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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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강 /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강동묵 공유정옥 김대호 김영기 김인아 지음 | 나름북스 펴냄 | 2017)


"의사들은 아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굴뚝 속으로 들어갔고, 공장 안의 위험한 비밀을 몸에 새긴 노동자들은 치료와 원인 규명을 위해 굴뚝 바깥으로 나온다."

죽어간 아이들과 굴뚝으로 들어간 의사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만 15세 미만의 고용을 금지(제64조, 제65조)하고,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도 근로시간, 야간근로(10시 ~ 06시), 휴일근로를 제한(제69조, 제70조)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제110조)’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것처럼, 아동의 노동은 법문에서나 확인할 법한 생소한 것이 되었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전태일이 1970년 10월에 노동청에 제출했다던 진정서 초안에 따르면, 서울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들은 한 달 평균 28일을 일하고, 하루 평균 14시간에서 16시간 가량을 노동을 수행했다. 또 이들 중 ‘시다’라 불리던 노동자들은 평균 연령 13세에서 17세 사이의 아동 노동자였다.(조영래, 『전태일 평전, 아름다운전태일』 2017. 258p)

 1970년 10월 7일, 경향신문은 평화시장 노동실태에 대한 부분을 기사로 내면서, “옷감에서 나는 먼지가 가득 찬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해 폐결핵, 신경성 위장병까지 앓고 있어 성장기에 있는 소녀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처럼 근로조건이 나쁜 곳에서 일하는데도 감독관청인 노동청에서 매년 실시하는 건강진단은 대부분이 한 번도 받은 일이 없으며, 지난 69년 가을 건강진단이 나왔으나 공장 측은 1개 공장 종업원 2~3명씩만 진단을 받게 한 후 모두가 받은 것처럼 했다는 것”이라 적고 있다.(조영래, 『전태일 평전, 아름다운전태일』 2017. 265p)

 이 같은 현실은 10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1987년 12월 5일 협성계공이라는 온도계·압력계 제조회사에 취직해 수은 주입 업무를 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이듬해 사망한 ‘문송면’의 당시 나이는 만 15세였다.

 여기에 소개할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은 19세기 영국에서 굴뚝을 청소하다가 ‘음낭암’에 걸려 죽어간 ‘아동’들을 추적하며 그 죽음의 비밀이 ‘굴뚝노동’이었음을 밝혀낸 의사들처럼, 또 다른 평화시장의 ‘시다’들과 ‘문송면’을 찾아 ‘굴뚝’으로 들어간 한국 사회 의사들의 이야기다.

산업재해의 지평을 넓히는 사람들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은 10년간의 싸움 끝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이야기부터, ‘제일화학’의 석면 피해 노동자와 주민, ‘골병’이라 불리는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이야기까지, 폭넓게 산업재해의 현장들을 추적해 들어간다.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강동묵 공유정옥 김대호 김영기 김인아 지음 | 나름북스 펴냄 | 2017)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강동묵 공유정옥 김대호 김영기 김인아 지음 | 나름북스 펴냄 | 2017)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의사들은, 산업재해의 유형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산업재해가 발생하게 된 원인과 그 피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의 의사들의 노력, 당사자들의 싸움,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의 조력을 다루며, “직업병(산업재해)이 재구성하는 노동의 권리, 사회적 권리의 확장”까지 나아간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과 기형아 출산’을 다룬 부분이 특히 그렇다.

산업재해 인정까지의 10년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임신은 총 27건’으로, ‘이 중 9건은 자연유산 되었고 4건에선 선천성 기형이 발생’했다. 이를 조사한 “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직업환경의학 전문가들은 2009년과 2010년 2년간의 제주의료원 유산율이 일반 인구의 2배이고 선천성 심장질환 출산율은 10배”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주의료원에서 발생한 문제의 이유로 “유산이나 선천성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생식 독성 약품에 노출되었고 임신 진단 직전까지 야간 근무를 했으며 고용불안, 임금 미지급 등의 특수한 상황에 노출된 점”을 들었다.

 이 사건의 어려운 점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이 산업재해인가의 여부가 아니었다. 문제는 ‘태아의 선청성 기형’이 산업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임신한 노동자의 업무상 요인으로 태아의 건강이 손상된 경우 태아에 대한 업무상재해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자녀(태아)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면서, 산재 신청을 반려했다. 법원으로 간 사건은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태아의 건강손상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지만, 2심은 ‘출산으로 어머니와 아이가 분리되는 이상 선천적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으로 보면서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10년의 기간 동안, 의사들은 간호사들이 산업재해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확장해내고, 당사자들과 당사자가 속한 노동조합(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본부)은 법률원을 통한 법적 조력, 산업재해 인정과 문제가 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을 위해 ‘국회토론회’ 등의 활동을 지속했었다. 그 결과로 2심에서 패소한 사건의 대법원 승소(대법 2016두41071) 산업재해 보상에 태아(건강손상자녀)를 포함하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제91조의12, 13, 14)을 개정(2022.1.11.)하기에 이른다.

 ‘태아의 산업재해 인정 및 보상’은 당사자였던 제주의료원 간호사들만이 아니라 ‘생식독성물질’ 즉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에 노출된 다른 노동자들과 그 자녀들에게도 ‘산업재해 인정과 보상’의 길을 열어줬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일하며 ‘태아 산재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줬다.

 이처럼 하나의 산업재해를 두고 인정을 다투는 일은 피해당사자 개인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그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유사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적 일이다. 또한 피해를 인정하고 보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된 노동의 조건을 개선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사회로  

 최근 초·중·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원들을 대상으로 폐CT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검사자(22.10.15 기준) 18,545명 중 187명이 폐암 의심 판정을 받았는데, “국가암등록통계(2019)에 수록된 35세 이상 65세 미만 여성의 폐암 발생률과 조리원들의 ‘폐암의심’검진 비율을 비교하면 약 35배에 이르는 수치”다.(강득구 국회의원 보도자료「학교 급식종사자 폐암 건진 현황 첫 공식 집계 일반인 35배 폐암 발병률」, 2022. 12. 1)

 다행히 지난해 학교 급식실 조리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고, 교육부(교육청) 차원의 전수조사, 고용노동부 차원의 「학교 급식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라인」발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폐암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는 ‘조리흄’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조치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데다, 각 지역 교육청마다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개선이 더딘 상황이다.

 “의사들은 아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굴뚝 속으로 들어갔고, 공장 안의 위험한 비밀을 몸에 새긴 노동자들은 치료와 원인 규명을 위해 굴뚝 바깥으로 나온다.”는 저자의 말처럼, 굴뚝으로 들어간 의사들의 이야기 못지 않게, 굴뚝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 급식실 조리원들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귀기울였음 한다. 급식실 조리원들을 위한 조치는 분명 더 영세한 식당의 조리원들, 혼자 일하는 식당의 사장들에게 흘러가,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안고, 죽지 않는 사회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책 속의 길] 213
 김무강 /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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