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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희망을 만들어 주세요”

평화뉴스
  • 입력 2006.01.06 13:23
  • 수정 2025.09.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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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보기 25]...
“정직한 분노와 우직한 실천 만이 희망을 만듭니다”


엊그제 대구 서문시장의 화재로 직간접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서민들에게는 지난 연말과 새해가 너무도 절망적일 것이다. 그럭저럭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정도였을텐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도 이런 경우는 없을 듯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도 밝혀지고 추스려지겠지만, 다시 한번 우리 모두 고통을 나눠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사실 새해에는 기본에 충실한 “튼실한” 희망이 우리에게 자리했으면 하는 바램을 오래전부터 가졌었다. 필자는 황우석교수의 사태를 볼 때에도 아마도 우리사회의 돌파구가 될 ‘희망’이 부재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믿고 기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수출은 호조라고 하는데 경기는 풀리지 않고, 일은 하고자 하는데 고용시장은 여전히 비좁고, 투기세력은 열심히 치고 빠지는데 내집 마련은 너무도 요원하고. 뿐만 아니라 미래에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보니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아야 하고, 이웃 농민들은 이제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고...여전히 결식아동은 줄지 않고 있고 양극화현상은 매일 언론의 화두가 되고...


에비문화...우리 시대의 ‘에비’는?

한 원로 교수가 예전에 에비문화를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 어렸을 적에 아기가 보채면 할머니나 어머니는 “에비 에비”하면서 “저기 에비온다~”라는 협박을 해서 아기울음을 그치게 한 것 기억하실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보다 착하고 어리숙하기 그지없었던 우리(?)는 제법 그 협박에 가까운 처방에 주늑이 들어, “에비~”하면 괜시리 무서워하면서 “이유있는” 울음을 그치곤 했다. 그러나 그 에비를 찾는 어르신이나 우리 모두, 그 에비의 정체를 몰랐었다. 그저 에비가 무섭다고 “다들”하니까 무서운 거였다. 역사를 보노라면 어느 시기이든 이 ‘정체불명’의 에비가 있었다. 이 에비의 존재가 무엇이든, 우린 그 에비의 실체를 묻기보다는 맹목적으로 무서워하면서 겁내곤 했다.

그럼, 우리시대의 에비는 무엇일까?
답이 각양각색이겠지만 아마도 우리 시대의 에비는 ‘시장’과 ‘세계화’, ‘과학기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왜냐면 나오는 얘기라곤 모두가 “세계화가 대세”인 가운데, ‘승자독식(勝者獨食)’이 당연하고 ‘적자생존’으로 뒷받침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얘기 뿐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승자독식’이 당연하고 돈되는 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가치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경제, 교육, 의료, 농업, 문화 등등 사회 제영역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밖에는 얘기되는 것이 없다. “돈”되는 가치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들 얘기하듯, 살아남기 위해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얘기일거다.
무엇보다도 천민자본주의의 독소를 제거한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함은 우리 시대의 당면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때문에 아직도 우린 그 시장을 만들기 위해 IMF이후부터 시작된 지지부진하고 긴 구조조정의 터널을 힘겹게 지나고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줄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구조조정 성과에의 조급증적인 집착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지 않음에 대한 답답함과 “과연 앞으로 제대로 해낼까” 하는 불신이 만연해서일거다.

구조조정을 시장논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야 할 정부에서는, 공기업의 구조조정은 예외인 것처럼 구태를 반복하는 방만한 경영이나 낙하산 인사 등으로 여전히 비난받고 있고, 사회 영역 곳곳에 스며있는 기득권세력의 이기주의와 이해결탁에 발목이 잡혀 건강한 자생력과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생산해낼 시스템구축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망국적인 부동산값도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이 번복되다보니 사행심리만 더 만연되고 있고, 게다가 이젠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아래 서울과 지방의 상생발전이라는 이 시대의 지상과제 마저도 ‘정치논리’에 의해 휘둘리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공정하고 투명한 ‘준칙’이 통하는 신뢰성 있는 시장을...고질적이고 불합리한 ‘정-관-검-언’ 유착관계 개혁을”

우리시대의 에비인 ‘시장’의 실체가 그렇게도 두려웠는지 정부는 개혁흉내만 냈을 뿐, 구조조정과정에서의 혼선과 시행착오의 댓가는 아직도 치루고 있는 진행형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결코 시장은 흐물흐물한 에비가 아닐진대 말이다.

