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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의 습지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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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렬 / "자전거를 세워놓고 습지 안으로 들어서면...들려오는 대자연의 축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온 세상이 농토와 강과 바다를 파괴해가며 아파트를 건설하고 다리를 놓고 강변에 체육시설을 마구잡이로 지어놓아도 더 이상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지자체와 국가의 행정관들이 제대로 받아 담을 때 세상에서의 인간살이는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이다.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의 모습(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의 모습(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금호강 팔현습지는 달성습지, 안심습지와 더불어 금호강 3대 습지로 꼽히는 곳이다.

바다에 갯벌이 있다면 육지에는 강변습지가 있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대기 속 온실가스를 담아내어 그나마 우리를 숨쉴 수 있게 해주는 그 습지를 우리들의 대도시 대구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품고 있다. 천혜의 금호강 습지 인근 강변에 이미 자전거를 달릴 수 있는 포장길은 충분하니 주말이면 자전거로 팔현습지를 들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팔현습지는 이미 대단위 파크골프장으로 적잖이 훼손되어 있지만, 그곳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조심스레 습지 안으로 들어서보라. 그곳엔 야생화 전문 서적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꽃과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왕버드나무를 비롯한 거목들이 즐비하다. 벌과 나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전 세계적인 우려가 매체를 장식하고 있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하얀 꽃눈이 사방에 흩날리듯 나풀나풀 자유로운 날개짓이 눈에 겨운 나비들의 군무를 보실 수 있다. 이곳이 250만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금호강 팔현습지 숲...환경청은 이 곳에 교각, 제방 등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금호강 팔현습지 숲...환경청은 이 곳에 교각, 제방 등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팔현습지 깊은 곳에 자리잡은 왕버들 숲(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팔현습지 깊은 곳에 자리잡은 왕버들 숲(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나비들을 놀래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발자국 소리마저 죽이고 자연과 연결된 우리의 신경선을 곤두세운 채 습지의 한가운데로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옮기는 일. 그제서야 여러분들은 나비들의 군무를 환상처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하고 조심하면 매일 같이 벌어지는 대자연의 축제 한가운데서 우리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팔현습지 개발 명분으로 시민 생태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개발은 충분하다. 팔현습지 안으로 대단위 파크골프장은 물론 자전거 도로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산책로가 들어서 있다. 자전거 주행과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인터불고 호텔 쪽으로  새로 건설하겠다는 교량형 도로는 이른바 무제부 구간으로서 산지절벽과 강을 직접 연결시켜주는 팔현습지의 생명과도 같은 구간이다.
 
팔현습지 바로 옆 수성구청이 운영하는 파크골프장(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팔현습지 바로 옆 수성구청이 운영하는 파크골프장(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 곳에 포크레인과 불도저 부대를 투입하여 어머니 대지의 가슴을 도려내고 그 곳에 다리를 건설하여 산업화 시절 다 사라져 버렸다 겨우 팔현습지로 돌아와 자리를 잡은 수달, 얼룩새코미꾸리, 황조롱이, 흰목물떼새, 삵, 원앙, 이들에게 우리는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가? 이들은 모두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법정보호종이기도 하다. 습지 개발에 앞서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거의 누락되었다.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근거로 팔현습지에서 실시되는 환경부발 ‘삽질’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습지와 습지에 깃들어 사는 생명체는 우리 인간처럼 미약한 존재들이다.

불과 대기의 온도가 1.5도만 올라도 현재의 문명 체계는 붕괴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에 우리의 마음 속 한곁은 불안감과 우울감이 자리함을 어쩔 수 없다. 황조롱이와 수달과 흰목물떼새, 그리고 나비들의 군무를 볼 수 없는 팔현의 습지는 더 이상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도 안정시키지도 즐겁게도 해주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습지를 관통하는 콘크리트 더미 위를 자전거로 세차게 달리는 힘자랑의 존재일 뿐이다. 많은 현인들이 지구를 살리는 유용한 도구로 꼽는 자전거도 폐허의 습지를 달리는 순간 그저 파괴의 도구일 뿐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대자연을 자연스럽게 만드는가? 미국의 농부이자 최고의 자연시인으로 꼽히는 웬델 베리는 <최고의 노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모든 노래 중에서
최고의 노래는
고요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
하지만 먼저
그 고요를 들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려면 숲이 노래하는 고요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고요의 화음 속에 나비들의 군무가 있고 황조롱이의 지저귐이 있으며 수달의 눈망울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고 우리가 팔현습지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요의 노래' 속에만 우리는 매일 르네상스(재탄생)의 기쁨과 기적을 누릴 수 있을 뿐이다. 
 
"금호강 팔현습지 하천정비 공사 중단해야"...이승렬 교수가 환경청의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 주민설명회가 열린 대구 수성구 고산2동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기자회견 중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2023.5.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금호강 팔현습지 하천정비 공사 중단해야"...이승렬 교수가 환경청의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 주민설명회가 열린 대구 수성구 고산2동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기자회견 중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2023.5.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월 22일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환경청장이 "팔현습지만큼은 산책로 사업에서 제외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한 것도 지역 환경청 행정책임자로서 최소한의 선을 넘지말아야 한다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환경적 유익을 도모하는 행정이 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4월 이를 설명하려는 주민설명회장은 고성과 행패를 자행하는 일부 주민들의 난동으로 파행되었고 이제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태도를 바꿔 팔현습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교량형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사라져가는 수많은 멸종위기종과 천연보호 생명체들이 모여사는 금호강 습지.
대구 시민 모두의 자랑거리이자 우리들 모두의 쉼터다.

 
금호강 팔현습지(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금호강 팔현습지(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주민설명회와 환경청장의 태도를 일순간 망가뜨리는 일부 주민들의 힘자랑은 단순히 일탈적인 개인들의 힘자랑이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금호강 르네상스라는 미명의 대대적인 토건사업을 통해 표를 모으고 싶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힘자랑이든 토건자본의 힘자랑이든 우리 주민들은 우리의 생활터전과 마음 속을 흐르는 금호강과 습지의 훼손을 더 이상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힘자랑은 폭력이다. 폭력은 자연을 망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망친다. 멈춰라, 주민들의 뜻과 관계없이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이뤄지는 환경파괴사업을 지금 당장 멈춰라.

 
 
 
 





이승렬 / 영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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