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기를 마치면 탈상하는 것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제는 우리가 슬퍼하고 추모하는 그런 마음을 넘어서서 새로운 희망으로 새 출발하는 시기다.”
19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희망’이라는 화두를 꺼내자, 1만여 명 인파(경찰 추산 7000명) 속에서 환호성과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문재인 이사장은 “공식 선언은 (22일 추모 행사)그 때에 하겠지만 제 마음으로는 제 입장이 정해진 상태”라고 밝혀, 대선 출마를 통해 그 ‘희망의 씨앗’을 뿌릴 것임을 시사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라는 주제로 열린 노무현 3주기 추모 콘서트는 ‘추모’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실제 참석자들은 ‘미래’를 기약하고 있었다.
이번 콘서트를 연출한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진행을 맡으면서 “총선 이후를 왜 그렇게 낙관했는지, 총선 이후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 생각이 부끄러웠다”면서도 “허망하게 사라지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지개처럼, 희망을 다시 찾아봤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총선 결과를 되짚어 보고, 대선을 기약하며, 차기 정부와 국회를 고민해 보는 대화의 자리가 이날 추모콘서트의 ‘핵심’이 됐다. 불공정한 언론에 대한 ‘정상화’를 촉구하는 언론사들의 파업 등도 중요한 해결 과제로 꼽혔다.
7시10분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애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추모 콘서트가 시작됐고, 1부 토크 콘서트는 19대 총선 낙선자들이 출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부산에 출마했다 낙선된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 문성근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와 이재오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한 천호선 전 통합진보당 대변인, 8년 전 막말이 불거져 논란을 빚은 김용민 <나는꼼수다> PD가 한자리에 모였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사회를 맡고,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특별 출연’해 이들의 낙마에 ‘쓴소리’를 했다.
우선 이들 낙선자들의 정신적 충격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 상태가 도마에 신랄하게 올랐다. 김어준 총수는 “김용민이 멘붕이 심할 때는 한 끼에 한 그릇만 먹었다. 충격적”이라고 말했고, 천호선 전 대변인은 “엄청나게 먹는데 선거 전 몸무게가 아직 안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는 문성근 전 최고위원에게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촌철살인 발언이 다 없어지고 외모도 그렇다. 요즘 하루가 어떤가”라고 묻자, 문 전 대표는 “저녁에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막걸리 한 잔 하고 그런다”고 답변했다. 김용민 PD는 “제가 이 분들 다 떨어뜨렸다고요”라며 미안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 낙선자들은 ‘20대 총선에 출마할지’, ‘자신의 정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친 영향’을 묻는 김 총수의 질문에, 희망에 찬 주장을 해 시민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천호선 전 대변인은 “대변인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민에게 솔직한 점’,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 점’, ‘이념을 떠나 원칙과 상식을 지킨 점’을 느꼈다”며 “(노무현 정신을 이끌어가며)20대(총선)에 나가서 반드시 당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총선 이후 출마한 은평구에 ‘낙선 인사’를 1주일 간 다니면서 힘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경수 사무국장도 “대통령을 만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고 그 희망으로 봉하와 김해를 지키고 있다”며 “이번 선거를 통해서 김해를 지키는 게 또 운명이 됐다”며 차기 총선 출마를 시사했다. 그는 “국민들이 멘붕 상태인 것 같다. 함께 힐링을 해야 한다”며 “힐링의 핵심은 연말 대선”이라고 지적했다.
문성근 전 최고위원은 “2002년에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서 대통령 후보로서 득표율이 29%였다”며 “이번 총선에서는 40%가 넘었다. 12월에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기자. 이깁니다. 가자”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주먹을 쥐고 하늘로 추어 올리기도 했다. 이들의 발언을 듣고 나서 김어준 총수는 “(추모)3주년 되는 날에 넥타이를 풀려고 했으나 할 일이 있어 12월17일에 풀겠다”며 대선을 기약했다. 김 총수는 3년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공식 석상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참석해 왔다.
탁현민 교수는 “총선 패배가 우리에게 많은 슬픔을 줬다면 또 한 번의 싸움이 있다”며 2부 토크 콘서트로 안내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공지영 소설가, 도종환 시인(19대 총선 당선자) 등 쟁쟁한 인사들이 참석했지만, 시민들의 박수가 가장 뜨거웠던 인사는 바로 문재인 이사장이었다. 8시20분께 모습을 보이자마자 여기저기서 사인, 촬영 요구가 이어질 정도로, 시민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대선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라며 탁 교수는 ‘최대 관심사’를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문 이사장은 “그에 대한 답은 3주기 추모 행사를 마친 후에 제가 밝히겠다고 말씀 드렸다”며 “공식 선언은 그때 하겠지만 제 마음으로는 제 입장이 정해진 상태”라고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탁 교수는 “만약 문재인 이사장이 대선 출마를 하면 어떤 방식으로 시민과 만나고 캠페인을 할 것인가”라며 재차 대선 관련 질문을 이어갔다.
