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책들을 꺼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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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범 / 『운명이다』, 『진보의 미래』, 『성공과 좌절』, 『아! 노무현 』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만나서 들을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건만, 그럴 수 없으면 마음속으로 떠올려보는 수 밖에. 그런 때가 와서 그를 다시 떠올려 본다.

신림동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늦잠을 자고 있다가 “수범. 노통이 돌아가셨단다.”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내 방이 맞았고, 꿈이 아니었다. 서울시청 앞 노제에서 친구와 한참을 울고,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어느 비오는 날 혼자 기차를 타고 봉하에 들러 마을을 둘러보았다. 봉하막걸리나 한잔 하고 돌아왔다. 봉화산에는 차마 오를 수 없었다.

생전에 뵙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니 생각나도 눈물은 잘 안난다. 그래, 이제 보다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그를 떠올릴 때가 되었나보다. 그래야 한다.

먼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 엮고 유시민이 정리해 2010년 돌베개가 펴낸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훑어 보았다.

“의심 많은 리더는 조직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나중에 속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믿고 일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잃고 패배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나는 이기든 지든, 매순간 원칙을 지키면서 선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길, 벽, 문이 매장이고 매대다. 주렁 주렁 매달린 헌옷들.(2022.1.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길, 벽, 문이 매장이고 매대다. 주렁 주렁 매달린 헌옷들.(2022.1.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형광펜을 칠해둔 걸 보니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이었나 보다.

노무현이 쓴 원고를 정리해 2009년 도서출판 동녘이 펴낸 <진보의 미래-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도 훓어 본다.

편집자는 대통령의 육필 원고와 말씀을 바탕으로 책의 1부는 대통령이 기초를 잡으신 구성과 원고를 그대로 엮고, 2부는 대통령이 봉하에 있던 참모들과 나눈 말씀을 주제별로 재구성했으며, 대통령의 생생한 고뇌와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본을 손대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다음은 편집자 서문.

“지난해 10월 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이 몇 명의 참모들을 부릅니다. 좋은 책을 내보자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책, 우리 사회 공론의 수준을 높일 책, 민주주의 발전사에 길이 남을 책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제안합니다. 구상을 설명하는 동안 대통령의 눈빛은 형형했고, 진지했습니다. 물러난 권력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뭔가 뜻있는 일에 책임 있게 헌신해야 한다는 역사의식과 소명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책의 연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중략)

“지난해 12월, 대통령의 연구에 시련이 닥쳤습니다. 집단 광기와도 같았던 당시 현실은 대통령을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 방문객들과의 만남을 끊었습니다. 사저로 찾아오려는 사람들의 접견도 끊었습니다. 대신 연구에 더 몰두했습니다. 이 책의 많은 분량은 그 시기에 집필된 것입니다. 아무도 그분의 고통을 가늠하기 힘들 그 시기, 대통령은 독서와 사색과 글쓰기에 침잠하는 것으로 묵묵히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비정한 상황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대통령이, ‘진보의 미래’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현실’의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비극적 모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조차 힘들어진 상황. 대통령은 모든 짐을 혼자 끌어안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책의 연구는 그렇게 중단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던 마지막 글을 남긴 그는 이 연구를 하고 있었으리라.

노무현이 쓴 원고를 정리해 2009년 도서출판 학고재가 펴낸 <성공과 좌절-노무현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도 훓어 본다.
 
길, 벽, 문이 매장이고 매대다. 주렁 주렁 매달린 헌옷들.(2022.1.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길, 벽, 문이 매장이고 매대다. 주렁 주렁 매달린 헌옷들.(2022.1.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 유언

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2부 노무현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노무현 대통령 육성기록

이 목차에 당시 그의 마음과 생각이 잘 담겨 있다

“어쨌든 내 이름으로 책(가제 <진보주의 연구>)을 낸다는 것이 이제는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내 이름으로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책이어야 한다.
인생사의 실패 이야기나 지난 이야기이다. 진짜 회고록이다.
옛날에 나는 회고록을 안쓰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회고록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영광과 성공의 얘기가 아니고 좌절과 실패의 얘기를,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얘기를 써야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입지를 해체하는 참담함으로(구술 정리)> 중에서“

”실패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실패한 이야기가 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사죄의 글로 쓰려고 한다“
...
”대통령 임기 내내 나는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총체적 파탄, 잃어버린 10년, 이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과 싸웠다. 말년이 되면서 나는 정치적 좌절을 이야기했다.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이었다.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비전 2030 - 목표는 2020까지 극우의 나라에서 보수의 나라로
2030까지 중도 진보의 나라로 가자는 것”

형광펜이 칠해져 있다.

마지막으로 유시민, 진중권, 홍세화 등 30여 명이 짓고 2009년 책으로 보는 세상이 펴낸 <아! 노무현-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를 훓어 보았다.

박노해의 서시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대통령 취임 후 첫 어버이날에 국민들에게 보낸 대통령의 편지 “어버이날에”
송앤라이프 시·곡 김수진 편곡의 추모가 “바보연가”
태터앤미디어 정운현 대표의 여는 글 “슬픔을 넘어 성찰과 실천으로”
이렇게 시작되는 책이다.

필자의 말보다 그의 말을 이렇게 적어보는 것이 가장 나으리라.
그의 책 속에서 그가 살아온 길을 본다.
내가 살아갈 길을 살핀다.

 
 
 






[책 속의 길] 191
백수범 / 변호사. 법률사무소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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