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차별"

평화뉴스
  • 입력 2006.11.0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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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보기]...
"차이를 찾아서 끊임없이 서열화하는 사회"


도발적인 북한의 핵실험으로 그동안 공론화된 “통일”이야기가 잠수한 상황이지만 오늘은 “통일”과 연관된, 그러나 아주 가까운 우리 일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재의 다급한 위기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대한 돌파구로 든 생각인지도 모른다 - 다음은 얼마 전의 한 월간지에 실려진 보도기사의 일부이다.

지난 월간중앙 8월호에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기재되어 있다. 그 내용의 일단을 보면, 응답자의 70.5%가 기회가 주어지면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다고 했고, 제 3국으로 이민갈 생각도 있다는 항목에도 응답자의 66.4%나 응답하였다.

중복응답을 요구하는 질문이었지만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 중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놀랄만한 것은 탈북자의 54.6%가 그들이 죽기살기로 떠나온 북한을 "처벌이 없으면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응답하였고, 그들의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남한 사회의 “차별”이라고 답하였단다.


‘차별’ 때문에 떠나고 싶은 나라 ‘한국’



구체적으로 보면, 응답자의 51.1%가 남한 사람들로부터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데, 이는 얼마나 이들이 남한 사회에서 부적응을 경험하고 있는지, 이 사회에 편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심리적 소외계층에 편입되어 살고 있는지의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들은 심리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매우 자부심을 느낀다”고 30.8%가 답하였고, “어느 정도 그렇다” 에도 46.8%가 응답하였다. 즉 한국이라는 국가는 매우 좋으나 한국사회의 “차별” 때문에 기회가 되면 떠나고 싶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필자가 대구에서 간헐적으로 만난 탈북자들 중 나이가 드신 연로하신 분들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이 곳이 먹을 것 많고 자유로워 북한보다 백배천배 낫다고 하지만, 탈북 젊은이들은 이 곳에서 산다는 것이 아무런 축적된 학연, 지연의 연고도 없이 “주변인”으로 살아야 함을, 그래서 매우 불안한 미래를 홀홀단신 짊어지고 가야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 비정한 현실이다.

이번에는 필자가 올 초에 중국의 연변에서 경험한 얘기를 해보자.
그 때 필자는 외국인권단체의 덕택으로 그 곳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을 어렵게 만날 기회가 가질 수 있었다.
길게는 체류기간이 5년이 넘은 30대이상의 여성들과 아이들, 짧게는 한 6개월 남짓 체류한 15-16세정도의 학생들까지 만났는데, 이들은 다 심각한 정도의 영양실조에 시달렸던 것을 알 수 있는 깡마르고 허약한 몸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두통, 위장병, 부인병 등등의 수많은 병들을 갖고 있었다. 이 여성들이나 아이들은 몇 번에 걸친 탈북을 시도하면서 체포, 감금, 재탈출을 반복했었던 경험을 갖고 있었고,

불법체류자 신분때문에 중국의 호구, 즉 우리 식으로 말하면 호적이 없어서 중국정부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질 못하고 있었다. 90년대의 고난의 행군때 도망나온 탈북자들이 낳은 아이들도 곧 취학연령이 됨에도 불구하고 방치되고 있었고, 그나마 외국 인권단체의 긴급구호성격의 물질적 지원과 신변안전상의 보호 정도만을 받고 있었다. 필자가 만난 이 탈북자들은 “모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한국에 오는 것을 열망하고 있었고, 필자에게도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간절하게 자신들의 지나온 처지들을 얘기했었다.


“좋지 않은 감정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던 사람들”...



그러나 필자는 돌아오면서, 이 탈북자들이 염원하는 한국으로의 입국이 과연 이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길인가 하는 의문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 죽기로 결심하고 사지를 넘어 온 경험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한국사회에서의 다층적인 차별의 장벽과 그로 인한 사회적 긴장과 갈등의 깊이가 너무나 크고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이를 찾아서 끊임없이 서열화하는 관행이 의식화되어 있고 구조화되어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
오히려 그보다는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 편입되어 “한어”를 익히면서 낮은 수준이라도 기술을 배워 서서히 중국사회에 “끼어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탈북이전에도 중국사회를 어느 정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약간의 기술만 배우면 그래도 우리보다 덜 차별을 느끼는 중국사회에서 무난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린 그동안 한민족이라는 “거대담론”으로 한국내의 수많은 차별을 간과해왔지만, 우리 안의 탈북자들이 경험하는 소외감과 차별은 너무나 크고,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로간에 너무나 다른 개인적 사회적 공간과 이로 인해 달리 만들어진 기대지평의 차이는 더 큰 마음의 장벽만을 가져올 것 같았다.

조선족도 예외는 아니다.
90년대 초에 중국에 거주하던 조선족들도 한 때 한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해 일자리를 찾아 한국 땅에 몰려오기도 했으나, 기대와는 달리 차별과 소외감을 경험한 뒤 다시 좋지 않은 감정으로 중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통일되면 북한 사람들마저 차별하지나 않을지...”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이제는 한국이 그들이 생각하는 조국과 다른 곳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남한에서 심각할 정도의 서러움을 경험한 이들은 남한 보다는 중국사회에 들어가, 아니면 북한 사회에 투자자로 들어가 크고 작은 규모의 거래를 시작하면서 독자적인 사업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이들은 이미 북한을 무비자로 드나들고 있었으며 북한 사회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고 멸시했던 남한사회보다는, 돈을 벌어 “남한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중국에서 성공해 살고 싶어 했다. 이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차별의 현주소이다.

우린 끊임없이 계층간, 인종간, 연령간, 또 성적인 차별을 양산해내고 재생산해낸다.
너와 우리가 다름을, 너희들과 우리들이 다름을, 또 정상과 다름을 끊임없이 부각시키면서,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에 못미치는 다른 사람들을 “기어오르지 않게” “아래로 깔고” 본다. 연변에서 알게 된 한 지인은, 필자에게 말하기를, 만약 앞으로 몇 년 뒤에 통일된다고 가정하면 키가 작고 검은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일거고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2등국민 차별을 받을 거라는 섬뜩한 진단을 내렸다. 한국사회의 차별이 자연스럽게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에 이어, 조선족에게, 또 왜소하고 작은 북한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거라는 것이었다.

북한핵실험 이후 극단적 대결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반대쪽에서는 국지전도 불사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전쟁은 어떠한 경우든 피해야 함은 분명하다. 군사력 충돌은 예상치 못하게 치유될 수 없는 민족의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하지만 국민으로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여야가 일치되는 목소리를 내도록 압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게는 남북이 더 이상 대치하지 않는 통일로의 기나긴 장정을 위해, 이 땅에 얼굴맞대고 살고 있는 그러나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차별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안에 흐르는 마음의 소리를 헤아리는 노력에서부터 실천시켜야 할 것 같다.


[김재경의 세상보기 28]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kgklan@kornet.net)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10월 23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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