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우키시마호 참사' 80년...아버지에게 올리는 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한영용(우키시마호 참사 유족회장)
1945년 8월 24일 광복 직후 침몰
강제징용 노동자 등 8천여명 승선
바다에서 폭발, 한국인 524명 숨져
일부 희생자들 야스쿠니에 합사돼
한일회담 앞, 유족 유골조사·봉환 호소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우키시마호에 승선하는 장면 / 사진.독립기념관 

"아버지"

세 살 아들 영용이가 83살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아버지를 만나러 하늘나라에 갈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유골조차 아직 못 찾고 있으니 아버지를 만나서 '나만 왔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 

아버지 유골은 대한민국 땅에 꼭 모셔 놓고 가겠습니다. 그래야 아버지도 나라가 있는 줄 아시겠지요. 아버지 계시는 곁으로 갈 때 꼭 그 이야기는 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2012년 5월 마이즈루 해저에 있는 유골을 조사하러 사비를 털어 수중 조사를 했지만 아직 유골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최근 한국에서는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아버지가 우키시마호 피해자라는 사실을 일본 정부로부터 확인받겠습니다.

그리고 '우키시마호'의 희생자들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습니다. 절대 아버지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억울한 희생자들이 합사되어 있는 것을 철폐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오는 8월 23일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입니다. '우키시마호' 유골 봉환과 유골 조사에 대해 한국와 일본 양국 정상이 공동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하늘에서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

 

※편집자주-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 일본 해군 소속 군함 우키시마호가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 오미나토항구에서 한국 부산으로 출항했다. 한국 강제징용 노동자들과 가족들, 일본 승무원과 해군 병사 등  한일 양국 국민 8,000여명이 승선했다. 일본 패전으로 광복을 맞은 많은 한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당일 승선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배에 탄 사람은 5,000여명에 이른다. 운항 사흘째인 8월24일 오후 5시쯤 배는 부산이 아닌 일본 마이즈루 앞바다로 방향을 바꿔 운항하더니 해안 300m쯤에서 멈췄다. 그리고 얼마 안돼 갑자기 폭발했다. 일본 1차 조사 결과,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524명과 일본인 승무원 25명이 숨지고, 수천여명이 실종됐다. 이후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아다. 그 탓에 유족들은 희생자 숫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아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 희생자 중 일부가 일본 A급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함께 합사돼 논란이다.   

 

[기고] 한영용(83) / '우키시마호 사건 피해자 배상 추진위원회' 회장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