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며 지난 5년간의 활동을 정리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했다.진화위가 확인한 한국전쟁 초기 대구경북지역에서 군경에 희생된 민간인 수는 14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박선영)의 '진실화해위원회 종합보고서'를 18일 확인한 결과, 대구경북지역에서 한국전쟁 초기 인민군 점령 지역 수복 이후 군경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 희생자 수는 모두 149명이다.지역별로 보면, 모두 19개 시.군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울진이 101명으로 가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발견된 수천개의 뼈들. 75년 전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도록 유족들의 유전자(DNA)를 채취했다.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인 경산 코발트광산 위령탑 한 켠에 29일 오후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온 유족들로 북적였다.유족들은 유전자 검사 신청서와 동의서를 작성하고, 입을 벌리며 구강 내에 있는 세포를 면봉으로 닦았다. 핀셋으로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연구원에게 주며 "이렇게 하면 부모님 뼈라도 찾을 수 있는 것이냐"고 묻거나,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건넸다.진실·
대구 10월항쟁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족들이 목놓아 "아버지"를 외쳤다. 위령탑에 쓰인 부모님의 이름을 쓰다듬거나 헌화하고, 절을 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두세 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던 유족들은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은 희끗해진 노인이 됐다. 가창골 어딘가에 묻힌 유해라도 찾고 싶지만, 여전히 행방은 알 길이 없다. 그리움과 아픔의 시월이 올해도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영원한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대구 10월항쟁 79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다.(사)1
대구 10월항쟁 79년, 지역 시민단체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항쟁의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국가기념일 지정을 촉구했다.'10월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정신계승을 위한 시민연대', '시월항쟁예술제 추진위원회'는 30일 오후 10월항쟁 발상지인 대구역 앞 광장에서 '10월항쟁 79주년 진실규명·정신계승 대구경북시도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과 임성종 10월항쟁시민연대 상임대표, 최수환 시월항쟁예술제 추진위원장,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 윤금순 대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3차 유해 발굴 과정에서 모두 1,300여점의 뼈 조각이 나왔다. 사람의 다리뼈와 턱뼈, 갈비뼈로 보이는 1,000점 이상의 큰뼈와 잔뼈들이 갱도 내 수평굴에서 발견됐다.75년 전인 1950년 한국전쟁 전후 대구경북 일대에서 끌려온 민간인 학살 희생자로 추정된다.온전한 시신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퇴부 다리뼈 40여점이 나와 최소 20여구 이상이 잠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년간 1~2차 유해 발굴 중 유해와 유품 4,000여점을 수습한데 이어, 3차에서 1천여점을 찾아 지금까지 모두 5,000여점의 유해를 수습
'10월항쟁 발상지' 표지판이 대구 중구 태평로에 들어섰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농민과 노동자들이 "쌀을 달라" 외치며 시위를 하다, 군경에 끌려가 목숨을 잃은지 79년 만이다.◆ 대구 중구 태평로 141, 대구콘서트하우스 부지. 1946년 10월 1일, 미군의 식량배급 정책 실패로 인한 배고픔으로 분노한 민중들이 "배고파서 못 살겠다"고 외치며 생존을 위한 시위를 벌인 곳이다. 10월항쟁의 시작이다.무장한 경찰들은 이들을 향해 총을 쐈고, 결국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분노한 시민들은 숨진 이의 시신을 메고 대구경찰서 앞에서
올해로 79년을 맞은 대구 10월항쟁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대구지역 시민사회 인사들이 '시민연대'를 꾸린다.'(가)10월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연대 준비위원회'는 이 단체 창립을 위한 결성회의를 오는 19일 생명평화나눔의집 교육실(수성구 명덕로 411)에서 연다고 13일 밝혔다.10월항쟁이 내년이면 80주기를 맞는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일상적으로 항쟁을 접할 수 있도록 알리고 진상규명·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상설적인 활동 기구를 만들자는 취지다.이는 지난 2023년 10월 중구 동성로 CGV대구한일 맞은편에서 열린
"부모님들의 죽음은 국가 폭력의 아픈 역사입니다. 이 역사에는 네편, 내편이 없습니다. 진실규명의 대상이지 이념 갈등의 대상 아닙니다. 뼈 한점 찾아 진실규명되길 바랄 뿐입니다"나정태(79)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회장은 25일 오전 경북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에서, 박선영(69)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게 이같이 말했다. 박 위원장은 "네편, 내편 가리지 않고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을 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이 잠든 코발트광산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이 잠든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3차 유해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갱도 흙이 무너져 내려 발굴에 애를 먹고 있다 유족들은 남은 뼈 한 점이라도 찾길 바라고 있다.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이사장 나정태)'에 17일 확인한 결과, 유족회는 지난 5월 13일 경산 코발트광산 수평2굴 앞에서 개토제를 열고 제3차 유해발굴에 들어갔다. 75년이 흘렀지만 광산에는 수습 못한 희생자들이 남겨져있다. 앞서 2년간 유해와 유품 4,000여점을 수습했지만, 미처 발굴 못한 유해들이
한국전쟁 전후 대구경북지역에서 국민보도연맹 등 좌익으로 낙인찍혀 군경에 학살당한 민간인 17명에 대해 국가가 잘못을 인정했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박선영.진화위)'는 지난 22일 제107차 위원회 회의에서 모두 29건의 집단회생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전국 29건의 사건 가운데 대구, 문경, 영천 3곳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군경에 의한 희생"이라고 진실규명했다. 국민보도연맹이나 좌익 혐의를 받는 민간인들에 대해 "군경이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을 예비검속한 뒤 살해한 것