이에 대해 문재인 이사장은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문재인식 ‘비전’을 강조하고 나섰다. 문 이사장은 “5월23일 봉하에서 추도식을 하면 그날 이사회 열어 후임 이사장을 선출할 예정”이라며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그만두고 저는)앞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다. 잘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걱정도 된다”며 “그러나 제가 앞장서서 여러분들께 반드시 희망을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12월 대선 때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얻은 것보다 더 득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문 이사장을 돕고 있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정치인 문재인이 정치에 도전하는 과정은 스스로 금기를 깨나가는 과정”이라며 “절대 무대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북 콘서트를 열었고,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는 분이 스스로 (총선에)출마했으며, 가장 자신 없어하는 것이 춤과 노래인데 이번 총선에서 춤을 췄다”고 말했다.
그러자 탁 교수를 비롯해 시민들이 선거운동 당시 영화 ‘써니’ O.S.T에 맞춰 춤 춘 것을 재연해주길 주문하자, 문 이사장은 이날 추모 콘서트에서 이를 즉석에서 선보여 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양 전 비서관은 “특전사 출신인 문 이사장이 호국 보훈의 날에는 비행기를 타고 점프할지 모른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앞서, 문 이사장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벽돌 격파를 선보였지만, 이후 병원에서 손가락에 깁스를 했다. 이 소식은 문 이사장의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정치적 사안 이외에도 현재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언론사 파업과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도 향후 해결돼야 할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문 이사장과 함께 토크 콘서트에 출연한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제도권 언론의 90%가 수구 보수의 목소리를 내는 일방적인 조건”이라며 언론 현실을 소상하게 시민들에게 알렸다. 시민들은 “독재”, “반칙”이라고 목청을 높이며 언론 현실을 꾸짖었고, 정 전 사장의 발언에 박수로 지지했다. 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와 KBS 본부는 각각 100일, 70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고,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도 불공정 보도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장 퇴진 등을 촉구하는 파업을 하고 있다.
“축구장이 기울어져 있어서 한 쪽에서 공을 뻥 차면 상대방 골대까지 가는데, 다른 한 쪽은 공을 차도 가지 않는다. 방송사 후배들이 여의도에서 희망텐트를 치고 파업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힘을 많이 보태줘야 한다. 언론이 정상화 돼야 나라가 바로 선다. KBS의 불법 체제, MBC의 해괴한 체제의 극복이 중요하다. 저는 다시 KBS로 돌아가겠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 각 언론사, 방송사에서 해직된 모든 언론인들과 함께 돌아가는 것이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첫 출발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 정상화를 위해 KBS, MBC 젊은 PD와 아나운서들이 싸우는 것이다. 많은 힘을 실어달라.”
또 다른 사회 이슈로 공지영 작가는 “5월22일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고 쌍용차 파업이 시작됐다”며 “쌍용차 문제를 알기 위해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하는데 눈물 없이 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서울역에서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 범국민대회’가 열렸고 5000여 명의 참석자들이 가두 행진을 한 뒤 오후 7시께까지 시청 광장 앞 도로에서 집회를 이어간 바 있다. 지난 2009년 쌍용차 노동자 2464명이 정리 해고를 당했고 현재까지 2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해고자 등은 시청 광장 맞은편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거리 농성 중이다.
공지영 작가는 “(추모 콘서트 끝나고 집으로)돌아가실 때 한 번씩 분향하시고 서명이라도 해주시면 너무 힘이 되실 것 같다”고 시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공 작가는 쌍용차 해고 사태 등을 담은 책을 내달 말께 출간하고, 수익금을 쌍용차 해고자 등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이날 공연은 탁 교수가 “우리가 희망이 되자”라는 클로징 멘트와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라는 가사로 유명한 이한철의 노래 ‘슈퍼스타’로 마무리 됐다. 이날 추모 콘서트에서 ‘제8극장, 밴드 ‘피아’, ‘조 아저씨’로 알려진 바리톤 박경종씨 등의 공연도 함께 열렸다.
탁 교수는 “제8극장은 이런 추모 공연 나오고 나서 공연 섭외가 없다고 한다”고 소개했지만, ‘제8극장’쪽은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3년째인 지금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과 함께 보고 싶어 하니까 행복하다”고 말했다. 밴드 ‘피아’는 “오늘 밤에 KBS 방송(<톱밴드2>)에 나오는데 여기 추모 콘서트에 나와서 (방송에서) 편집돼 다음 주부터 안 나올 수도 있다”며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게 옳은 길이자 올바르른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 가족이 함께 온 이아무개씨(44·남)는 “빈부 격차는 심하고 번 돈은 노후 대비도 못하고 자식들 교육하는데 다 쓰고 있다”며 “노무현이 꿈꾸는 나라는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나라다. 지금 정치가 이런 점을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노아무개씨(38·남·서울)는 “오늘 3주기 추모 콘서트에 와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슬픔, 총선에서 패배한 슬픔까지 다 잊고 힘을 얻게 됐다”며 “이번 총선에서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던 야권의 자살골 비극이 이번 대선에서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 2012-05-20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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