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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주기 원폭 피해자와 함께하는 '합천 비핵·평화대회' 기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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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상희 변호사

경남 합천에서 열린 비핵·평화대회에 전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2025.8.6) / 사진.합천비핵평화대회
경남 합천에서 열린 비핵·평화대회에 전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2025.8.6) / 사진.합천비핵평화대회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수십만명이 사망하고 부상을 당하거나 방사능 피폭으로 고통을 입은 사람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20세기 핵무기의 피해자들은 이들에 그치지 않는다. 1945년 지구상 최초이자 최후의 핵공격 이후 미국을 비롯한 공식 핵보유국과 인도, 이스라엘을 비롯한 비공식 핵보유국들은 수많은 핵폭발 실험을 하면서 방사능 오염에 의한 피해를 초래하였다. 

핵실험 대상이 된 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이 되어 사람과 동식물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고, 핵실험 당시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은 다수가 심각한 방사능 피폭의 피해를 입게 된다. 필자는 2025년 3월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핵무기금지조약(TPNW) 당사국 회의에서 민간참여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리고 올해 8월초에 있었던 2025 합천 비핵·평화대회에서 증언을 한 해외 증언자들을 통해서 듣게 된 내용을 토대로 핵실험과 핵원료 채굴 과정에서의 방사능 피해에 대한 역사와 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미국의 핵실험장이 된 마샬제도, 프랑스의 핵실험장이 된 폴리네시아 지역, 영국의 핵실험장이 된 호주대륙 원주민 거주지역, 소련의 핵실험장이 된 카자흐스탄 지역, 그리고 일본에 투하된 초기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우라늄 채굴 현장이었던 아프리카 콩고지역이 그 피해가 알려지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의 경우 핵실험 횟수가 타 핵보유국에 비하여 적은 편이지만, 대상지역이 된 신장위구르 자치주 지역의 피해현황 파악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태이다. 

마샬제도의 본래 이름은 아일릉기나(Aelon-Kein-Ad)이고, 폴리네시아의 본 이름은 마우히누이(Maʻohi-Nui)이다. 그들 주민이 대대로 간직해 오던 이름을 빼앗기고 '마샬'이나 '폴리네시아'니 하는 서양식 이름을 쓰게 된 것은 18세기 이후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섬을 침략하고 지배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땅과 사람들의 이름을 아일릉기나와 마우히누이로 부르고 있다.  

마샬제도의 베네딕과 콩고의 이사야, 카자흐스탄의 아이게림, 미국 선주민 레오나 모건은 지난 2월부터 3월에 걸쳐 3주간 진행된 한국인 피폭자 방미증언단 활동 과정에서 만나 상당히 깊은 대화를 나눈 바 있는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핵무기 피해에 대하여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폭탄 투하로 인한 일본인 피해에만 주목하고, 핵실험 등 다양한 핵활동으로 인한 피해자 존재를 인식하지 않으며,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를 가져온 제국주의 역사를 간직한 일본과 서구의 백인들이 집단적 반성 없이 조직과 거대한 돈의 힘으로 진행하는 '반핵평화운동' 흐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세계 피폭자 초청 증언대회(2025.8.8.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 / 사진.합천비핵평화대회
세계 피폭자 초청 증언대회(2025.8.8.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 / 사진.합천비핵평화대회

1955년 '아인쉬타인-러셀 선언'으로 촉발된 반핵평화운동은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다가 2017년 핵무기금지조약(TPNW)의 성립과 함께 조약 체결 과정에서 주요한 공헌을 한 호주에서 출발한 비핵평화운동단체 '핵무기폐기국제캠페인(ICAN)'이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히바쿠샤'로 알려진 핵피해자들의 인권과 비핵평화 세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일본의 피폭자단체협의회(被團協.히단쿄)가 202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제3세계 약소민족 반핵운동가들은 제국주의가 불러온 전쟁으로 인한 원자폭탄 피해,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당한 약소민족들의 공동체와 미국이나 호주의 내부 원주민 지역에서 핵실험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여 내외부 식민지 민중들이 핵피해의 핵심에 있다는 점, 그러한 핵피해의 근본 원인이 된 식민주의 지배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없는 주류 반핵운동만으로는 근원적 해결이 되기 어렵다는 점에 대하여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비판적 문제 의식에 기반한 식민지 피억압 민중들의 국제연대에 기반한 반핵운동의 종요로움을 알아차리고 실천하고 강화하자는 연대의 흐름이 지난 방미활동 시기에 이들과 한국인 방문단의 집중적인 만남의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해외 증언자들은 각자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던 그들 핵피해의 실상을 알리고 피해에 대한 가해자의 사죄(apolozy)와 배상(compensation)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였다. 아래에서 간단히 각 지역의 핵피해의 역사를 살펴본다. 


하와이섬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중간의 남태평양 아일릉기나(마샬제도)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일본이 점령하여 주권을 박탈하고 식민지화하였고, 태평양 전쟁 후반에 미군이 일본군을 축출하고 진입하면서 미국 식민지가 됐다. 미국은 자국에서 처음 실험을 한 원자폭탄 폭발실험의 후속작업으로 그들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을 해외의 장소를 찾아 핵실험을 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된 곳이 아일릉기나다. 아일릉기나 큰 영토인 비키니섬에서 미국 핵실험과 그로 인한 피해는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일릉기나에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67차례 핵실험을 했다. 1992년까지 미국이 실행한 핵실험 1054건의 6%다. 그 중에서 1954년 3월 1일 '캐슬브라보'라는 이름으로 비키니섬에서 자행된 수소폭탄 폭발실험은 히로시마 원폭의 1천배로 엄청난 방사능을 유출해 이후 비키니섬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됐다.