한국전쟁 전후 시기 대구경북 주민 111명이 '좌익' 이념 낙인에 찍혀 우리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박선영.진실화해위)는 지난 8일 위원회 회의에서 모두 29건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전국의 29건 사건 가운데 대구와 경북지역(포항, 경주, 안동, 경산, 영천, 청도, 영양, 울진) 8곳에서 발생한 모두 6건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군경에 의해 자행된 희생"이라고 진실규명했다. 한국전쟁 전후인 지난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발생한 '경북 영천 민간인 희생
75년 전 경북 청도 곰티재에서 숨진 민간인 9명이 우리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박선영.진실화해위)는 4월 1일 제103차 위원회에서 '경북 청도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1950년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청도군에서 거주하던 민간인 9명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거나, 좌익 혐의가 있다는 국군 정보국 소속 미군방첩부대원들과 청도경찰서 경찰들에 의해 연행돼 청도군 매전면 곰티재 등에서 희생됐다. 당시 모두 84명이 곰티재 등으로 끌려가
74년 만에 유해를 수습한 경북 김천 돌고개 학살터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진혼제가 열렸다. 희생자들이 오랫동안 잠들었던 흙더미 위에 국화꽃 한송이를 놓고 고개 숙여 묵념했다.학살의 무덤가에 달려온 이들은 고인들을 향해 술 한 잔 따르고 곡을 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같은 민간인 학살 유족(대구 10월항쟁)인 이향(67) 화가는 수묵화를 그리며 위로를 건넸다. "누구에겐들 가슴 아픈 사연 한 둘 없을까. 서럽고 눈물도는 젊을 지나, 고향 언덕에 이르노니 아슬히 아버지 보이누나. 아버지!"추모의 글귀를 통해 자신과 같은 아
"아버지 얼굴도 못 보고 이름도 한 번 못 불러본 채 행방불명 됐다. 올해로 아흔여섯인 어머니는 시신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아직도 아버지가 살아있다고 믿는다."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인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을 찾은 유족 이창희(75.남)씨가 한탄했다. 유족회 이사를 맡으며 자주 코발트광산 갱도에 출입했지만, 여전히 들어갈 때마다 마음이 찢어진다.이씨는 지난 1950년 본인이 100일도 넘지 않은 갓난아기일 때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보도연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입했다. 지역마다 할당된 인원을 충당해야 했던 이장 탓이
대구 10월항쟁이 발생한 지 올해로 78년이 흘렀다.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은 온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유족들의 응어리진 고통은 오랜 시간이 지나 고령으로 머리가 희끗해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10월항쟁 78주기를 하루 앞두고 동대구역 광장에서 처음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아픔을 기억하기 위한 예술제가 열렸다.10월항쟁 78주년 준비위원회, 10월항쟁 진실규명·명예회복을 위한 연대회의(준),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범시민운동본부 등 5개 단체는 30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2024 1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인 경북 김천 돌고개에서 희생자 유해 32구가 최종 수습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8월 중순부터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산 168번지 돌고개 일대에서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해, 지난 24일 두달여만에 유해 발굴 작업을 종료했다.유해 발굴 용역을 맡은 '삼한문화재연구원'은 9차례 발굴 작업을 통해 흙구덩이 속 뒤엉킨 유해 32구를 최종 수습해했다고 밝혔다. 두개골 30여점과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등 사람의 뼈 여러 점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사용했거나 사용하지 못
흙구덩이에 층층이 뒤엉켜 있는 물체. 사람의 두개골과 유골이다. 누군가에게 사용한 실탄과 바닥에 파묻힌 불발탄 등 탄창, 탄두 총알도 수십여개다. 이름 없는 신발과 버클, 단추도 끝이 없다. 경북 김천 돌고개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지난 8월 중순부터 한달 가까이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산 168번지 돌고개'에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 학살지 가운데 김천에서 국가 기관이 유해 발굴을 하는 것은 74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온전한 두개골들과 상반신, 하반신의 팔다리 뼈들. 그리고 누군가 누군가에게 쐈을 탄창과 탄피들. 땅을 판지 일주일 만에 흙더미 아래에서 발견됐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인 경북 김천 돌고개에서 74년 만에 유골 수십점이 나왔다.'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가 유해 발굴 작업 중인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산 173-1 이른바 '돌고개'에서 2일 발굴 작업 중 여러점의 유골을 포함해 탄피, 탄두들이 발견됐다.'한국전쟁 전후 김천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는 2일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학살 피해자인 대구형무소 재소자의 유족들에게 74년 만에 국가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대구지법 제12민사부(부장판사 채성호)는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A씨 등 피해자 5명의 유족 1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했다고 16일 밝혔다.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유족 측은 "국가가 피해자들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군인·경찰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기관으로서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반면, 정부는 "유족들이 낸 증거만으로 군경의 불법행위로 사망하게 됐다고 볼 수 없고, 소
한국전쟁 전후 경북 김천 민간인 학살지인 돌고개에서 74년 만에 처음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한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는 오는 14일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돌고개에서 개토제를 열고 1950년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에 들어간다.진화위에 따르면, 1950년 좌익 사상범으로 분류돼 김천경찰서와 김천소년형무소 등에 감금된 민간인들은 1,200명으로 추산된다. 한국 특무대와 헌병대는 그해 7월 김천 돌고개와 대뱅이재 등에서 학살했다. 민간단체(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