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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젠가 서게 될 그들의 자리
손수정 / 『거부당한 몸』(수전 웬델 지음 | 그린비 펴냄 | 2013)
2022년 10월 26일 (수) 12:40:05 손수정 pnnews@pn.or.kr

나는 10년 가까이 발레로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운동은 무게중심을 잡고 높이 발을 들고 서 있기도 하고 돌기도 해야 한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겠지만 체력과 근력이 제법 필요하며 특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신경을 집중시켜 동작을 완성하여야 선생님이 주신 순서들을 겨우 따라 해낼 수 있다. 뿐만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근력과 지구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지속적인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운동들은 내 몸에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지하게 하며, 내 몸에 대한 민감도를 키우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서만 나의 몸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달라지는 몸을 인지하게 된다. 체력이 20, 30대 때와 같지 않고 특히 관절의 통증, 또는 원인 모를 통증이 수시로 오기도 한다. 이 때마다 떠오르는 책이 바로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캐나다의 여성학 교수로서 1985년 근육통성 뇌 척수염/만성피로 면역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음식도 잘 챙겨 먹고 열성적으로 교수 생활도 하였다고 한다. 이 부분을 저자가 밝힌 것은 저자 자신의 병이 불규칙한 생활이나 잘못된 행동 또는 정신적인 문제 등으로 오게 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은 병이 발병되고 난 후 그가 겪은 통증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발간한 책인데, 1996년에 출간된 이후 장애학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 『거부당한 몸 -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수전 웬델 지음 | 황지성, 김은정 옮김 | 그린비 펴냄 | 2013)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8년 전 여성단체 활동을 시작하며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였다. 그 당시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하며 한국에서 사는 기혼여성으로서의 불편한 감정을 어느 정도 직면할 수 있었고, 해소하려는 노력도 기울일 수 있었다.

그 당시, 페미니즘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내는 과정을 통해 개인으로서의 나를 벗어나 사회에서 내가 서있는 곳, 상대가 서있는 곳, 그들이 서있는 곳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곳에 많은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막연하게 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국에 사는 많은 이들처럼 장애인을 잘 접해 보지 못했던 나에게 장애인에 대한 생각,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는 책들도 여러 권 접하게 되었는데 수전 웬델의 『거부당한 몸』은 나이가 들어가고 몸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을 때 특히,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복기하게 되는 책이다

질병·장애에 대한 왜곡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질병이나 장애에 대해 아무렇게나 뱉어내었던 말들이 떠올라 무척 부끄러웠으며, 나의 곁에서 고통을 호소했던 친구나 가족들이 떠올랐다.

나는 대체로 사회가 말하는 건강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큰 병을 앓은 적도 없고, 감기 같은 질병에 걸리고도 빠르게 회복하는 편이었다. 『거부당한 몸』을 읽지 않고 수전 웬델 작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 누군가의 통증이나 증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에서 자주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속으로(간혹 밖으로도) 정신력이 약할 것이라거나,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하거나 말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부끄럽고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다양한 의제들을 이야기하며 그 중에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거부당한 몸』을 읽기 전까진 ‘질병으로 인한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노년이 되는 것, 질병이 발생하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아픈 곳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현대의학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통증일 경우 정신적으로 이겨내거나, 개인이 건강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곤 했다.

간혹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이 ‘늙으면 죽어야지’,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들리지 않으니 오래 살아서 뭐하나’ 이런 이야기들로 노년의 삶을 비하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런 말들은 결국 자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노년 삶을 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선천적 또는 사고로 인한 신체적 장애, 질병에 의한 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을 비하게 되는 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뱉는 경우다. 그들이 그런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은 결국 장애인의 삶이나, 노년기의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왜곡된 시각이 투영된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회에서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수전 웬델이 언급했듯이 현대의학에서 확인 해주지 않는 병은 가볍게 여기며 비하하거나 정신적 문제로 취급당하기 쉽다. 수전 웬델은 여러 학자들의 연구나 저술을 인용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겪은 질병의 고통을 바탕으로 장애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고 그들을 위한 나아가 우리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결국 장애를 가지게 된다

또, 수전 웬델은 장애인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갈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메이 사턴의 일기를 인용하기도 했다. 메이 사턴의 『뇌졸중 그 후』라는 일기에서 ‘나에게 젊음이라는 것은 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반면, 노년은 종종 고통이나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일이다. 누구나 실제로 그것을 의식한다’를 인용하며 "최소한 우리는 몸을 인식하는 것이 많은 경우 통증과 불편함, 신체적 어려움을 인식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장애인은 몸이 경험하는 이러한 부분에 집단적으로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돕고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주된 역할을 해야 하며, 장애와 질병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전 웬델이 말했듯 나이가 드는 것이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타자’가 아니라 미래의 자신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갑자기 죽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결국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거부당한 몸』 중에서)

내가 장애를 가지게 된다고 인식한다면 이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편의를 배려한다는 식의 정책이나 사회기반시설을 만들며 그들을 배제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서있는 곳과 그들이 서있는 곳이 다르며, 내가 언젠가 그들에 자리에 서있게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다.

 
   
 
 






 [책 속의 길] 209
 손수정 / 전 책마실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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