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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속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헤매다
신동희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l 용경식 옮김 l 까치 펴냄 l 2014)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l 양억관 옮김 l 민음사 펴냄 l 2017)
2022년 09월 01일 (목) 12:55:14 평화뉴스 신동희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오십이 되었다. 지천명의 나이라고 했나?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까마득 멀기만 하고-꼭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아직 나 자신도 잘 모른다. 얼마 전 푹 빠졌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던진 질문을 오십이 된 나에게 여전히 묻고 있다. '나 누구예요? 나 왜 여기 있어요?'라고.

오십을 맞는 생일 즈음에 책장 속에 오래 묵혀둔 두 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하나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소설이다. 나의 무의식과 내면을 알고 싶어서 타로상담을 배울 때 스승님께서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신 책이다. 표지만 봐도 어둡고 무거워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나의 독서리스트에 올려 두었다.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l 용경식 옮김 l 까치 펴냄 l 2014)

또 하나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썩 당기지 않던 작가였는데, 어느 날 동네에 새로 생긴 서점에 갔다가 초록빛과 노을빛의 표지에 끌려 ‘그래 무라카미 하루키, 한 권은 읽어보자’ 해놓고는 고스란히 책장에 올려두었던 책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그 첫인상답게 무겁고 암울하고, <노르웨이의 숲>은 표지의 선명한 빛깔과는 완연히 다르게 우울하고 눅눅했다. 어쩌다 보니 두 소설을 번갈아 가며 읽게 되었다. 깜깜한 밤, 잠이 오지 않을 때 손이 닿는 대로 하나를 골라 읽다가 책을 가슴팍에 내려놓고 상념에 푹 빠지는 순간들이 왔다.

소설 속의 삶과 비극을 따라가다 보면 존재에 대해, 삶에 대해, 태도에 대해, 삶이 주는 무력감과 파괴에 대해, 그리고 삶의 불가역성에 대해 헤매다 온 느낌이다. 인간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십대의 어떤 날처럼, 스무 살의 어느 새벽처럼, 오십이 되어도 허무하고 아련한 기분이 나를 감싼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전쟁과 폐허, 모든 것이 파괴된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두 존재, 쌍둥이 형제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의 이야기다. 세상이 키워주지도 어른이 돌봐주지도 않는 세계에서 두 존재는 몸과 정신을 단련하며 악착같이 살아간다. 생존하는 방법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계속 단련시키는 것이다. 굶주림, 학대, 억압, 더러움, 죽음, 고통... 이 모든 것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 어떤 감정도 배제한 채 그 상황을 살아내는 것만이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이다. 자신이 행하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실험이자 단련 행위에 죄책감도 도덕적인 회의도 품지 않는다. 그런 감정은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드니까. 그리고 이미 세상은 그들의 훈련하는 상황보다 더 비극적이고 파멸적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비밀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한다.

생존의 내성을 키워가는 두 아이의 이름,  Lucas와  Claus, 같은 철자의 순서만 바꾼 이름으로 존재하는 두 아이는, 어느 새 루카스이기도 클라우스이기도 한 존재가 되고, 어느 순간 존재 자체가 거짓말이 되고, 어느 것이 진짜 삶이고, 어느 것이 허구의 삶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1, 2, 3부로 나누어진 소설을 읽다보면 어떤 순간, 어떤 사람, 어떤 사건, 어떤 장면도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한 것이 없다. 루카스가 존재했는지, 누가 클라우스인지, 그들이 겪은 일, 해온 일은 진짜 존재했던 것인지. 지독하게 고독하게 살아온 클라우스 혹은 루카스가 클라우스 혹은 루카스를 만들어낸 것인지. 존재의 거짓말 위에 무엇이 진실인지.
그리고 50년간의 고독을 살아낸 클라우스는 말한다.
 
'너도 잘 알잖아. 나는 단지 꿈일 뿐이라는 걸. 그걸 받아들여야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어디에도.'
 
   
▲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l 양억관 옮김 l 민음사 펴냄 l 2017)

<노르웨이의 숲>은 어둡고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고뇌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생이 된 와타나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 삶에 대한 고뇌와 방랑, 사랑하는 사람의 우울과 죽음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악착같이 살아간다기보다 그저 혼란과 방황 속에서 유영하듯이, 쑤욱 가라앉았다가 서서히 떠오르듯이 살고 있다. 죽어간 사람, 우울한 사람, 규율에 집착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방탕한 사람, 현재를 일깨워주는 사람 곁에서 와타나베는 청춘의 시절을 지나가는 중이다.  

'어둠속으로 몇 번이나 손을 뻗어 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 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비 내리는 정원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어.... 난 일요일에는 태엽을 감지 않거든'
'그는 새로운 세계로, 나는 나의 수렁 속으로 돌아갔다.'


손에 닿지 않는 빛을 보며, 태엽을 감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자신의 수렁 속에 빠져있는 시절.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고, 질척하고 우울한 고뇌와 불안의 시절을 보낸 와타나베. 열여덟 해가 지난 어느 날, 북해를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을 생각하며 그 시절 그 숲의 바람과 풀냄새를 떠올린다. 와타나베의 고뇌와 혼돈의 궤적을 따라가며 밤이라는 시간을 틈타 나는 조금은 감상에 젖었고, 상념에 빠졌다. 그 아련하고 묵직하게 밀려오는 감정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오십이 된다는 건 좀 무감해지는 일이다. 삶은 단조롭고 분명하고, 하루하루 전개되는 일상도 선명하다. 차곡차곡 살아가다 보면 삶은 그럭저럭 지속되고, 불안하지도 모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이, 삶이 아직 흔들리고 불안하고 여전히 모르겠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본성과 존재의 본질을 생각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며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질문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러나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책 속의 길] 204
 신동희 / 꿈꾸는마을도서관 도토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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