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feel)이 꽂히는 시민운동”

평화뉴스
  • 입력 2006.07.23 19: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재경의 세상보기 26]...
“소통이 필요한 시민사회, 이제는 주민 속으로...”


지난 7월7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5.31지방선거 대구시민연대의 활동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선거 전에 이미 공약분석과정을 지켜볼 기회를 가졌는데, 활동가들은 며칠 밤낮을 여러 곳의 자문을 얻어 토론과정을 거치면서 공약분석자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지역에 필요한 실현가능한 공약의 옥석을 가려내기란 매우 고난한 과정이었음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머리를 싸매 분석해내고 있었다.
전문가 집단의 적극적인 협력도 거의 부재한 상태에서, 지역활동가들은 괜찮은 일꾼들을 뽑는데 도움이 되고자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의 정체성과 부합되는 공약들을 골라내 꼼꼼히 따져가며 분석해냈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실패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이런 활동가들의 매니페스토 운동에 보란 듯이 배신하듯, 판이하게 나타났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매니페스토 운동은 실패했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선거관리위원회와 언론매체가 함께 홍보하면서 추진한 매니페스토 운동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시민들도 많았으며, 평가기준이 부문별로 다양해 후보자들을 선택하는데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혹평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새로 도입되는 중선거구제 덕택에 한 지역구에서 10여명 이상의 후보자가 나오는 곳도 많아, 누가 누군지 유권자들이 판단하기가 어려웠음도 사실이었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지역민의 생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시군구의원들은 선거공약이라 할 것도 거의 없었으며, 그 면면을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열려 있지 않았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란 “저 시의원 후보 000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도였다. 무엇을, 어떻게 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유권자인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후보자들을 만나는 방식은, 유독 친한 척 쥐어주는 명함 한 장과 우리에겐 별로 달갑지 않은 악수정도였다. 이것이 우리의 주인으로서의 권한을 맡길 “대리인”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리곤 선거를 치루었다. 공약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는 “한나라당 완승, 열린 우리당의 참배”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는 4년 전보다 약간의 투표율이 높아진 것만 제외하면 (2002년:48.8%->2006년:51.3%), 결과만으로는 2002년의 선거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2년에도 전라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한나라당의 싹쓸이가 나타나, 광역단체장으로 한나라당이 11명, 민주당이 4명, 기초단체장으로 한나라당이 140명, 민주당이 44명 선출되었었다. 이는 2006년 이번 선거결과에서 광역단체장이 한나라당이 12명, 민주당이 2명, 열린 우리당이 1명 뽑히고 기초단체장으로 한나라당이 155명, 민주당이 20명, 열린우리당이 19명, 국민중심당이 7명 뽑힌 것과 비교해 보면 별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 주목할 것은, 2002년과 2006년 지방선거사이의 2004년의 국회의원 총선때의 결과인데 이 때는 열린우리당이 129명, 한나라당이 100명, 민주당이 5명, 자민련이 4명, 민노당이 2명이 당선되어,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 당선자수가 한나라당 당선자수를 뛰어넘는 결과가 산출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한나라당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노대통령의 탄핵을 몰아가는 과정에서 치뤄진 선거여서 한나라당의 오판에 국민들이 철퇴를 가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시민들과 어떻게 ‘재미있게’ 호흡하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후 새판짜기 정치를 하겠다던 열린우리당의 구태의연한 정치의 반복에, 국민들은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무능하고, 그렇다고 정책이 뚜렷이 개혁적이지도 않은 아마츄어 정권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감에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서는 매니페스토 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부터 시작해, 더 본질적이고 성찰적인 시각의 자기비판이 필요해 보인다. 왜 정책선거를 유도할 것이라고 믿었던 “의미있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겉돌았는지, 시민단체의 얘기를 시민들은 왜 귀담아 들질 않았는지, 또한 시민들의 생각을 시민단체에서는 왜 제대로 읽질 못했는지,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 나갈 것인지 등등...

이왕 선거결과가 나온 이상, 바꿀 방법은 없다. 또 민주주의의 투표 결과로 나온 이상 바꿀 어떤 절차적 정당성도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민주주의의 상호견제와 비판의 원칙에 충실하게, 지방의회와 지방행정권력을 시장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제대로 감시해내는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함께 해야 할 일은, 시민단체가 목표로 하는 다양한 지향점에 맞추어 “필(feel)이 꽂히는” 시민들과 어떻게 “재미있게” 호흡해 나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느냐 하는데 있을 것이다.


저임금.과부하에 시달리면서도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

사실 우리가 선거에 많이 매달리고 있지만, 대의적인 정당제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학교운영위원회를 만들어 학교운영에서 교원이외에 학부모와 지역사회인사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적인 건강한 심의 결정기구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현재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에도 학부모들이 거수기역할만 하는 등의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여기저기서 보고있다. 즉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고 소수의 의견을 보호해주는 가장 바람직한 절차임에는 틀림없으나 제도도입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일꾼을 잘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또 중요한 것은 이 일꾼들을 잘 감시하고 압박하는 시민들인 것이다. 이 시민들이, 곳곳에서, 수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의 조건들을 합의해 결정하고 표현해내면서, 권력의 집중이 공존하는 모든 곳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데 어쩌면 민주주의적 이상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역 곳곳에 작은 소공동체가 만들어져 지역민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고, 결정한 뒤에 바뀌는 모습을 함께 체험하며 변화해가는 느낌을 공유하는 경험을 갖는 것, 이것이 탈정치화를 막고, 정치권으로부터 소외된, 그래서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는 시민들을 주인되게 하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사회의 단단한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풍요의 맛을 본 시대에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바꾸기가 어렵고 적어도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설득하고 동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더더우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토대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실천되는 삼보일배 같은 희생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인류의 역사는 이름없이 제 몫을 다하며 살다가 간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한 헌신적이고 용기있게 살아온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만큼 성취된 점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 속에서 잠꼬대(?) 같은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가뜩이나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과부하된 과제속에서 일하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던져주는 것 같아 마음이 죄스럽지만, 그래도 근 100분내내 긴 토론을 지켜보면서 필자가 내린 결론은 “소통(疏通)을 위한 주민공동체 속으로” 였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kgklan@kornet.net)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7월 10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