아일릉기나 반핵평화활동가 베네딕 카부아 매디슨에 의하면 현재 아일릉기나 본토에는 약 5만명, 미국에 약 8만명, 유럽 기타 지역에 6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아일릉기나 출신 사람이 20만명 가량 된다. 미국 거주자 중에서 2만여명이 미국 남부 아칸소주에 있는 스프링데일이라는 마을에 집단 거주한다. 2025년 2~3월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 피폭자 방미증언단 그룹이 스프링데일 마을을 방문하여 며칠을 머물며 비핵평화를 향한 연대의 뜻을 나눈 곳이다. 

1946년 미국이 비키니 산호초로 알려진 태평양 아일릉기나(마셜제도)에서 실시한 세계 최초 원자폭탄 투하 핵실험 / 사진.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홈페이지
1946년 미국이 비키니 산호초로 알려진 태평양 아일릉기나(마셜제도)에서 실시한 세계 최초 원자폭탄 투하 핵실험 / 사진.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홈페이지

마우히누이(Maʻohi Nui)는 아일릉기나와 가까운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이고 '폴레네시아 제도'라는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붙인 이름으로 불려온 아름다운 곳이다. 프랑스는 1960년 알제리 레강(Reggane)에서 70킬로톤급 핵폭탄 '제르부아즈 블뢰(Gerboise Bleue)'를 폭발시키며 핵무기 보유국 대열에 들어선다. 3차례 대기 중 핵실험과 사하라 사막에서 13회 지하핵실험은 지역 주민들에게 심각한 장기적 건강 피해와 환경오염을 초래했다. 알제리 독립으로 더 이상 핵실험을 할 수 없게 되자, 프랑스는 1966년 핵실험 프로그램을 식민지 마우히누이로 이전했다. 그 뒤 26년 동안 프랑스는 마우히누이에 속하는 태평양 산호초 섬에서 지상과 지하 187회 원자폭탄,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현지 주민들을 위험한 방사선에 노출시켰고, 식량과 식수 자원은 오염됐으며, 산호와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

세계에서 세 번째 핵보유국이 된 영국의 주된 핵실험 무대는 제국주의 영국 시절의 정착식민지였던 호주였다. 호주 대륙 중에서도 앵글로색슨계 백인이 거주하는 지역이 아니라 원주민이 거주하던 섬이나 호주 남부지역이 그 대상이 되었다. 첫 번째 핵실험은 '허리케인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서호주 몬테벨로 제도에서 실행했다. 1953년 10월 14일과 26일 '토템 1호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남호주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의 에뮤필드에서 호주 본토에서의 첫 핵실험이 뒤를 이었다. 이후에도 영국은 호주 남부 원주민 거주 지역에서 계속 핵실험을 했다. 영국은 미국 네바다 주와 호주의 대륙, 섬을 통틀어 100% 원주민 거주지역에서만 핵실험을 했다. 앵글로색슨 계열 백인거주 지역은 한곳도 없다.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의 주요한 한 구성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핵실험을 했다. 역시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백인 거주지역은 핵실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소련은 1949~1989년까지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지역에서 456회 핵실험을 했다. 소련에게 세미팔라틴스크는 '이상적인 핵실험지'로 간주되었다. 인구 밀집도가 낮은 광활한 지역으로 중앙정부의 통제가 용이한 탓이다. 세미팔라틴스크 지역에는 현재까지도 기형아 출산율, 암 발생률, 불임률 등 각종 건강 문제에서 현저히 높은 비율로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탈퇴해 독립한 1991년, 첫 정치적 결단으로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고 러시아에게 이관하였으며,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을 영구 폐쇄하였다. 

2025 합천 비핵·평화대회에서 '아시아·태평양 피폭자 연대와 세계비핵평화 선언'을 낭독하는 전세계 시민들(2025.8.6) / 사진.생명평화아시아 회원 김찬휘
2025 합천 비핵·평화대회에서 '아시아·태평양 피폭자 연대와 세계비핵평화 선언'을 낭독하는 전세계 시민들(2025.8.6) / 사진.합천비핵평화대회

이상 내용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의한 공식 핵보유국 5개 강국 중 중국을제외한 나라들의 핵무기 실혐과 그로 인한 소수민족들의 피해의 역사이다.

핵피해자들의 증언과 문화예술행사를 비롯한 비핵·평화대회의 모든 행사는 작년 말부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준비를 해 온 '2025 합천 비핵·평화대회 조직위원회'가 주관했다. 조직위에는 합천을 중심으로 한 피해자단체들, 합천평화의집,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서울, 경기, 대구 추진모임이 참여했다. 하반기 몇가지 행사를 마치면 비핵·평화대회는 마무리된다. 원폭피해 80주년을 맞아 종요로운 열매를 맺는 셈이다. 14회를 맞는 비핵·평화대회는 올해 첫 조직위를 구성하여 대표단, 고문단, 집행위원회, 지역별 추진모임이라는 조직 틀을 갖췃다. 오는 2026년에는 차분하고 내실있게 준비해 확장된 국제 수준의 비핵·평화대회 모습을 갖추고 시민들에게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 

 

[기고]  성상희 / 변호사. 생명평화아시아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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