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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구술기록, 평리동 할매들 인생이야기
정의석 /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 - 평리동 할매들 인생이야기』
(김세빈 외 8명 지음 | 리체레 펴냄 | 2022)
2022년 11월 28일 (월) 13:44:32 정의석 pnnews@pn.or.kr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협동조합 사무실의 에어컨은 너무 작고 팬바람은 약했다. 그 좁은 방에 나를 포함해서 12명의 낯설은 이들이 봉사자로 모여들었다. 생애구술기록사업에 대한 첫 설명회가 있는 날이었다. 간단한 계획과 과정을 들은 후, ‘할매의 탄생’의 저자인 생애구술기록 작가 최현숙 선생의 인터뷰 영상을 함께 시청했는데, 그 짧은 영상은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생애구술기록 작업은 한 개인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사회적 기록이에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개인의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제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 생애구술기록사업 첫 설명회(2022.7.23 위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취약계층이 몰려 있는 마을에 10명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생애구술기록 작업을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빈곤의 전시화를 우려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과거든 현재든 고통은 당하는 자만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삶의 처지를 동정하는 일이라면 처음부터 그만둬야 했다. 생애구술의 주인공이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일생을 벗어나지 못한 그 가난과 고통을 통해서 할머니들에게 어떤 힘이 생겨났는지를 알아가는 과정, 그것을 찾아내서 기록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들은 그 긴 가난을 버텨왔고 그 긴 세월을 살아냈다. 그 힘과 끈기는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그 분들의 힘에 기대어 거대한 공동체를 버티게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분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질문해야 할 이유다.

경험도 없고 생애구술기록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하나씩 배우면서 하자는 마음으로, 또 누군가의 평범한 삶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알리고 함께 기억하려는 마음으로 이 사업에 함께 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예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인터뷰를 결심하고 참여하신 중 한 분이 중도에 포기하신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생애를 구술하시는 분과 기록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정성 있는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소한 일상과 주변 이야기, 먼 옛날 이야기보다 최근 어떻게 지내시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하루 생활이 어떤지를 물으면서 이야기의 범위를 확대해 갔다. 전화로 소통을 하며, 만남을 가지는 중에 서로의 믿음이 쌓이면서, 평소에 토로하기 힘든 지난 가정사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기록자에게는 의미있는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일단 말문이 트이니 한마디 한마디 조심하시던 할머니께서 정말 말씀을 잘 하셨다.

"내 평생 처음으로 이런 말 해 봅니더"
 
   
▲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 - 평리동 할매들 인생이야기』 (김세빈 외 8명 지음 | 리체레 펴냄 | 2022)

인터뷰가 한참 이루어지는 중에 근처에서 폐지를 가져가라는 전화가 걸려왔고, 할머니는 전화를 끊으시곤 벌떡 일어나서 "지금 폐지를 받으러 가야해예" 하시면서 바로 인터뷰가 중단되었던 적도 있다. 어렵게 인터뷰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할머니를 따라 폐지 줍는 곳까지 동행했었다. 할머니는 조금만 걸어도 호흡이 거칠어지시면 쉬어가야 했다. 심장이 좋지 않아서 약도 드시는 할머니께서 리어카를 끌고 새벽부터 폐지와 고물을 수집하는 일을 매일 일상적으로 하고 계셨다. 그 힘겹게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 모습에서 인생의 깊은 고달픔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들었던 시절,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시골 고향을 떠나와,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고달픈 시간들,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생애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기를 보내고, 자식을 위해 거친 일들 감당해야 했던 고달픈 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할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나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버텨내야만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함께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할머니는 잘못 살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뼈빠지게 일을 해서 남은거라곤 단칸방 홀살림살이에 약간의 정부지원금, 그리고 작은 리어카다. “누구의 잘못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애구술기록에 참여하는 내내 그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평리동 할매들 인생이야기』 책 출판회(2022.11.12 애은성당)

2022년 11월 12일, 평리동 성공회 서대구교회(애은성당)에서는 아주 특별한 책출판회가 열렸다.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가 2022 좋은변화실험실 사업으로 지원하고, 위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위드의료사협)이 10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을 모집해서 커뮤니티 케어 생애구술기록사업으로 진행한 결과,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 - 평리동 할매들의 인생이야기’를 출간하고 축하하는 날이었다.

참여한 작가들의 직업을 보면 대학생, 시민기자, NGO활동가, 주부, 이주민활동가, 책방지기, 의사 등 그 면면이 다양했다. 그만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문체도 다채롭다. 정민철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책을 읽은 후 한국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한’이라는 추상명사를 저의 신체가 처음으로 감각하게 되었다.”고 감상을 고백을 하면서, 서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일원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했다.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평리동 할매들 인생이야기』

작가 - 김세빈(계명대 간호학과 재학) 이명주(시민기자) 임시영(계명대 간호학과 재학) 장은영(경북대 의대 재학)
양선희(동국대 경주병원 의사) 정의석(담담책방 대표) 박성민(이주민연대 대표) 박주희(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진정림(영남일보 시민기자)

편집 - 김수진(경북대 의대 재학) 박주희(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윤종필(위드의료사협 이사장) 정의석(담담책방 대표) / 디자인 - 표지 일러스트 김수진 . 북디자인 전연정

그렇게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는 ‘내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이고, 분명 함께 공유해야 할 사회적 의미가 담긴 책이다. 그리고 이번 생애구술기록사업은 위드의료사협이 ‘마을돌봄’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의미있는 첫 시도였다. 눈부신 의료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막상 환자의 질병 배후에 감추어진 삶의 서사를 이끌어내 전인적인 치료에 접근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은가. 이번 작업은 병원 밖 마을에서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함께 우애를 나누는 공동체로 서로가 서로의 치유에 참여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책출판회가 열리던 날, 인터뷰에 참여하셨던 할머니들은 한목소리로 “보잘 것 없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마웠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사실 한 시대의 주인공의 이야기들임을 확인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한 사람의 생애는 하나의 세상이라고.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기가막히게 서로 연결되어서 우리의 앞 길을 격려한다.

 
   
 








 [책 속의 길] 211
 정의석 / 담담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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