정부는 2006년 새해에도 자생력있는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쟁논리가 통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파산과 퇴출을 비롯해 자신의 실패에 책임을 지는, 또한 공정하고 투명한 ‘준칙’이 통하는 신뢰성 있는 영역이어야 한다. 외국 선진자본주의의 건강한 내적 동력을, 베버는 청렴하고 성실한 인간의 노동에 대한 신의 보상이 부의 축적을 결과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깨끗한 시장을 가능하게 한 서구사회의 윤리적 토대였다.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의 노력을 한 자가 응당히 받는 노력의 댓가... 이러한 정직한 노력으로 받는 성과는 분명 값지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끈적끈적한 연줄과 특혜로 이룬 성공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을 만드는 것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시장개혁과 함께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이고 불합리한 정-관-검-언의 유착관계들을 개혁하는 과제 역시 미뤄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사회의 건강성과 경쟁력은 더 낙후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앞으로 더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을 지도 모른다. 적당한 핑계로 대충 넘어가더라도 5-10년 뒤의 감당해야 하는 부작용의 크기는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한반도라는 ‘배’를 살리는데 시장만이 만능은 아니다.
즉 건강한 시장을 만들되 그 시장논리로 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다 아시다시피 시장은 1등만을 인정해주며, 강자와 승자만을 기억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도 1등이 되는 사람은 제한된 소수이기 때문이다. - 또한 1등을 한다고 해도 그 분야에서 잠깐 영웅일 분 영원한 승자는 아니다. 더더우기 돈과 명예를 쥔다고 해서 인생의 승자는 더더우기 아닌데 우린 이것을 종종 혼동한다.- 깨끗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성장제일주의, 경쟁제일주의, 시장제일주의로만 빠져서는 안된다.


386세대, 그 젊은 날의 정의로운 정열과 분노의 힘에 세월의 때를 묻히질 말기를...
노무현 정부, “개혁도 아닌 것이, 개혁이 아니지도 않은 것이” 하는 비난을 받지 않게 단호한 결의와 실행을...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민주주의를 축으로 하는 정치논리로, 경제는 시장논리로, 사회는 연대성을 토대로 하는 사회논리로 풀어야 하며 세 축이 균형을 이뤄나갈 때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구태여 연대성과 공동체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건강하고 생동력있는 시장을 위해 사회구성원들의 갈등의 극복이 얼마나 필요한 부분인가에 대해서는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근의 정부발표들을 보면, 땅과 부동산 투기로 벌어들이는 불로소득의 이익은 줄지 않고 있으며, 소득격차는 “근대화”과정에서 우리가 지나온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커지고 있다. 산업화과정이후 우리 역사상 이처럼 큰 계층간의 격차는 겪은 적이 없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움직이는 지식정보사회에서의 양극화는 줄어들 기미가 전혀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20대 80의 사회에서 과연 지속적인 경제운용이 가능할지 필자는 의심스럽다. 구태여 복지를 애기하지 않더라도 “노동과 사회정의”를 고려한 건강하고 안정된 사회의 구축은 내실있는 경제운용의 필수일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경제행위의 본질이 물질적 삶의 조건의 개선이자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는만큼, 현재 경제를 살린다는 명제도 분명 삶의 질을 높이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또 하나 유념해야 할 과제는 어떤 개혁과제를 수행하든 앞으로 나아질 것같이 보이질 않는다는 사람들의 체념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 하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는 과제를 찾고, 그를 위해 “정직하고 우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치의 소임이라면, 이 소임에 매진하는 심기일전의 정치야말로 새해의 국민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어떠한 의제도 좌.우로 구별되면 판단이 애매해지는 이념적 구조악이 팽배한 상황이, 분명 적지 않이 걸림돌이 되겠지만, 그래도 개혁하겠다고 나선 정권이 “개혁도 아닌 것이, 개혁이 아니지도 않은 것이” 하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매섭도록 단호한 결의와 실행을 통해 “이미 예견하고 있는” 레임덕 현상을 벗어나길 바란다.

386이 우리 정치의 탈권위주의와 민주화에 기여한 바는 누구도 알고 있다. 그들의 순수한 정열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그 젊은 날의 정의로운 정열과 분노의 힘에 세월의 때를 묻히질 말길 바란다. 정치인들의 만성적인 치매 증상을 종종 보기 때문에 하는 우려이다. 정직한 분노와 우직한 실천력만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 기억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어리석은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며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기본에 충실한 희망을 만들어주십시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1월 1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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