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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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희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021.5)


내가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고를 때 만족도를 보장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누구의 작품인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영화는 감독, 드라마는 작가, 책은 저자가 누구인지를 보고 고를 때가 많은데 사실 이 책의 저자인 박정훈 기자가 쓴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신간으로 나왔을 때 주저없이 선택해서 읽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온라인상에 젠더 이슈 관련한 글이나 기사가 올라오면 열심히 찾아 읽게 되는데 내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글들은 대체로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들의 글일 때가 많다.
 
그런데 가끔 이 글 참 좋네 누가 썼지 하고 글쓴이를 확인할 때 박정훈이란 이름 석자를 만날 때가 자주 있었다. 남자인듯한데 이사람 누구지 싶었고 오마이뉴스 기자라는 것 정도를 기억하곤 지나쳤었다. 그러다가 올봄 눈길을 확 끄는 제목의 이 책을 박정훈 기자가 썼다는 걸 알고는 반가운 마음에 읽게 되었다. 300쪽이니 적은 분량은 아닌데 몰입해서 하루 만에 읽었고 책모임에도 추천해서 함께 읽고 토론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성교육 교재로도 강추한다는 소감을 남겼었다.

이 책의 부제는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혐오에 빠지는가’이다. 정말 궁금한 일이다. 여성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남성들 가운데에서도 젠더 감수성이 몹시 떨어지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왜 저럴까 싶었고 실망스러웠다. 박원순 전 시장이나 정의당 김종철 전 당대표의 성추행사건이 준 충격은 얼마나 큰가. 장혜영 의원이 던졌던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을 이 책에서도 던지고 있다.
 
남성 개개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지만 남성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금껏 만들고 지켜왔던 이들은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대안은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인상적인 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다루고 있는 주제가 정말 다양하고 많다는 것, 최근의 젠더이슈는 거의 다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확고한 입장에 기반하여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 아주 분명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021.5)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021.5)
최근의 여성혐오나 백래시(급격한 사회,정치 변화에 대한 반발.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을 뜻하는 용어로 많이 쓰임)를 젠더갈등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편할 때가 많았는데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젠더갈등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한국의 페미니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들의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젠더갈등이라는 말은 굉장히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백래시 현상이나 다름없다. 젠더갈등의 주요한 해결책은, 남성들이 젠더 감수성을 키우고 성평등적 인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2차가해가 끊이지 않고 있는 박원순 전 시장의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왜 추모조차 문제 삼는 거냐며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박원순의 친구들 중 상당수가 일개 개인이 아니라는데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박 전 시장처럼 그의 친구들도 기득권이 됐고 명예나 권력을 얻었다. 그래서 그들의 공적 발언은 그 자체로 ‘권력작용’이다.
피해자다움과 가해자다움이 없는 것처럼, 2차 가해자다움도 없다. 남성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성폭력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수십 년간 일궈온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꿨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했던 그들만의 세계가 여성을 착취하거나 도구로 삼으면서 이룬 결과라면, 기꺼이 파괴되는 것이 맞지 않겠나"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뜨거운 감자, 메갈에 대해서는 어떤가.
메갈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메갈이 어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현재엔 존재하지도 않는데 우리사회에서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말 ‘메갈’.
 
‘너 메갈이지?’란 말은 아주 오래전 ‘너 빨갱이지?’라는 말처럼 강력한 적의를 불러일으키며 페미니스트들을 수세에 몰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저자의 아래와 같은 용기있는 메갈 ‘옹호’와 메갈로 낙인 찍힌 장혜영 의원에 대한 ‘옹호’는 시원함을 넘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진정으로 페미니즘의 방향을 고민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 것은 진보 남성들이 아니라, 그들이 메갈이라고 부르는 페미니스트들이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해본다. 메갈은 남성들이 온갖 악마적이고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인 여성우월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차별당하고 싶지 않고, 폭력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싶은 사람이 바로 메갈이다. 그동안 오랜기간 동안 여성운동을 해온 페미니스트 또는 비교적 젊은 30대 여성 국회의원은 있었지만, 메갈리아 이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청년 여성 정치인은 없었다. 메갈 낙인찍기에 말려들지 않은 장혜영 의원은 국회에서도 페미니스트 정치를 펼치며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저자가 이 책 전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누누이 이야기 해온 것들이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이유로 마치 새로운 이야기처럼 환영받거나 더욱 의미를 부여받는다면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저자의 말이 발화권력을 행사하는 남성의 특권이나 맨스 플레인이 되지 않는 건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굴지 않는, 그의 성찰적인 태도 덕분이 아닐까.  

"나는 내 몸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겪은 고통을 경유해,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전 생애적 압박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여성의 몸 자체가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요소’가 되고, 그것이 어떠한 신체적 특징과 결합되었을 때는 이중 삼중의 배제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내가 감히 상상 가능한 영역일지도 의심스럽다.
여기, 지금, 나의 위치와 관점을 항상 점검하면서 살아간다면, 쉽게 말하는 태도는 조금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보편과 객관을 가장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애로
 
우리나라에 남성 페미니스트가 두 명 뿐이랴. 하지만 근래 가장 분명히, 그리고 활발히 목소리를 내주고 있는 남성 페니미스트는 이 책의 저자인 박정훈 기자와 ‘차별에 찬성합니다’, ‘세상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를 쓴 오찬호 작가인 것 같다.
 
얼마전 오찬호 작가의 강의를 들었는데, 페미니즘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 예전엔 없던 남성 수강생들이 한 두명 보인단다. 그런데 그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강사를 괴롭히려고 공격성 질문을 장착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성실함이 놀라울 뿐이다). 성교육 현장에서 여성 성교육 강사들이 남성들(특히 청소년들)로부터 받는 공격으로 곤혹을 치루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 페미니스트 역시 같은 처지라는 게 놀랍기도 하고, 어쩌면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 잘못된 남성성으로 남성연대를 확인하는 이들에게 남성 페미니스트는 배신자로 낙인 찍힐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곳곳에서 남성 지배 체계에 균열을 내고, 성평등 교육을 원하는 여론을 형성해서 아이들이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자라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나아가 이제 남성에게도 페미니스트는 민주주의자처럼 시민으로서의 상식과 표준으로 여겨지길 바란다"

저자의 위의 말을 빌어 더 많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출현과 연대를 기대해본다

사실 페이스북에 쓰는 간단한 글은 부담이 없지만 각잡고(^^) 쓰는 글은 너무 부담이 커서 어떤 주제건, 누가 요청하건 거두절미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걸 인생 모토로 삼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긴 통화 끝에 원고요청에 응한건 남한테 부탁하는 거 어려워하시는 유지웅 편집장님의 용기어린 부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한명이라도 더 읽게 하는데 뭐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박정훈 기자나 한겨레 출판과는 그 어떤 유착도 없음을 밝히며, 이 책을 다시 한번 강추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책 속의 길] 171
지명희 / 대구여성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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