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온전한 두개골들과 상반신, 하반신의 팔다리 뼈들.
그리고 누군가 누군가에게 쐈을 탄창과 탄피들. 땅을 판지 일주일 만에 흙더미 아래에서 발견됐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인 경북 김천 돌고개에서 74년 만에 유골 수십점이 나왔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가 유해 발굴 작업 중인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산 173-1 이른바 '돌고개'에서 2일 발굴 작업 중 여러점의 유골을 포함해 탄피, 탄두들이 발견됐다.
'한국전쟁 전후 김천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는 2일 "74년 만에 국가 기관의 첫 유해 발굴 작업 중 뼈가 확인됐다"며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추가 유해들이 더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해 발굴 용역을 맡은 '삼한문화재연구원'에 확인한 결과, 발굴 작업은 송죽리 산 173-1 일대 900㎡에서 진행되고 있다. 8월 23일부터 본격적으로 발굴해 일주일 만인 2일 유해들과 탄피, 탄두들을 찾았다.
산기슭 굴곡진 경사면 흙바닥을 아래로 70cm 파 내려가 가로 7m, 넓이 3.5m~4m 경사면 위쪽 벽면에 사람 뼈가 듬성 듬성 확인됐다. 완전 유해, 부분 유해, 감식 불능 유해 3가지 중 일부 유해들이 나왔다.
온전한 두개골 3개체가 발견됐다. 최소한 3명의 사람이 한 곳에 매장된 것이다. 또 상반신과 하반신의 팔과 다리 일부 뼈들이 나왔다. 모두 사람의 시신이다. 이날 발견된 일부 유해는 수십점에 달한다.
M1, 카빈 소총에서 발사된 탄피와 탄두 수십점도 같은 곳에서 유해들과 함께 발견됐다.
유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장소들은 발굴 작업에서 먼저 제외했다. 유해가 묻혔을 것으로 예상되는 돌고개 일대에서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오는 9월 말까지 현장 유해 발굴 작업을 이어간다.
발견된 유해와 탄피 등은 세척해서 감식을 맡긴다. 이어 오는 12월까지 현장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유해는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임시 봉안 시설인 '세종추모의 집'에 이관해 안치한다.
강지원 삼한문화재연구원 과장은 "유해가 온전히 노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70여년이 지나 많이 상한 상태"라며 "일단 일부 뼈들과 탄피를 발견해 현장에 표기하고 계속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영구(79) 김천 유족회장은 "실제로 뼈를 보고 너무 많이 울었다. 사람이 볼 것이 아니지 않냐"며 "저 뼈가 내 아버지든 다른 사람의 가족이든 너무 비참한 일이다. 실탄과 시체가 뒤섞인 걸 보니 참으로 전쟁이라는 것이 비참하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렇게 땅을 조금만 팠는데도 시신들이 많이 나오는데, 정부는 앞으로 예산이 없다고 유해 발굴 작업을 멈춰서는 안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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