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기후위기로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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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김백민 | 블랙피쉬 | 2021년)


패스트푸드점에서 산 햄버거가 허전하다. 채소가 너무 적어 햄버거보다는 마카롱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른 한파 등으로 양상추 수급 상황이 좋지 않아서란다. 유명 식품 업체가 감자칩 원료 공급처를 바꾼다는 기사도 보인다. 이상 고온 때문에 기존에 사용하던 미국산 감자의 작황이 나빠진 것이 이유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 무척 두렵다. 그전에도 미디어에서 비쩍 마른 북극곰의 모습 같은 걸 보긴 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가슴이 아팠지만 나와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코앞에 문제가 닥치기 전까지는 외면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정하기 싫었고, 기후변화를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한 실천에 나서는 것도 귀찮았다.

무엇보다 대부분 사람이 그냥 전과 똑같이 태연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불편한 소리를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건 꺼버리면 그만이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의 저자 김백민은 극지전문가이자 기후과학자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지표면 온도 상승, 북극권 온난화, 이로 인한 영구동토층 융해와 온난화 가속… 저자는 그간 내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기후변화의 악순환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설명한다. 이는 애써 현실을 못 본 체하던 내게 확실한 공포를 안겨준다. '이제 진짜 더 피할 곳이 없다. 이미 늦었구나'. 이산화탄소 증가가 인간의 산업 활동이 아닌 지구 온도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식의 음모론도 조금은 믿고 있었건만. 역시 음모론은 음모론이었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김백민 지음 | 블랙피쉬 펴냄 | 2021년)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김백민 지음 | 블랙피쉬 펴냄 | 2021년)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과정을 돌이켜본다. 기존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가공해 이뤄낸 문명은 인류에 풍요와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과할 정도의 생산과 소비를 멈추지 않았다. 돈이 돌아야만 하는 현대의 경제 시스템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번영의 대가와 정화 비용을 미래 세대에 계속 떠넘기진 말아야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아직 어린 내 조카들에게 나만큼 풍요로운 청춘을 약속해줄 수가 없을 것 같다.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는 계속 심해질 것이고, 최악의 경우 식량 전쟁과 기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내놓는 탄소중립 대책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논의가 아직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10대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를 조롱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나. 그가 망가진 지구에 살아가야 하는 미래세대 당사자임에도 사람들은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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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비관적인 내 생각과 달리 책은 제목처럼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인간은 무수한 빙하기 등을 거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다시 번성했다.

과거 기후변화 안에서 선조들이 생존한 방식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한정된 식량을 두고 전쟁을 하며 입을 하나라도 줄였을까. 아니면 적은 자원을 십시일반 나누며 서로의 체온에 의지했을까. 문명사회에 살아가는 우리가 부디 후자의 방식을 선택하길 바란다. 지금 직면한 위기가 기후위기라서 더욱더 그렇다. 공상과학 영화 속 행성 충돌처럼 하루아침에 인간이 다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란 뜻이다. 가장 먼저 고통받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사막화와 해수면 상승 등으로 발생한 기후난민을 떠올려 보자. 세계가 그들을 계속 외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적극적인 탄소 감축과 에너지 기술 혁신을 답안으로 제시한다. 진부하고 뻔한 해답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이제 와 노력한다고 지구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예전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알겠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고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

글을 마치며 동물 가죽이나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한 의류 브랜드의 이름을 떠올려 본다. '낫 아워스(NOT OURS)',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지구 역시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이 문구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평화를 더 오래 누릴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너무 오래 좌절하지는 말자.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책 속의 길] 192
이은혜 / 전 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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