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일본 해저 갱도 수몰사고로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136명이 잠든 '조세이탄광(長生炭鑛.장생탄광)'에서 83년 만에 유해가 발견되자 유족들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가가 유해 발굴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일본 장생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와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은 29일 오후 대구시의회에서 보고대회를 열고 "조세이탄광 갱도 속에서 드디어 인골이 발견되는 역사적인 장면을 우리는 마주했다"며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처절한 증언이자 우리가 응답해야 할 역사의 울부짖음"이라고 했다.
특히 "이 기적은 유족회와 귀향 추진단,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의 땀과 눈물의 결과"라며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없이 민간의 헌신으로만 이룬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만이 한일 양국의 미래를 열 수 있다'고 강조하지 않았냐"며 "더 이상 유족과 시민단체가 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지금 당장 양국 정부는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 한일공도조사단'을 구성해야 한다"면서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고향으로의 봉환 ▲추모사업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은 이름 없는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청춘이었다"며 "오늘 우리가 마주한 두개골은 억울하게 갇혀 죽어간 모든 영혼의 절규다. 그 절규에 답하는 것이 국민주권정부가 져야 할 도리이자 인류 양심이 요구하는 정의"라고 강조했다.
할아버지 고(故) 전성도씨를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로 잃은 손자 전영복(59.대구)씨는 "해저 탄광에서 희생자들의 유골이 잇따라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이들 중 일부가 대구경북 출신 노동자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우리지역 희생자들이 많은만큼 대구시장 등 지자체의 지원과 예우가 필요하다"면서 "대구시는 중앙정부와 연계해 최근 발견되 유골이 대구시민인지 아닌지 신원 확인에 협조하고, 관련 기록 조사와 희생자 명단 확보에도 앞장서 유해 봉환과 추모사업에 대한 의사를 표명해달라"고 호소했다.
뿐만 아니라 "돌아오지 못한 대구시민, 잊혀진 노동자에게 이름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대구경북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이라며 "대구시장님이 행정적 관심과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조덕호 귀향 추진단 단장은 "역사적 증거인 유골들이 드디어 빛을 봤다"며 "한일 양국이 공동조사단을 꾸려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희생자 명부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또 "유족과 시민단체, 전문가가 참여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거쳐 다시는 이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동 위령제를 열고, 추모공원을 조성해 이 역사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족회와 귀향 추진단은 내년 2월 7일 84주년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추모제가 한일 정부 공동 주최로 열릴 수 있도록 공동 행동에 나선다. 또 이 자리에 대구시와 시의회가 참여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바다 속 조세이탄광 갱도가 무너져 조선인과 일본인 183명이 수몰돼 희생됐다. 사망자 183명 가운데 조선인 강제진용 노동자는 136명, 이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이 73명이다. 일본 시민단체 새기는회는 시민 펀딩을 통해 민간의 힘만으로 유해 발굴에 나섰다. 한일 양국 잠수부들이 여러 차례 해저 속에서 유해를 찾기 위한 작업을 벌였다. 대구의 귀향 추진단도 유족, 시민들과 함께 유해 발굴 현장을 5차례 찾았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온전한 두개골과 사람의 뼈 여러 점이 발견됐다. 수몰사고 이후 83년 만이다. 일본 경찰은 "인골이 맞다"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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