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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80년, 아버지 유해는 언제...대구 온 유족 "유골 봉환"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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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24일 광복 직후 배 침몰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등 8천명 승선
일본 도쿄 우천사에 유해 275구 안치
유족 한영용(83)씨 "아버지 유골 찾아야"
"희생자 실태 공개·추모공간 마련" 촉구
정부 "승선자 명부 분석, 봉환 동의 절차"

한영용(83.경남 거창) '우키시마호 사건 배상추진위원회' 회장이 아버지 고(故)  한석희씨의 인적사항이 적힌 문서를 보여주며 설명 중이다.(2025.9.4.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한영용(83.경남 거창) '우키시마호 사건 배상추진위원회' 회장이 아버지 고(故) 한석희씨의 인적사항이 적힌 문서를 보여주며 설명 중이다.(2025.9.4.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나도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는데, 아버지 유골은 찾아서 금수강산 대한민국에 모셔놓고 왔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한영용(83.경남 거창) '우키시마호 사건 배상추진위원회' 회장이 4일 대구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한 회장은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24일 일제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을 고향으로 송환하던 '우키시마호' 사건으로 숨진 고(故) 한석희씨의 아들이다. 사건 당시 한 회장의 나이는 3살이었다.

한 회장은 우키시마호 생존자이자 아버지의 동료인 고(故) 유경수씨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은 뒤, 1970년대부터 50년이 넘도록 진상규명 활동을 하고 있다. 한 회장은 지난 2012년 잠수부와 함께 폭침 현장을 찾아 수중 조사를 벌였으나, 아버지의 유해는 찾을 수 없었다.

한 회장은 "아버지 유해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발버둥치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이 어디 가서 뭘 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자체를 조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길에 오른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태운 배가 폭발과 함께 침몰한 '우키시마호 사건'.

사건 발생 80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정확한 희생자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일부 희생자들의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 잠들어 있다. 

우키시마호 사건 유족과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한일 양국 정부에 "희생자 실태 공개"와 "유해 봉환"을 촉구했다.

'우키시마호 유골 봉환 촉구 기자회견'(2025.9.4.대구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우키시마호 유골 봉환 촉구 기자회견'(2025.9.4.대구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우키시마호 사건 배상추진위원회(회장 한영용)', '장생탄광희생자 귀향추진단(대표 최봉태)'은 4일 오후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에 안치된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들의 유골들은 여전히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며 "일본에 묻힌 조선인들의 유해를 봉환하라"고 요구했다.

행정안전부에 이날 확인한 결과,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 유해 일부는 일본 도쿄 우천사(佑天寺)에 안치돼 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3차례에 걸쳐 241구를 봉환했고, 현재 275구가 남아있다.

또 행안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일본 정부가 외교부에 제공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전달받아 분석하고 있다. 명부에 기재된 승선자 수만 단순 합산으로 1만8,300명이다. 현재는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거르고, 오번역을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이재명 정부에 ▲유해 봉환을 위한 외교적·법적 조치 ▲희생자 추모공간 확보를, 일본 정부에 ▲희생자 실태 전면 공개, 유해 봉환 협의 즉각 착수를 촉구했다. 이를 위해 오는 16일이나 17일 한국 국회에서 "유해 봉환"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9일에는 일본 국회 중의원 회의실에서 집회를 열고 "한일 정부 간 교섭 개시"를 요구할 계획이다. 

한영용 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우키시마호의 희생자들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목숨을 잃었다"며 "80년 가까이 일본 땅에서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도쿄 우천사에는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로 알려진 한국인 유골 275구가 지금도 안치돼 있다"며 "희생자 유골을 봉환하는 것은 우리가 응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는 유족들을 상대로 봉환 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또 올해 중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승선자 명부를 모두 분석하겠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는 4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의 유해를 빨리 모셔오려고 유족들에게 봉환 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라며 "일본 정부와 협의를 위해서는 아직 여러 절차가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일본 정부로부터 3차례에 걸쳐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단을 받았고, 지난해부터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연말까지 명부 분석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우키시마호에 승선하는 장면 / 사진.독립기념관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우키시마호에 승선하는 장면 / 사진.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광복 이후인 1945년 8월 22일 일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 오미나토항구에서 일본 해군 군함 우키시마호가 출항했다.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과 가족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목적이다. 운항 사흘째인 8월 24일 오후 5시쯤 배는 부산이 아닌 일본 마이즈루 앞바다로 운항하더니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 1주일 뒤인 9월 1일 조사 결과에서 승선자 3,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으나, 유족들은 조선인 희생자만 8,000여명이 넘는다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승선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배에 탄 사람도 5,000여명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또 사건 원인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미군이 바다에 설치한 기뢰에 닿아 배가 폭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해 왔다.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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