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3차 유해 발굴 과정에서 모두 1,300여점의 뼈 조각이 나왔다.
사람의 다리뼈와 턱뼈, 갈비뼈로 보이는 1,000점 이상의 큰뼈와 잔뼈들이 갱도 내 수평굴에서 발견됐다.
75년 전인 1950년 한국전쟁 전후 대구경북 일대에서 끌려온 민간인 학살 희생자로 추정된다.
온전한 시신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퇴부 다리뼈 40여점이 나와 최소 20여구 이상이 잠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년간 1~2차 유해 발굴 중 유해와 유품 4,000여점을 수습한데 이어, 3차에서 1천여점을 찾아 지금까지 모두 5,000여점의 유해를 수습했다. 유족들은 3차 발굴을 끝내고 유해를 세종으로 이관할 예정이다.
(사)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회장 나정태)는 30일 "경산 평산동 코발트광산 수평2굴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3차 유해 발굴 작업을 한 결과, 모두 1,300여점의 뼈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폐광이 된 수평2굴 안에서 지난 5월 13일부터 3차 발굴을 시작했다. 진흙과 고인 물 속에서 사람의 뼈로 보이는 턱뼈와 다리뼈, 갈비뼈 등 잔뼈 1,300여점을 수습해 굴 밖으로 꺼냈다. 작업 5개월 만이다. 이번 3차 유해 발굴 과정에서는 희생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품들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현재는 밖으로 꺼낸 뼈들을 세척하고 말려 코발트광산 인근에 모셔놓고 있다. 정부의 최종 확인을 거치면 오는 10월 안으로 세종특별시에 있는 '추모의 집'으로 이번에 수습한 유해들을 이관할 예정이다. 앞서 1~2차 유해 발굴에서 발견한 유해들과 유품들도 모두 세종 '추모의 집'으로 이관해 안치된 상태다.
이번 3차 발굴 역시 1~2차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로부터 발주를 받은 문화재 조사단 '한빛문화재연구원'이 담당했다. 발굴 예산은 경상북도(1억원)와 경산시(2억원)가 3억원을 지원했다.
3차 발굴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무너져내리는 토사였다. 앞서 발굴과 달리, 더 깊은 수평2굴 속 유해들을 꺼내느라 작업자들이 애를 먹었다. 흙이 무너져 내리고 물이 계속 고여 발굴이 쉽지 않았다. 갱도 내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유해가 훼손되지 않도록 기둥을 세우고 철판을 깔아가며 작업을 했다. 현재는 토사의 추가 무너짐이 없도록 갱도 내에 안전 장치를 해놓은 상태다.
굴 속에는 여전히 남은 뼈가 많다. 특히 수직으로 이어진 깊은 물 웅덩이 속에 육안으로도 뼈들이 보이는 상태다. 현장 상황과 예산의 한계로 남은 뼈들은 마저 수습하지 못하고 3차 발굴을 종료했다.
때문에 유족들은 이재명 정부에 ▲4차 유해 발굴 실시와 ▲3기 진실화해위 조기 출범을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수습된 유해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유족들에 대한 유전자 전수 검사 실시도 요구했다.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인 2기 진화위(위원장 박선영)는 지난 5월 26일 활동을 종료했다. 코발트광산 등 2,000여건의 사건 조사와 발굴이 중지됐다. 코발트광산 유족들은 하루 빨리 3기 진화위가 꾸려져 남은 뼈를 수습하길 바란다. 3기 진화위가 구성돼야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지원 받아 4차 발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기 진화위가 꾸려져도 절차를 거치면 4차 발굴은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유족들은 신원 확인 작업도 촉구했다. 현재 세종에 이관된 뼈들의 경우, 유전자가 남은 유해에 대해서만 정부가 유전자를 확보해놨다. 하지만 정작 맞춰볼 유족들의 유전자가 없다. 관련 특별법이 제정돼야 유족들에 대한 개별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데, 법이 없어 유족들의 유전자를 채취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 지원 없이 유족 사비를 들여 검사해야 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나정태 유족회장은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다른 것 없다"며 "하루빨리 갱도 내 잠든 부모님들의 뼈를 모두 꺼내 제대로된 추모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 모두 발굴을 할 수 있을지 몰라 답답하다. 진상규명을 위해 3기 진화위가 출범해 4차 유해 발굴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저 뼈가 누구의 부모의 것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이제는 유전자 검사도 좀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2023년 3월 시작된 1차 유해 발굴 과정에서 폐광에 남겨져 밀봉된 뼈가 담긴 포대자루 5,000여개를 굴 밖으로 꺼냈다. 포대를 풀어 1,403점의 뼈와 유류품을 발견했다. 지난 2024년 6월 17일부터 진행된 2차 발굴에서는 흙포대 2,100여개 안에서 모두 2,850여점의 유해와 유류품이 나왔다.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는 오는 10월 29일 경산시 평산동 위령탑 앞에서 제75주기 위령제를 연다.
진화위는 2010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승만 정권 당시인 1950년 우리나라 군경에 의해 민간인 3,000여명이 코발트광산에서 사살됐다. 경산, 청도 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수감자들로, 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에 협조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진화위는 "불법 행위" 결론을 내렸다. 유족들에 의한 '진실규명' 신청이 봇물을 이뤘고, 최근까지도 '국가에 의한 희생자'라는 진실규명 결정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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