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고니 흰목물떼새...금호강 안심습지의 겨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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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환(습지보전활동가)
생명평화아시아, 2023년 금호강 조류 조사
..."뺏는 마음보다 작은 양보를 할 줄 아는 우리를"

벌써 안심습지를 찾아온 큰고니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벌써 안심습지를 찾아온 큰고니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11월 찾은 안심습지는 겨울을 부르고 있었다. 찹찹한 공기, 안개비 내린 촉촉한 습지에 겨울 철새가 하나둘씩 보였다. 여름의 작지만 아기자기한 친구들은 추위를 피하여 이동했고, 그들의 빈 자리는 안심습지에 쓸쓸함을 안겨주었다. 작은 새들을 노리는 새매 옆을 지나는 찌르레기 무리가 보였다. 높은 하늘 아래로 새매가 내리 꽂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가지 못한 채 안심습지를 계속 둘러보았다.

멀리서 새 소리가 들린다. 이 시기에 벌써 이들이 안심습지로 왔단 말인가. 시야에 큰고니들이 들어온다. 큰고니 몇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물 위를 돌아 안심습지 깊숙한 곳으로 내려앉는다. 낙동강 하구가 무너지기 전에는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큰고니 80% 이상이 낙동강 하구에 모여 머물렀다. 그러다 12월 말 하구의 먹이가 떨어질쯤 전국으로 이동하여 겨울을 났다. 그런데 4대강 사업과 각종 개발로 서식처가 훼손되고 갯벌 형질이 전과 달라졌다. 그러자 큰고니는 낙동강 하구에 터를 잡지 못하고 우리나라로 내려오자마자 뿔뿔이 흩어진다. 큰고니가 안심습지를 예년에 비해 일찍 찾는 현상은 이러한 인과를 추정해본다.

큰고니는 매자기의 덩이줄기(괴경)를 주식으로 먹는다. 먹이가 없으면 연뿌리나 갈대 뿌리줄기를 먹이로도 이용한다. 벌써 안심습지에 찾아와 먹이 활동을 하다보면 일찍 먹이가 떨어질 수도 있어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많은 비가 내린 습지는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물이 깊어진 곳, 자갈밭에서 진흙이 덮인 곳, 그곳에 식물이 자라기도 하고 물골이 바뀌기도 했다. 이동하는 도요새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곳은 사라졌다. 강폭은 좁고 둑이 높아 빨라진 유속과 유량을 품어 줄 습지가 없었다면, 인간도 새들도 속수무책으로 물의 위력을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낚시꾼들만이 변함없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멸종위기 2급 보호종 흰목물떼새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멸종위기 2급 보호종 흰목물떼새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안심습지에서 이동하여 범안대교에 왔다. 범안대교에서 아래 중간지점 자갈로 매립된 곳까지 내려가 본다. 멀리 흰뺨검둥오리가 보인다. 저 끝자락에 서 있는 삑삑도요를 관찰한다. 이 구역 강물이 흐르는 공간은 협소하고 유속이 빠르지만, 자갈이 드러난 곳이 많다. 이런 곳은 흰목물떼새가 서식할 장소다. 자갈 위에서 검은할미새와 알락할미새가 자리다툼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그 옆에 통통한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워낙 보호색을 띄고 있어 아무렇지 않게 동그란 자갈로 생각했던 것이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인 흰목물떼새였다. 무려 세 마리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망원경을 두고 쌍안경으로만 관찰하다 보니 잘 눈에 띄지 않은 것이었다. 금호강 중류에서 하류까지 관찰하며 흰목물떼새가 서식할 수 있는 장소들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흰목물떼새는 겨울엔 옹기종기 모여 서식하지만 번식기엔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어 흰목물떼새끼리는 영역 다툼이 없다. 하지만 꼬마물떼새가 영역 내에 들어오면 끝장을 보는 싸움을 한다. 이 녀석들이 탈 없이 겨울을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

무태교 아래는 대백로가 왜가리와 세력을 과시하듯이 모여 있었다. 큰부리까마귀와 황조롱이는 공중전을 펼치고,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는 강건너 불구경하는 무태교 풍경이었다.
 
달성습지에서 만난 되새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달성습지에서 만난 되새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달성습지에서는 이리저리 나무를 옮겨 다니는 새 한 무리를 마주쳤다.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어느새 사라지고 무리가 보이지 않는다. 자리를 떠날 때쯤, 나의 앞 나무에 새 무리가 숨어 숨바꼭질하는 모습을 다시 찾았다. 숨기 바쁜 녀석들의 모습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나뭇잎 사이를 살폈다. 되새였다. 가슴과 어깨가 황갈색이고 배가 흰색이 되새는, 수컷의 경우 여름에는 검은색 머리깃이다가 겨울에는 연한 흑갈색 머리깃으로 바뀐다.  

안심습지에서 시작하여 빗방울이 흩날리는 달성습지에서 11월 조류 조사를 마무리하였다. 대체로 안심습지에서 달성습지까지의 11월 풍경은 조용하고 썰렁했다. 올해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해온 금호강 조류 조사도 이제 마무리를 향해간다. 조사 구역에 걸쳐 120종이 넘는 새를 발견했다. 매번 조사를 위해 금호강을 둘러보며 느끼는 점이지만, 건강한 금호강을 만들기 위해선 뺏는 마음보다 작은 인간의 양보가 필요하다. 금호강의 습지와 우리 모두 건강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심습지의 겨울 아침, 겨울철새가 하나 둘 찾아온다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안심습지의 겨울 아침, 겨울철새가 하나 둘 찾아온다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12월 금호강 현장 조류조사에 함께 한 생명평화아시아 자원활동가들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12월 금호강 현장 조류조사에 함께 한 생명평화아시아 자원활동가들 / 사진. 생명평화아시아

* '사단법인 생명평화아시아'는 생태하천으로서의 금호강을 지키기 위해 2023년 금호강 현장 조류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김정태 박사, 김시환 활동가로 구성한 조사팀과 매달 1회 금호강(안심습지~달성습지 구간 지점별)을 찾아 조류 종수, 개체수 등 정보를 수집하고, 한 해 조사 결과를 취합한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입니다.

 
 
 








[기고] 김시환(습지보전활동가)
전 '습지와 새들의 친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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