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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80년' 고통의 대물림에도...대구 2·3세대 지원조례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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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나카구에 있는 '원폭 돔'. 일본 히로시마의 상업전시관으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지난 1945년 8월 6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반파된 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현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과 연결돼 있다.(2024.8.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나카구에 있는 '원폭 돔'. 일본 히로시마의 상업전시관으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지난 1945년 8월 6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반파된 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현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과 연결돼 있다.(2024.8.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사흘 뒤인 9일 나가사키에도 떨어졌다.  

일본 제국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미국의 반격이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한 원폭 투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피폭의 아픔은 80년 지난 지금까지 1세대에 이어 2, 3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당시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강제징용노동자들을 비롯해 유학생, 이주민, 일반 근로자 등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던 많은 한국인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대구지역의 경우 경상남도와 부산에 이어 전국에서 원폭 피해자가 3번째로 많다. 

피폭으로 인해 여러 질병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지원조례도 6년 전 대구에 제정됐다.

1세대 원폭 피해자 뿐만 아니라 자녀와 손자녀 등 2~3세대까지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1세대들에게만 월 5만원 수당을 지급할 뿐 후손 지원은 전무하다. 2~3세대 원폭 피해자가 몇명이나 되는지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지원조례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설치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히로시마 현본부가 건립했다. 한국인 피폭 사망자 2,824명의 명부가 봉납됐다. 위령비에 꽃과 리본 등이 놓여져있다.(2024.8.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설치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히로시마 현본부가 건립했다. 한국인 피폭 사망자 2,824명의 명부가 봉납됐다. 위령비에 꽃과 리본 등이 놓여져있다.(2024.8.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사)한국원폭피해자협회대구경북지부(지부장 박일부)는 지난 5일 대구 중구 곽병원 대강당에서 '원폭 피해자 제80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이들은 "원폭 투하 80년을 맞아 한국인 희생자들 넋을 기린다"며 "1세대 피해자에 대한 복리 증진과 후손들에 대한 법·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1945년 1월 3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박일부(80) 지부장은 원폭 피해 1세대다. 태어난지 8개월 만에 피폭되는 아픔을 겪었다. 박 지부장과 같은 대구 1세대 원폭 피해자는 200여명이다. 일본이 국외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국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금은 1인당 월 15만원(정부 10만원, 대구시 5만원), 이마저 1세대들만 지원하고, 2~3세대는 0원이다. 

박 지부장은 6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지역의 2세대 피폭자만 260여명"이라며 "암, 질환 등으로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후손 지원은 0원. 제도상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이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원폭 투하 80주기를 맞아 대구경북지역의 원폭 피해자들이 '한국원폭 피해자 제80주기 위령제'를 열었다. (2025.8.5.대구 중구 곽병원 대강당 / 사진.한국원폭피해자협회대구경북지부 
원폭 투하 80주기를 맞아 대구경북지역의 원폭 피해자들이 '한국원폭 피해자 제80주기 위령제'를 열었다. (2025.8.5.대구 중구 곽병원 대강당 / 사진.한국원폭피해자협회대구경북지부 

◆ '대한적십자사 원폭피해자 사할린동포지원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원폭 피해 한국인은 7만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4만여명이 숨졌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생존자 3만여명 가운데 2만3,000여명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국내 생존자는 1,633명(2025년 8월 기준), 평균 나이는 83세다. 

대구에 등록된 1세대 피해자는 244명이다. 전국 피해자의 14.9%로, 경남과 부산에 이어 3번째로 피폭자가 많다. 대구시는 이 중 240명에 대해 매월 5만원을 지원한다. 경북지역의 1세대 원폭 피해자는 97명이다. 대구경북 1세대 피해자만 340여명이다. 그러나 대구의 2~3세대 피해자 공식 수치는 없다. 

특별법과 조례가 있지만 지원 대상을 1세대로 한정 지은 탓에 후손 피해 규모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대경지부가 추정하는 대구 2세대 피해자는 260여명, 3세대는 추정치조차 없다. 이처럼 후손들에 대한 미흡한 지원은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이 비슷하다. 

한국 정부는 2017년 '한국인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시행했다. 대구시의회는 2019년 '대구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제정했다. 지원 계획 수립을 의무화한 기초적 조례로 실질 지원은 전무했다. 이어 2021년 2~3세대까지 지원할 수 있게 조례를 개정했다. 

조례 제정으로 ▲대구시장은 원폭 피해자, 자녀, 손자녀의 복지와 건강에 관한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원폭 피해 교육과 홍보, 실태조사와 자료정리, 의료와 상담 지원, 추모사업 등도 지원할 수 있다. ▲예산 범위 안에서 요양생활수당도 지급할 수 있다. 이어 대구시는 조례 제정 1년 뒤인 2022년부터 지역에 거주하는 원폭 피해 가구 1인당 생활보조수당 5만원을 지급했다.

대구경북의 1~2세대 원폭 피해자들이 위령제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2025.8.5) / 사진.한국원폭피해자협회대구경북지부   
대구경북의 1~2세대 원폭 피해자들이 위령제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2025.8.5) / 사진.한국원폭피해자협회대구경북지부   

하지만 2~3세대 지원은 현재까지 하지 않고 있다. 추모비 설치나 후손 실태조사도 전무하다. '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일뿐, 강제성이나 처벌 규정이 없는 탓이다. 조례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이유다.

반면, 경기도의 경우 올해부터 도내 원폭 피해자와 후손들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에 나선다. 올해 처음 2,000만원 예산을 들여 추모사업비를 신설하고, 지원금액을 월 5만원에서 7만원으로 인상했다. 특별법 개정과 무관하게 지자체 의지만으로 피해자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추모사업과 추진하는 모양새다.   

◆ 대구시의 경우 조례를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한 노력이 저조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지원 대상을 2~3세대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후손들까지 실질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는 원폭과 2~3세대 피해자들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김흥준 대구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매월 1세대들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고, 생존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손 지원에 대해서는 "조례가 있지만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1세대 지원만으로 복잡하다. (특별법) 법적 근거도 부족해서 후손 규모 파악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박창석(국민의힘.대구 군위군)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은 "조례가 제대로 기능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비점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며 "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지 의원들과 상의해보겠다"고 답했다. 

한편, 한국원폭피해자협회대경지부는 오는 10월 '원폭 참상 사진 전시회'를 연다. 대구시민들을 대상으로 원폭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핵무기 확산 방지 홍보, 세계 평화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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