고, 처음엔 조원들이 웃었지만 모두 공감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다시 토론을 벌인 결과, 선택된 사람은, 만장일치로 본인 (이것은 어느 조든지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은 맹인, 정치인, 수녀, 물리학자 순으로 6명이었다. 그런데 선택된 사람의 직업을 보면 이 “정신가출조”는 다른 조들의 경우와 약간 달랐다. 다른 조의 경우 정치인이 1순위로 퇴출대상이었으며 다음으로 교사나 가수, 맹인, 수녀 등이 퇴출대상으로 거론되었는데, 이 조는 맹인이 2순위로 선택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정치인이 퇴출대상이 된 것은 요즘하는 행태들을 보면 충분히 상상이 가는 결정이며 교사, 가수, 맹인, 수녀 모두 수긍이 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맹인이 선택된 것은 내게는 매우 매혹적인 결정이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답인 즉은, 맹인은 시각의 기능이 떨어지지만 후각과 청각, 촉각 등이 일반인 보다 매우 발달되었을 것이므로 어차피 컴컴한 동굴안에서의 생활에서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여성복지를 강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소외층 얘기나 동정, 배려의 얘기 정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학생들의 선택의 기준은 생존을 위한 “유용성”과 실리였다.

질문을 던진 필자의 마음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아마 생면부지의 독자분들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온 사회가 기업사회로 변하고, 성장이데올로기에 의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이 잠식되어 가는 처지이니 학생들 탓만 할 수도 없다. 허기야 그동안 구조조정이든, 감량경영이든, 정리해고든 선진경영의 과녁은 모가지 자르는 것인데 여기 당할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회사내부의 솎아내는 것으로는 부족해 인수합병을 통해 뭉텅뭉텅 잘라내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느니, 한국배가 침몰할 수가 없다느니 하면서 명분을 대는데 어찌 거역하겠는가. 온 사회가 이러니 학생들보고 뭐라 하는 것은 쇠귀에 경읽기다.

사람이 돈벌이로만 보이고, “해고공포”가 가장 큰 경영도구이며, 능력이 있는만큼만 일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받고 있는 현실, 이 현실이 세계화속에서의 이길 수 있는 자본주의경쟁력의 키워드라면 우리가 구태여 기를 쓰고 배워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횡포에 분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류에서 이탈할 수 없다고 하면 해결방향은 자명하다.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며, 그 영향을 꼼꼼하게 점검해보고, 공개적으로 그 영향을 받을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최대한의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이러한 절차성을 비효율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참여의 비효율은 비참여의 효율보다는 훨씬 교육적이며, 또한 “지속가능한, 정의로운, 효율적인” 시장을 만듦을 북유럽의 사민주의는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고위급회담을 거쳐 한미 FTA 협정을 마무리짓겠다고 공언한다.
지난 해부터 이미 주말마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도심을 메운다.
민주주의 ‘참여’의 가치를 높이 산 ‘참여정부’. 이 북새통을 “냉하게” 들여다보는 시선마저 거두었는가 싶다..

[김재경의 세상보기 30]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kgklan@kornet.net)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7년 3월 26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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