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음을 읽은 듯 얼룩새코미꾸리는 한참을 강물 속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깊은 물로 모습을 감췄다. 전세계에서 이곳에만 사는 멸종위기종을 운좋게 관찰 할 수 있었던 날이다.
얼룩새코미꾸리 뿐만 아니라 민물의 제왕 가물치, 쏘가리, 돌마자, 꺽지, 토종 붕어, 징거미새우 등 금호강에 사는 여러 물고기와 수생물을 만날 수 있었다. 회색빛의 왜가리도 관찰됐다. 팔현습지에 사는 고라니는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깊은 숲 속길 곳곳에 배설물 흔적이 뚜렷했다.
▲ 금호강에서 만난 토종 붕어, 돌마자, 징거미새우(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팔현습지 인근 팔현마을, 고모제, 강촌마을, 자전거길, 수성파크골프장(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공사를 예고한 367억원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 예정지에서 팔현습지 지키기 행동이 펼쳐졌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사무처장, 채병수(68) 담수생태연구소 박사는 간디학교 4학년 학생 21명, 이철수·강현영 교사와 생태학습을 했다.
환경의 날을 맞아 금호강 팔현습지를 걸으며 생태계를 둘러보고 환경부의 공사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간디학교 학생들은 이날 오전 9시부터 3시간 가량 팔현습지에서 현장학습을 하고, 오후에는 '금호강 팔현습지 공사 반대' 서명운동을 벌인다. 지난 4일에 이어 이틀째 서명전을 펼치고 있다.
▲ 환경부가 제방과 교각 공사를 예고한 금호강 펼현습지 숲 길(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금호강 팔현습지 왕버들숲(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채병수 담수생태연구소 물고기 박사는 얼룩새코미꾸리에 대해 "1990년대에서 2000년초까지 여기 물이 너무 더러워서 얼룩새코미꾸리가 거의 없어졌다"며 "영천 위 댐을 만들어서 포항제철로 물을 보내면서 수량이 적어져 강물이 오염돼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제철 공법을 개발하면서 물의 양이 많아져 수질이 깨끗해져 얼룩새코미구리 개체가 늘었다"면서 "50~60년 전 내가 어릴 때처럼 다시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룩새코미꾸리와 수수미꾸리는 한강과 금강, 영산강, 섬진강에는 없고 오로지 이곳에만 있는 고유종"이라며 "여기서 멸종되면 전세계에서 얼룩새코미꾸리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후 금호강 수질과 수량이 개선돼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정수근 사무처장과 채병수 박사(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습지 안쪽 인적이 없는 곳의 왕버들숲(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어 "정부와 지자체가 습지 절벽을 따라서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들고, 제방을 쌓고, 교량을 만드는 공사를 여기에 하게 되면 그러한 추세가 멈출 수 있다"며 "강바닥을 밀어버리는 공사를 할텐데 물고기는 물론 물 속 생물들의 집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어떤 물고기는 여울을, 어떤 물기는 자갈 밑을, 어떤 물고기는 진흙 속을, 어떤 물고기는 얕은 물을, 어떤 물고기는 깊은 물을 좋아하는데 그런 공사를 진행하면 2~3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사라질 것"이라며 "그리고 나서 터전을 회복하는데 30년~50년 가까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팔현습지 안에서 발견된 야생동물 고라니 배설물(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서연(16) 학생은 "강물이 더러울 줄 알았는데 너무 깨끗했다"며 "공사로 이런 강이 훼손된다면 물고기들과 지구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시우(16) 학생은 "이곳에는 이미 파크골프장을 포함해 자전거길도 있고 즐길거리들이 충분히 많은데, 굳이 왜 또 개발 공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저희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인데, 어른들이 이 공사를 멈춰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강의 생태계 뿐 아니라 팔현습지 일대 왕버들숲도 공사가 진행될 경우 베어질 위기에 놓였다. 교량 예정지에는 이미 공사를 알리는 노란 깃발이 꽂혔다. 인적이 없어 팔현습지 자연 원형을 보존한 곳이다. 장마철 두 달은 강물이 차올라 있다. 높이 10m를 넘는 왕버들 나무들이 즐비해있다.
정수근 사무처장은 "대구시와 환경부가 금호강에서 벌이는 삽질로 팔현습지 6종 법정보호종 야생생물과 수많은 동식물들이 어우려져 사는 생명평화 길이 훼손될 위기"라며 "민가도 없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 곳에 슈퍼 제방을 쌓고 보도교를 건설하는 공사를 자행하는 것은 탐욕"이라고 규탄했다. 때문에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환경부발 삽질을 멈추고 팔현습지를 보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팔현습지 안에 공사 예정지를 따라 노란 깃발이 설치됐다.(2023.6.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