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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 새로운 생존 방식에 대한 사유
오영준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 조현욱 옮김 | 김영사 펴냄 | 2015)
2022년 10월 05일 (수) 11:37:46 오영준 pnnews@pn.or.kr

골목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들을 할 때가 있다. '이 길은 신호 체계가 정말 비효율적이네', '여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혼자 있을 때는 금방 사라지는 생각에 그치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이런저런 짧은 대화의 주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000 알지? 이번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집값이 떨어져서 맨날 울상이야. 매입할 때 인터넷으로 엄청 알아봤는데 그때는 쉽게 안 떨어질 줄 알았다네", "여기 신호등 좀 이상하잖아. 옆 동에 사는 누가 구청 홈페이지에 글 올렸다던데 무슨 이유 때문에 이렇게 해놓은 거래. 무슨 이유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스마트폰이나 TV를 통해, 혹은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수많은 정보들을 접한다. 이 정보들의 대부분은 데이터화 되어 어딘가에 기록되어있고, 지금도 기록되고 있다. 내가 처음 본 듯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닿지 못했을 것 같은 정보도 몇 번의 검색을 통해 관련 내용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모든 데이터 중 약 90% 이상이 2015년 이후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이 중 상당수의 데이터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 데이터라고 한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공유받은 정보들을 토대로 새로운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우리 학과 사람들은 말 옮기는 걸 너무 좋아해. 어디 가서 무슨 말을 못 하고 다니겠네"라는 말을 동기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학생이 적은 소수과라서 그런가 보다 했었지만 그 이후로 소속된 대부분의 집단 내에서도 비슷한 말들을 들은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보의 공유가 쉬워진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자신이 가진 정보를 널리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욕망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인류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하라리는 인류 진화 최종 단계의 인류인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다른 호모 속의 여러 종들을 제치고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 계기로 ‘인지혁명’을 제시한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 출현한 인류의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으로 인해 발생한 변화를 말하는데 이 변화를 통해 현생인류는 ‘상상의 질서’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인간이 대형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협력이 필요했다. 개개인이 들소와 사자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사냥에 성공할 수 없었고, 몇십 명 이상의 인간들이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사냥이 가능했다. 결국 무리나 집단을 결속시킬 수 있는 관계 형성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수적이었는데, 50명으로 구성된 무리만 하더라도 1,225개의 일대일 관계가 생기므로 개별적인 소통으로는 신속한 사냥이나 위험으로부터의 빠른 대처가 불가능했다. 대규모 협력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여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 낸 인간들은 무리 내에서 우두머리를 정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명령체계를 만들어 내 무수한 일대일 관계를 적은 수의 관계로 합병하여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하였다.
 
   
▲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 조현욱 옮김 | 이태수 감수 | 김영사 펴냄 | 2015)
 
현생 인류가 약 5만 년 전에 획득한 언어 능력과 상상력은 이들끼리 끝없이 수다를 떨게 해주었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 등의 정보가 끊임없이 공유되며 누가 믿을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도왔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뒷담화’와 ‘소문’의 과정들은 개별의 관계를 뛰어넘는 신뢰의 구축이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개인 간, 집단 간에 형성된 신뢰는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켰다. 결과적으로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종들과는 달리 몇 백 명이 넘는 무리를 만들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었고, 대규모 협력을 넘어 사회적 집단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우리의 조상이 ‘뒷담화’와 ‘소문’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종족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주장은 자못 흥미롭다. 우리 사회에서 뒷말과 뒷소문은 대개 무례한 행위로 여겨지며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강력한 힘을 가지는 국가 혹은 여러 사회집단 또한 상상의 질서 없이는 기능을 유지할 수 없지 않은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며 법과 규율은 사람들 간 체결된 상상의 약속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재앙은 순식간에 찾아올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통용되는 행위가 알고 보니 인류의 가장 큰 무기이자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쓰여왔다는 시각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총 4부로 구성된 [사피엔스]는 <1부 인지혁명>을 시작으로 <2부 농업혁명>, <3부 인류의 통합>, <4부 과학혁명> 순으로 현생인류와 문명의 역사를 풀어낸다. 각 챕터의 주제가 되는 ‘혁명’과 각종 이념 및 제도들의 출현은 보통 인류 발전의 중요한 특이점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일련의 특이점들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누리는 작금의 문명이 완성될 수 있었고, 현대 사회에서 최우선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같은 이념과 제도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주장들을 우리는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발생한 잉여생산물이 불평등을 생겨나게 했고, 정착생활과 동물의 가축화로 인해 과중한 노동과 각종 질병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종 간의 문제로 시작한 불평등의 경우, 현생인류 내부 갈등의 원인이 되어 현재까지도 공고히 이어지는 불평등 지배구조의 근원이 되었다는 주장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화폐), 정치(제국), 사상(종교) 등 심화된 상상의 질서들이 열립 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념과 제도들은 문명의 발전을 크게 견인함과 동시에 생태계 파괴, 불평등의 양극화, 전쟁과 학살 등 무수한 그림자들도 남겼다고 말한다.
 
<4부 과학혁명>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과학혁명이 현생인류의 정체성과 위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 같은 이전의 특이점들이 만들어 낸 이념과 제도들을 낡은 유산으로 만들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지혁명 이전의 시점부터 현재까지 다시 톺아보면, 현생인류가 종의 생존을 위해, 최상위 포식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만들어 낸 모든 질서와 체계가 결국 현생인류 개개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옥죄어 오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여진다.
 
[사피엔스]의 관점에서 현생인류의 전체적인 역사를 놓고 봤을 때,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 가치로 내세워지는 정의로움이나 인권 등의 개념은 상상의 질서라는 틀을 벗어나는 순간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효력이 상실되어가고 있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인류의 생존, 혹은 개인의 생존을 위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 고찰해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진다.
 
개개인이 인류 전체 역사의 흐름을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무리 간의 사소한 뒷담화나 정보 공유로 시작된 작은 흐름이 지금의 인류 문명을 만들어낸 것처럼 개개인의 사소한 행위가 미래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자신의 저서를 매개로 현생인류의 역사를 독창적으로 풀어낸 유발 하라리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일 것이다.”라는 화두를 던진다.
 
타인과 자연을 대상화하여 생존해왔던 인류의 역사를 숙지하고,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면 이전과 조금은 다른 역사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발현한 많은 그림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존 방식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분명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 앞에서 “새로운 혁명의 여지는 항상 남아있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또한 현생인류가 가진 욕망 중 하나가 아닐까. 유명 영화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늘 그랬듯이 답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책 속의 길] 206
 오영준 / 대구 북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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