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1975년 4월 9일 박정희 정권은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를 이유로 민주화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였던 8명을 사법살인했다.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재심에서 희생자 8명이 최종 '무죄' 판결을 받는데 무려 32년이 걸렸다.
'사법사상 암흑의 날' 4.9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이 발생한지 올해로 50년이다. 희생자 8명의 모습이 그림과 사진, 글씨, 책 등 여러가지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했다. 대구시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 5일 대형 전시장이 설치됐다. 주제는 인혁당과 민주주의다. 광장을 지나치는 시민들마다 작품들을 관찰한다. 어떤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화를 내기도 한다.
'無罪(무죄)'라고 적힌 커다란 전시 작품. 50년 전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생된 인혁당 희생자들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가장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인혁당 희생자들은 긴급조치 1~4호,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유죄를 인정 받아 감옥에 갇혔다.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내린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돼 목숨을 잃었다. 50년 전 당시 사건을 담은 신문 보도들도 이날 전시회 곳곳에 배치됐다.
그리고 인혁당 8명의 사형수 작품 뒤로, 그들을 죽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거대 동상이 보인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경제 성장과 산업화 정신을 기념한다며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시 인혁당 유족들과 시민사회와 야당의 반발에도 강행했다.
3m 높이의 박정희 동상 뒤로 '독재자의 동상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전시회 작품이 선명하다. 박정희를 다시 기념하고 우상화하는 정치권을 향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이자, 50년 전 박정희 손에 죽임당한 인혁당 희생자들의 경고로 읽힌다.
인혁당 사건 50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전시회와 시민대회가 열렸다.
'4.9통일열사 50주기 행사위원회'는 5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 일대에서 '4.9통일열사 50주기 정신계승 시민대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400여명이 참석했다.
인혁당 피해자 고(故) 나경일 열사 아들 나문석씨와 김찬수 4.9통일열사 50주기 행사위 상임공동대표, 임성종 공동대표를 비롯해,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 안영민 경북대 민주동문회장, 안홍태 영남대 민주동문회 수석부위원장 등 지역의 여러 인사들이 참석했다. 허소 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 이영수 경북도당위원장, 현역 국회의원인 차규근(비례대표) 조국혁신당 대구시당위원장, 황순규 진보당 대구시당위원장, 신원호 기본소득당 대구시당위원장,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 등 야권 인사들도 자리했다.
이들은 시민대회에서 "시대의 아픔을 광장의 빛으로"라는 피켓을 들고 탄핵 정국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또 ▲인혁당 열사 정신 계승 ▲조국 통일 ▲윤석열 파면 후, 원조 내란 범죄자 박정희 동상 철거 등을 촉구했다. 이어 박정희 동상을 둘러싸고 "독재자 동상을 철거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또 인혁당 희생자 8명을 표현한 그림 앞에 헌화를 하며 추모를 하기도 했다.
김찬수 4.9통일열사 50주기 행사위 상임공동대표는 "인혁열사들이 바랐던 4월 혁명의 완성은 자주적인 나라, 평화 통일"이라며 "하지만 열사들이 살았던 그 시절만큼 오늘날 우리 시대 아픔이 못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인혁당 50주기를 맞아 역사적 과제인 내란 세력 척결과 진정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함께 전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성종 공동대표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4월 4일)으로, 시대착오적 발상을 가진 권력자의 비참한 말로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며 "계엄과 내란에 휩쓸린 4개월 동안의 분열과 혼돈을 비참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인혁당 사건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고 밝혔다. 이어 "영구 집권을 욕망하던 독재자 박정희가 계엄을 남발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몰고 가던 야만적 행위가 정점에 달한 날이 바로 1975년 4월 9일이었다"면서 "그러나 희생자들이 산화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지만 대구의 관문에는 독재자의 동상이 들어섰다. 시민대회를 통해 인혁열사들을 추모하고 박정희의 망령을 떨쳐내자"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이날 행사에서 인혁당 사건과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인혁당 사건의 주요 일지와 역사적 의미 등을 담은 신문을 대구시민들에게 나눠줬다. 박정희 정권의 불법 긴급조치와 유신 선포를 비롯해 유신독재 정권에 맞서다 당시 희생당한 민주화운동가들의 명단과 그들의 약력을 담은 게시물도 행사장 근처에 설치했다.
그 일환으로 5일부터 오는 10일까지 동대구역 광장 박정희 동상 근처에 '1975~2025 암흑의 날로부터'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대구경북을 포함해 전국의 예술 작가 50여명이 전시회에 참가했다.
인혁당이 발생한 1975년을 시작으로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7년 6월항쟁, 1988년 서울올림픽, 1998년 IMF 외환위기,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2013년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10.29 서울 이태원 참사 등 지난 50년간 한국에서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이나 민주주의 관련된 역사들을 여러 형태의 작품으로 전시했다.
전시를 위해 길이 8m, 높이 3m 정도 되는 비계(발판) 한쪽 면에 그림을 달았다. 반대편에는 시민들로부터 '12.3 비상계엄' 이후 광장에 들고 나온 응원봉과 피켓,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이나 책, 물건 등 200여점을 제공받아 '빛나는 민주주의의 사물들 –우리들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시민참여전시를 열었다.
작가들은 "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 이후로 민주주의의 기본과 법치국가의 근간이 무너져내렸고,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암흑이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덮었다"며 "시민들은 기나긴 암흑의 터널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우리의 가족, 이웃, 친구들이 암흑의 날로부터 50년간 걸어왔던 민주주의의 궤적을 제각각 시각으로 표현했다"며 "결코 잊어서는 안될 어두운 역사의 조각들과 각자의 방식으로 암흑의 날을 헤쳐온 빛나는 기억들을 광장 위에 올려둔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 동부경찰서는 이날 오전 7시부터 길이 10m에 이르는 펜스를 박정희 동상 사방에 설치하고, 폴리스라인까지 쳤다. 인혁당 행사가 열린 오후에는 경찰 병력 200여명을 펜스 안쪽 등 곳곳에 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구시 공용시설물이니 훼손 방지를 위해 펜스를 설치했다"며 "대구시에서 요청한 것이 아닌 경찰 자체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 마찰 방지를 위해 병력도 배치했다"며 "추모제가 끝나면 펜스를 철거하겠다"고 덧붙였다. 큰 마찰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시민대회는 마무리됐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인 1974년 중앙정보부가 "북한 지령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구성해 국가 전복을 꾀했다"고 발표한 이듬해인 1975년 4월 9일 김용원·도예종·서도원·송상진·여정남·우홍선·이수병·하재완 8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사건이다. 사형 선고 18시간만에 집행이 이뤄져 국제법학자학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했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인혁당 사건 재조사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법원이 사건 발생 32년만인 2007년 재심을 통해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사상 암흑의 날' 1975년 4월 9일 발생한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이 올해로 50주기를 맞습니다. 박정희 독재 정부의 조작으로 인해 8명의 가장과 청년들이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중 4명이 대구경북지역 출신입니다. '평화뉴스'는 당시 사건을 돌아보고 희생자들과 유족들, 관련자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연속 보도를 통해 인혁당과 같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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