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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길
류돈하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펴냄 | 2018년)
2022년 02월 16일 (수) 15:26:25 류돈하 pnnews@pn.or.kr

3년전 쯤일 것이다. 꽤 익숙한 역사인물인 광해군을 책의 제목이자 주제로 정한 서적 ‘광해군(光海君)’을 펼쳤다. 즉 광해군의 평전이다. 책은 2000년도에 출간되어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자인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광해군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그만큼 다양한 자료와 여러 시각들을 통해 과거를 탐구하며 현재를 통찰하는 책으로 역사를 공부해 나가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책 역시 그저 한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 남북관계,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 등 현재적 관점에서도 의미를 두고 읽을 만한 저술이라 여겨진다.

 조선의 제 15대 임금 광해군은 주지하다시피 폭군 연산군과 더불어 신하들의 반정에 의해 폐위된 군주이다. 그러나 광해군은 과연 폭군이었던가 하는 것은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능양군)를 옹립한 인조반정은 이른바 명분이 정당했던가? 그런 점에서 광해군이 재위시절 펼쳤던 여러 정책들은 눈여겨 볼만한 것이 몇가지 있다. 의미도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현재에서 광해군이 가지는 그 의미를 이 책을 통해 되짚어보고 전후복구와 국가생존에 몰두했던 군주 광해군을 만나볼 수 있었다.
 
   
▲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펴냄 | 2018년)

조선의 제 14대 임금 선조는 조선최초의 방계승통으로 등극한 국왕이다. 즉 적자가 아닌 서자출신의 임금인 것이다. 광해군은 선조의 서차자로서 그 뒤를 이어 조선의 제15대 임금이 되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를 무렵 선조의 3살 난 어린 적자 영창대군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 이유로 오랫동안 세자를 맡았던 광해군이 즉위하였다. 이보다 앞서 광해군은 세자에 오르는 것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광해군의 세자책봉을 둘러싸고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정치적 실각을 가져 온 건저의(建儲義)사건을 필두로 임진왜란 당시 왕실과 조정이 피난가는 상황에서 분조를 위한 세자책봉은 더이상 미룰수 없게 되었다. 광해군의 세자책봉 순간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한명기 교수는 책에서 세자 책봉을 이렇게 전한다.

"(중략) 선조는 광해군을 칭찬했고 신하들은 얼떨결에 선조의 말에 전폭적으로 동의했다. 선조 자신이 오랫동안 광해군을 의중에 두어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신잡의 건의를 즉석에서 받아들여 그를 왕세자를 결정한 그야말로 ‘전격적’인 것이었다.(중략)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의 상황이 선조에게는 그만큼 절박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책 47쪽)

세자가 된 광해군은 바로 분조 즉 임시정부를 이끌어야 했다. 조정이 두 조정으로 나누어졌다. 선조가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하는 절박한 시기에 광해군은 조선의 왕세자로서 그 역할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 왜군의 파죽지세에 밀려 존재감이 희미해졌던 조정이 광해군으로 인해 건재하다는 것이 큰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킨 동시에 민심이 수습되고 전국에 의병 봉기가 원활해져 관.민이 일치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졌다. 광해군이 이끄는 분조의 활약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고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명나라의 원병이 들어와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전쟁의 양상이 초반과 다르게 전개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광해군의 세자 시절 겪었던 경험과 그 고초들은 우여곡절 속에 즉위한 ‘광해임금’의 치세를 여는 자양분이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 후 가장 먼저 역점을 둘 수밖에 없었던정책은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재건이었다. 따라서 정책의 핵심은 국가의 재조와 민생의 안정이었다. 우선 경기도에 대동법이 시행되어졌다. 그리고 허준에 의해 동의보감이 편찬되어 일반백성들이 좀 더 손쉬운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광해군과 함께 한 정치세력은 임진왜란 당시 항왜의병에 앞장섰던 대북파 정인홍, 이이첨 등이었다. 그런데 그들로 인해 야기된 계축옥사, 폐모살제 등의 정치적 혼란들은 대북파의 몰락과 광해군의 폐위를 가져다 주었다.

광해군은 전쟁복구를 수행하면서도 무리한 궁궐증축 등 무리한 역사를 진행해 백성들의 불만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광해군이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은 임란 당시 조선에 원병을 보내 준 기존의 명나라와 만주에서 누르하치가 일으킨 신흥강국 여진족(후금)의 대결구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펼친 중립외교였다. 이 두 세력의 고래싸움에 끼인 조선은 새우등에 불과했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국력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조선은 독자적인 생존전략을 구축해야만 했다. 바로 여기에서 광해군 집권기의 외교력의 가치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정 내부의 사대부 관료들은 대부분 광해군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서인이 그 주류였다. 1619년에 명.청 간에 일어난 살이호 전투를 계기로 명은 조선에 파병을 요구하였고 조선은 이에 명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해군은 명청 간의 싸움이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조선에 확장되지 않도록 고민하였다. 후금의 위치를 인정해 주며 친선을 도모하였다. 그러한 실리적 국익추구를 가능케 한 광해군의 중립외교의 전범은 고려의 외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직 고려를 모범으로 삼아야 국가를 보전할수 있다는 것이다.(조선 광해군일기 광해군 13년 6월 6일 자 기사: 一如高麗所爲, 則庶可保國)

광해군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가진 서인세력의 반정에 의해서 쫓겨났다. 1623년 3월의 일이었다. 광해군의 폐위 명분은 폐모살제 즉 어머니(계모 인목대비)를 대비의 자리에서 폐하고 적자인 이복아우 영창대군을 죽인 일이며 토목공사의 강행, 명의 은혜(재조지은)를 저버리고 배신한 것 등이다. 사실은 명분없는 반정이었다. 역대 왕조 중 정권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이 가장 많았던 때가 바로 인조의 치세기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일반백성들의 불만뿐 아니라 사대부들 또한 불만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명나라에 대한 은혜와 의리를 강조한 인조정권은 결국 누르하치의 아들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치욕스러운 침략을 당하였다. 바로 병자호란이었다. 오랑캐로 업신여겼던 청나라에게 항복하여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해야만 했다. 인조반정은 인조 개인에게는 성공한 사건인지는 몰라도 광해군을 비롯하여 우리역사에 있어서는 매우 불행한 사건이 아닌가한다. 분명 실패였다. 한명기 교수는 광해군의 시대를 현재의 대한민국에 투영하여 이 책의 끝을 맺고 있다.

"광해군이 왕으로 있던 17세기 초반의 한반도와 오늘의 한반도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중략) 오늘 한반도 주변엔 중국이 그대로 있고, 일본이 여전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 미국의 입김이 무시무시하다. 그나마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시기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으로 국운이 그 변화를 맞게 됨에 따라서 국가의 안보와 외교를 어떻게 지키고 펼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새로운 전환기에, 명청교체기의 전환기에 국가를 운영한 역사인물 광해군을 반추하여 당시의 사정이 당면해 있는 문제들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책 속의 길] 194
류돈하 /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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