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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통한 연대는 끝나지 않았다
한유미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펴냄 | 2018)
2022년 01월 05일 (수) 14:57:06 평화뉴스 pnnews@pn.or.kr

세월호참사 8년이 되어간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4월이 더이상 옛날의 4월이 아닌 것처럼, 봄도 더이상 이전의 봄이 아니다. 세월호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왜 구하지 못했는지’, ‘왜 진실을 밝히지 않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맞이하는 8년의 봄은 벌써부터 두렵다. 두려움은 걱정과 불안을 낳고, 우울을 불러온다.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손팻말을 들고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둘러앉았던 2014년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 대구시민들과 함께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을 쉬지 않고 이어 왔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고, 국민의 일상과 생명이 지켜지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대구416연대 회원들 활동가들과 함께 노란리본을 만들고 서명과 선전활동을 하면서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안의 무엇이 세월호활동을 쉬지 않고 하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세월호참사 가족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것일까?’라고. 엄기호 선생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향을 알려준 소중한 책이다.
 
   
▲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펴냄 | 2018)

저자는 국제인권운동을 하면서 피해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고통을 ‘마주 대하는 것’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주변의 고통을 겪는 이들의 모습을 객관화하여 보여주는 1부로 시작해, 2부에서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하는지에 대해, 고통의 당사자에게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고통의 ‘윤리학’이라는 제목으로 고통에 대해 ‘말’ 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 고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통해 고통의 ‘연대’를 말한다.

저자의 여는 글 일부를 옮겨본다.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곁의 역할은 고통을 겪는 이가 자기 고통의 곁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고통을 겪는 이는 대체로 바깥은 붕괴하고 자기에게 함몰되어 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그에게 곁이 존재한다면, 그 곁은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증하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
 이 곁의 존재를 보며 고통을 겪는 이는 드문드문 주문에서 벗어나 자기에게 돌아갈 자리가 있고, 그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록 그것이 산발적인 찰나일지라도 말이다. 일이 잘 진행된다면 곁이라는 존재를 통해 자기가 그 함몰된 구덩이에서 나와 스스로 자기의 곁에 설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곁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곁의 현존을 착취하고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고통의 곁이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바로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언어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고 또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이 자리이다."


나아가 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외로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통하게 한다."라는 저자의 말을 빌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연대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는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실하게 알고 고통에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며, 자기 고통의 ‘지금 당장’에서 벗어난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고통에 처했을 때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알게 되고, 곁을 통해 매개와 완충을 거친다면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고통의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세월호 침몰 실종자 무사귀환 염원 희생자 추모 촛불 기도(2014.4.18. 대구 동성로)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고교생들이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하고 있다(2014.4.18. 대구 동성로)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세월호참사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다.
삭발과 단식, 도보 행진과 농성으로 박근혜라는 나쁜 대통령과 싸웠던 단원고 희생 학생의 부모들은 이가 빠지고 골병이 들었다.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 줄 것이라고 믿고 기다렸던 가족들은 희망고문으로 마음의 병이 더 깊어졌다.
유가족만이 아니다. 세월호참사에 탈출해 살아 돌아온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물론, 세월호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국민들의 고통은 숨죽인 듯 일상의 아래에 놓여있다.

80년 광주항쟁의 진실이 드러나는 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월호참사마저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8년을 앞둔 지금, 10년 안에는 무엇이라도 될 것이라고 믿었던 기대를 점검한다. 우리의 고통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우울과 싸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나를 돌보고, 지난 8년 가까운 세월을 참사 피해자들의 곁에서 함께 울었던 나의 벗들, 고통의 곁을 지켰던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을 챙겨야겠다. 고맙다고 말하고, 우리가 얼마나 멋진 존재인지 두 번 세 번 말해야겠다.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고통의 곁을 지킨 우리가 서로의 곁이 되어주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미 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세월호참사 뿐 아니라 피해자의 곁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모두가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진보진영의 활동가일수록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해명하고 정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그럴 때 균형을 지킬 수 있으며, 지치지 않고 실천 활동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깨달아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가 완벽한 길을 세세하게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길을 걸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려줄 것이므로.

 
   
 






[책 속의 길] 190
한유미 / 대구416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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