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 유해를 수습한 경북 김천 돌고개 학살터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진혼제가 열렸다.
희생자들이 오랫동안 잠들었던 흙더미 위에 국화꽃 한송이를 놓고 고개 숙여 묵념했다.
학살의 무덤가에 달려온 이들은 고인들을 향해 술 한 잔 따르고 곡을 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같은 민간인 학살 유족(대구 10월항쟁)인 이향(67) 화가는 수묵화를 그리며 위로를 건넸다.
"누구에겐들 가슴 아픈 사연 한 둘 없을까. 서럽고 눈물도는 젊을 지나, 고향 언덕에 이르노니 아슬히 아버지 보이누나. 아버지!"
추모의 글귀를 통해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이 편안하게 쉬기를 바랐다.
◆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와 김천교육너머 등 대구경북지역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11일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산 168 이른바 '돌고개'에서 '10월항쟁 및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진혼제'를 진행했다.
'경북(김천)지역 10월항쟁 유적지탐방'의 일환이다. 이들 단체는 이날 진혼제에 앞서 오전부터 김천지역 곳곳에서 탐방 활동을 벌였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10월항쟁 역사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전쟁 당시 미군 폭격 현장인 김천시 황금동 한신아파트 건너편 철도 굴다리와, 항일투사들이 졸업한 김천초등학교 등을 돌아봤다. 진혼제를 진행한 돌고개는 김천지역의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현장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보고서에 따르면, 김천 희생자들은 1950년 7월 10일쯤부터 국민보도연맹, (좌익)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야산과 고개에서 죽음을 맞았다. 김천에서 희생된 국민보도연맹원은 1,200여명, 형무소 재소자는 600여명으로 대략 1,800여명이 총살당했다.
대구 '10월항쟁'이나 경산 '코발트광산'과 마찬가지로 김천에서도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국가는 군경을 동원해 김천, 경산을 비롯해 영천과 경주 등 경북 곳곳에 만행을 저질렀다.
◆ 학살의 증거는 올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돌고개에서 유해 32구를 수습했다.
흙구덩 깊은 곳에서 켜켜이 쌓인 두개골과 뼈들이 발견됐다. 탄피, 탄두, 탄창 등 총탄 135점도 나왔다. 1차 발굴에서 수습한 유류품은 모두 201점이다.수습한 유해와 유류품은 '세종추모의 집'으로 이관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유해들이 발견된 것은 아니다. 유해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매장지'는 돌고개에만 6곳이 더 있다. 이번에 발견한 곳 이외에 돌고개 곳곳에 '매장 추정지' 푯말이 붙어 있다.
11일 현재는 예산이 없어 추가 유해 발굴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2차 발굴 계획도 없다. 구성면의 또 다른 유해 매장 추정지 이른바 '대뱅이재'(광명리 산 6-1, 110번지 일대)는 아직 1차 발굴도 하지 못했다.
32구의 유해를 수습한 현장만 덩그라니 남아 있다. '유해 발굴 수습지(2024년 9월 수습)' 표지판이 외롭게 서있다. 풀과 나무가 자란 돌고개 계곡 능선을 따라 어딘가에 희생자들이 묻혀 있을 수 있다. 유족들은 애타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지켜보는 시민들도 안타깝기만 하다.
◆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곳이 김천"이라며 "하지만 학살 당한 독립운동가들은 지금도 잊혀져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뿐만 아니라 돌고개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도 정부는 제대로 된 진실규명을 하지 않고 있어 유족들을 아프게 한다"면서 "아픔의 역사에 대해 끝까지 진상규명해 이 곳에 잠든 희생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자숙 김천교육너머 회원은 "겨우 32구의 시신을 수습했을 뿐"이라며 "(유해) 매장 추정지가 아직 6곳이나 더 남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의 진실을 찾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예산이 추가로 배정돼 2차 유해 발굴 작업을 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원영민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사무차장은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 국가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의 진실이 74년 만에 일부나마 드러났다"며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결코 멈춰선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전쟁 전후 김천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회장 강영구)'와 김천시는 오는 28일 '제1회 김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위령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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