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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김지형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지음 | 이민아 옮김 | 디플롯 펴냄 | 2021)
2022년 02월 23일 (수) 11:43:31 김지형 pnnews@pn.or.kr

1980년대 말, 미국의 한 공립학교. 인종통합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백인아이들과 다른 인종 아이들 간에 적대감이 심각했다. 교사들마저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수업법이 시도됐다. 교사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 한명 한명에게 각각 학습 단원 일부를 나누어 전달하고 해당 부분에 대해 권한을 준 뒤 서로 지식나눔 시간을 가진 후 시험을 보기로 한 것이다. 한 흑인 학생이 자신의 부분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자 처음에는 백인아이들이 평소처럼 놀려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부분을 잘 듣지 않으면 잠시 후 있을 시험을 제대로 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경쟁자가 아니며 그 아이의 지식이 자신에게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자 금세 태도가 변한 것이다. 몇 주간에 걸쳐 이런 방식이 진행되자 아이들은 서로 존중하게 되고 친밀도가 급속히 높아졌다. 차츰 다른 인종 간 적대감도 사라졌다.

이후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기도 한 이 학습법은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여 조각을 맞추는 방식으로 정보를 완성하는 상호의존적 수업방법으로 ‘직소모형’이라고 불린다. 책 첫머리에 소개된 이 사례는 우리 사회가 평소 금지옥엽처럼 여기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원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지음 | 이민아 옮김 | 박한선 감수 | 디플롯 펴냄 | 2021)

"다 힘이 없어서 그렇지 뭐"

신체적 적자가 먹이를 독차지하고 가장 많은 후손을 낳는다는 적자생존 진화의 메커니즘은 정글을 넘어 지난 150여 년간 인류 역사에서 사회운동, 기업 운영원리, 자유시장의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 이는 차별과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정당화하는 근거였다. 우리 모두는 이런 원리와 사회구조 속에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승자독식, 무한경쟁, 각자도생이 마치 교리처럼 여겨진다. 최근 화두가 된 공정이라는 이름조차 서로를 이 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감시하는 기준일 뿐이다.

하지만 정작 인류 역사는 물론, 생명이 초기부터 진화해온 원리를 돌아보면 생물들의 주된 전략은 적자생존이 아닌 협력이다. 박테리아에서 출발해 세포에 들어와 발전소로 자리 잡은 미토콘드리아, 수많은 사람종 중에서 신체적으로 그다지 장점이 없었던 호모사피엔스가 주류가 된 이유, 인간과의 친밀도를 통해 번성한 개 등 진화 과정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수많은 사례와 이에 대한 연구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논점을 방대한 연구자료를 통해 쉬운 설명과 함께 충분히 근거를 들어준다는 점이다. ‘그래 이 세상이 그렇게 삭막할리 없지’라는 생각과 함께 위로 받는 느낌마저 들었다.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 다정함이었다면, 우리 또한 더 다정하게 살아야 할테니 말이다.

다정한 이들이 잔인해지는 이유

그런데 여기까지 고개를 끄덕이더라도 사실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협력이 인류를 포함한 생물의 중요한 진화 요소이자 전략이었다면, 역사에서 수없이 벌어진 전쟁과 학살, 집단 간 피로 얼룩진 폭력의 기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책에서는 이를 같은 편이 아닌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로 표현한다.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는 다정함을 기반으로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너무도 쉽게 비인간화한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국가적 단위의 비인간화도 있지만, 지금도 자행되는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인종 간 폭력, 정치적 차이에 기반한 극우세력의 테러까지 모두 같은 뿌리인 것이다.

이러한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혐오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혐오, 특히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은 그 대상에 대한 비인간화를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파한다. 혐오발언을 접하는 것만으로 타인에 대한 다정함이 줄어들고 비인간화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우리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젠더 간 갈등과 혐오표현, 난민이나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 세대 간 혐오표현 등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지점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를 막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접촉하고 만나는 것이다. 결국 비인간화는 상대를 대상화하는 것이므로 잦은 접촉을 통해 집단 간의 경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아는 사람이 되는 순간 다정해진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자꾸 봐야 정든다는 말도 있잖은가.

더불어서 사회적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말이나 행동을 제한하는 제도적 접근도 필요하다. 각종 미디어에서의 표현을 순화하는 노력이나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 모두 해당 될 것이다.

결국 인류가 앞으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협력하고 더 돕고 더 다정해지는 수밖에 없다. 손잡아야 산다.

 
   
 






[책 속의 길] 195
김지형 / 행복한마을공동체북구in(人)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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