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70만명이 넘는 사람이 피폭되어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로 지배받고 있던 조선의 민초들 중에도 일제의 수탈과 강제동원으로 일본의 각 지역으로 강제징용, 징병 등으로 끌려간 사람, 일제와 그 하수인들의 꼬임에 빠져 팔려간 사람, 생존이 어려운 정도의 가난을 겪는 조선을 탈출하여 먹고살 자리를 찾아 일본에 건너간 사람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살고 있었다.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의 숫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전후에 공개된 일본 내무성 자료에 의하면 두 도시에서 74만여명이 피폭되어 31만여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전체 피해자 수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니 조선인 피해자의 숫자는 정확히 추산하기가 더욱 어렵다. 대체로 원폭투하로 사망한 조선인의 수는 5만여명이고, 피폭부상자도 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폭부상자중 4만3천여명이 귀국, 7천여명이 일본에 잔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폭을 당하고 살아남은 부상자를 '히바쿠샤(被暴者)'라는 일본말로 부르는 것이 국제관행이다. 영어로는 '생존자들(survivals)'이라 부른다.
피폭생존자들은 화상 등 외상을 입은 경우와 방사능 피폭만 당한 경우로 나뉘어진다. 피폭자들은 대부분 피폭 후유증으로 각종 질환을 앓으며 살아가고 있다. 조선인 피폭자들은 성치 않은 몸으로 귀국하여 해방된 땅에서 살게 된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피폭자들 삶의 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생존 피폭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3.1~93배의 현저히 높은 비율로 암을 비롯한 피부병, 정신질환, 괴사증 등 다양한 질병에 걸려 있고, 그 질병들은 일반인에 비해 3.4~89배의 현저히 높은 비율로 피폭자의 자녀와 손자녀 등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당시 재일조선인 중 피폭을 당하고 귀향한 사람들은 가난과 생활고에 더하여 심각한 건강의 문제로 큰 고통을 받았다. 의료비, 생활비 등 국가 공동체의 지원은 한국에서 2016년 5월 29일 '원자폭탄피해자원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시행은 1년 후) 이전까지 없었다. 피폭자와 그 후손들은 주위의 시선, 결혼을 할 경우의 걸림돌이 되는 문제 등으로 인하여 피폭의 피해를 우리 사회에 거의 드러내지 못했고, 많은 사람이 질병과 가난으로 큰 고통을 겪어 왔다. 심지어 자식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일제 강점기 후반부에 일본에 가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거주하다가 피폭을 당한 피해자 중 합천 출신이 50% 이상 된다고 알려져 있다. 구체적 통계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여 그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합천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 합천을 '한국의 히로시마'로 부르기도 하며, 합천에는 피해자 관련 시설로 '합천원폭자료관'이 있고, 원폭피해자들의 공동주거 시설인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원폭2세 환우쉼터인 '합천평화의집' 등의 공간들이 있다.
피해자단체로는 원폭피해자 1세대로서 생존자들의 모임인 '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있고, 1세 피해자들의 자녀 및 손자녀 등으로 이루어진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원폭피해 1세대의 자녀나 손자녀들로서 원폭으로 인한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한국원폭2세환우회'가 있다. 원폭2세들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알려진 것은 자신의 원폭피해 2세로서의 정체성을 공개하고 2, 3세들의 권익옹호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다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故) 김형률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김형률은 그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2025년 8월 5일과 6일 이틀간 원폭투하 80주년을 맞아 2012년부터 해마다 개최되어 온 '합천 비핵·평화대회' 와 피폭사망자를 기리는 '제80주기 한국인 원폭희생자 추모제'가 열렸다.
첫날 행사는 개회선언, 조선대 강희숙 교수의 원폭피해지의 현실에 대한 발표와 영남대 이은정 교수의 토론, 이어서 한국 전통음악을 하는 김평부 선생의 대금연주와 노래, 오랫동안 피폭자 지원활동을 해 온 전기호 목사의 노래, 7개국 피폭자들 및 활동가들의 증언, 7개국 핵피해자들과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낭독한 비핵평화선언 채택이 있었고, 피폭의 고통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무 공연에 이어 마지막으로 원폭 피해자 4대에 걸친 가족사를 그린 연극 '불새' 공연이 있었다.
먼저 '피폭, 대를 이은 고통의 기억과 기록'을 주제로 조선대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 단장인 강희숙 교수의 발표와 영남대 이은정 교수의 토론이 있었다. 강희숙 교수는 당사자들과의 인터뷰 등 체계적인 조사를 통하여 얻은 정보를 취합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 특히 2, 3세 원폭피해로 인한 환우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한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영남대 이은정 교수는 그동안 합천원폭자료관과 협력하여 원폭피해자의 구술 채록 작업을 해 오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보존하는 일을 해 왔고, 그 경험에 기초하여 피폭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피폭자 증언은 마셜제도 출신의 핵실험 피폭 4세인 베네딕 카부아 메디슨 (Benetick kabua Maddison), 폴리네시아 피폭자 후손인 테아투아헤레 테이티-기에를라흐(Teatuahere Teiti-Gierlach), 우라늄 채굴 작업으로 큰 피해를 입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동하는 이사야 몽곰베 몸빌로, 피폭 2세로서 세이난 가쿠인대학 신학부 교수인 하마노 미치오, 핵실험 피해 피폭 3세로서 '카자흐스탄 핵전선연합' 공동 창립자인 활동가 아이게림 세이테노바, 미국 뉴멕시코주 나바호네이션 선주민으로 원주민공동체 활동과 반핵평화운동을 하는 미국의 레오나 모건이 나와서 증언을 하였다. 각 활동가들이 증언하고 발표한 내용과 관련하여 각 지역의 핵피해상황은 뒤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전기호 목사와 김평부 선생의 연주와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깊은 음악이었다. 이날 행사의 가장 큰 이벤트였던 국제 핵피해자 증언 이후, 7개국 핵피해자들과 반핵평화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언어로 읽고 이를 한국어로 통역을 한 비핵평화선언문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후 반제국주의 비핵평화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문서가 될 것이다.
피폭의 고통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무 공연에 이어 마지막으로 원폭 피해자 4대에 걸친 가족사를 그린 연극 '불새' 공연이 있었다. 진혼무는 대구의 춤꾼 박정희, 형남수 여와 남 두 무용수가 영혼을 담은 모습으로 그려낸 울림이 깊은 춤이었다.
연극 '불새'는 피폭 2세로서 '한국원폭피해2세환우회' 회장으로 섬김을 하는 한정순님 가족의 3대에 걸친 삶을 모티브로 해서 대중모금을 통해 제작비를 조달하여 만들어졌다. 히로시마 피폭자 2세로서 합천에 거주하는 한정순님의 삶의 여정은 김옥숙 작가의 소설 '흉터의 꽃'에 잘 나타나 있다. '불새' 극본은 위 소설을 모티브로 하되 완전히 새로 창작된 내용이다. 종잣돈을 내는 연극 추진위원들이 중심이 되고 소액후원자들이 일부 참가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대구의 한 회계법인이 큰 돈을 기부하여 5천만원 가량 되는 제작비를 마련하여 제작한 시민연극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을 모아 준 모든 시민들과 기업의 도움으로 연극이 완성될 수 있었다. '불새'는 6월 22일 대구에서 시연을 하였고, 7월 11일과 12일 대구에서 공연을 하고, 8월 5일 합천 대회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9월 7일 경기도 광명시에서 진행한 마당극 축제에서 공연을 하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공연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합천에서 핵피해의 증언을 한 해외초청 피해자, 활동가들은 강행군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여 8월 7일 수원에서, 8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증언행사를 진행하였다. 그 사이 7월 8일에는 2025 합천 비핵·평화대회의 일환으로 서울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원폭 투하 80년 추모 공연을 하였다. 동국대 남산홀에서 열린 공연에는 많은 시민과 핵피해 당사자들이 관객으로 참가하였고, 동국대 이사장 돈관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진경 스님이 축사와 덕담을 했다. 동국대는 붓다의 가르침에 부응하는 평화의 행사를 지원하는 뜻에서 공연장 대관료를 받지 않는 도움을 주었다. 동국대와 조계종 스님들의 관심과 도움은 비핵·평화대회의 진행에 큰 힘을 주었다.
[기고] 성상희 / 변호사. 생명평화아시아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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