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大自然)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海底)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深淵)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죄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죄(罪)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
- 김수영, 「기도:4.19순국학도위령제에 붙이는 노래」(1960.5.18.) 전문
혁명의 도정에 나선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덕목
1960년 4월혁명의 시인 김수영의 시 「기도」이다. ‘4.19순국학도위령제에 붙이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4월혁명으로 이승만이 권좌에서 물러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씌어진 작품이다. 시인은 혁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태도를 간절한 호흡에 담아 시의 서두와 말미에 반복하여 적고 있다. “시를 쓰는 마음” “꽃을 꺾는 마음”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이란, 혁명 직후의 환호와 들뜸의 상태를 벗어난 절제된 섬세와 긴장,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뜻하는 것으로서, 시인은 끝까지 세세하게 살피는 견인(堅忍)의 실천이야말로 혁명을 온전히 이룩하는 길임을 거듭 강조한다. 김수영 특유의 열거와 반복, 그 변주의 수사학은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피의 혁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을 담아내는 언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영이 혁명의 성취를 위해 필요한 마음을 이렇게 강조하여 적은 이유는, 혁명 이후의 사회가 여전히 “정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부패와 부정”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며,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조심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혁명의 성취가 ‘배암’과 ‘쐐기’와 ‘쥐’ ‘삵괭이’ ‘진득이’ ‘악어’ ‘표범’ ‘승냥이’ ‘늑대’ ‘고슴도치’ ‘여우’ ‘수리’ ‘늑대’에게, 다치고 깎이고 물리고 더럽혀질 수 있다는 것. 시인이 이질적인 성격의 동물들을 다양하게 열거한 이유는 다른 여러 시편들에서 강조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적이란 눈에 보이는 명시적인 악당들뿐만 아니라 혁명의 내부,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편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혁명의 성취를 방해하고 훼손할 수 있는 적이 편재하기 때문에 시인은 섬세한 절제와 긴장, 정과 성을 다하는 태도가 혁명의 국면에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했던 수많은 대상들의 부정적 속성, 그 악착같은 집요함과 욕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부정성으로 인해 돌아올 비판을 감수하고 견뎌내는 능력이 혁명의 주체인 ‘우리들’에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으로 언급했던 대상들, 그들의 수만큼이나 도처에서 발호하는 다양하고 집요한 적들을 넘어 끝내 혁명의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고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고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는 일,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는 일이라도 끝끝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죄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겠다는 시인의 말은, 혁명의 완수에 대한 간절함의 표명임과 동시에 혁명의 주체들을 향해 욕과 수난을 감수할 수 있는 강고한 의지를 요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쌍한 백성이 되지 않는 길
위의 작품 「기도」를 쓴 지 일주일이 지난 뒤에 김수영은 「육법전서(六法全書)와 혁명」에서 “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4.16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명이라는 말을 걷어치우”라고 격렬하게 비판한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혁명을 완수하라고 했던 시인이 돌연 “혁명이라는 말을 걷어치우”라고 한 것은, 이 두 작품이 창작된 시점 사이에 4월혁명 이후 등장한 허정 과도정부와 민주당이 자유당과 타협하여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회 해산과 총선거 이후 개헌을 주장했던 국민들의 요구를 배반하는 제도권 정치를 목도하면서, 시인은 “기성 육법전서(旣成 六法全書)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라고 비판하며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고 신랄하게 야유를 퍼붓는다.
김수영은 4.16의 실패, 4월혁명의 실패를 예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관적 인식을 쏟아낸다.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天國)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舊六法全書)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혁명을―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 김수영, 「육법전서와 혁명」(1960) 중에서
이승만의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혁명을”, 기존의 낡은 구체제-內의 방법으로 도모하는 것은 혁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 결국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선언한다. 하여 혁명을 위해 고통을 감수한 민중들, “위정자가 다 잘해줄 줄 알고만 있”고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순진한 민중들을 시인은 “불쌍한 백성들”로 호명한다.
앞서 언급했던 시 「기도」에서 김수영이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고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라며 강조한 것은,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변혁을 성취하고자 하는 강고한 의지, 유연한 지혜 그리고 악착같음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육법전서’로 비유된 기존의 체제-內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적어도 당대 민주주의의 명시적 적이었던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 그 불법을 떠받친 집요한 권력에의 의지 이상의 강고한 의지가 혁명 과정에 필히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착함이나 선량함의 포즈,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는 근사한 정치, 근사한 사슴의 화관(花冠)의 정치로는 혁명을 완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란의 진압은 이제 시작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무려 123일 만에 윤석열이 가까스로 파면되었다. 그가 집권한 지 3년이 되지 않았는데 훼손되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망가졌다. 극심한 갈등이 일상화되었고, 공론의 장과 협의의 문화는 실종되었다. 임명권자 윤석열처럼 저열한 인간들이 공공기관의 수장에 배치되면서 우리 공동체가 축적해온 가장 기본적인 상식과 가치들이 유린되었다. 마치 악(惡)의 판도라가 열린 것처럼, 그동안 감히 양지(陽地)로 부상(浮上)할 수 없던 것들이 뻔뻔하고 노골적인 양상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이러한 사태들이 어찌 없던 일이 될 수 있는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것처럼,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이 탄핵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정상화 되지는 않는다. 헌법을 유린하고 무시한 자들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아무런 반성 없는 내란의 동조자들이 정부와 국회에 가득하다. 다수의 공공기관에 탈법(脫法)과 반 상식적인 작태들이 자행되고 있고, 대통령부부의 위법을 강력하게 막아온 검찰은 여전히 캐비닛(cabinet) 정치, 그들만의 카르텔 정치를 이어오고 있다. 거짓과 사술(詐術)이 난무하고, 돈에 혈안이 된 사이비 종교 세력과 유튜버들은 여전히 혐오와 갈등을 판돈으로 삼아 그들의 장사를 이어갈 것이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함께 참여하고 고통을 꿋꿋하게 감내하는 일
앞선 시들에서 김수영이 강조했던 것처럼 “시를 쓰는 마음” “꽃을 꺾는 마음”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우리가 열어놓은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윤석열의 집권기간 동안, 그리고 최근 탄핵 국면에서 모두가 목도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정글보다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이다. 우리가 다시 열어놓은 새로운 광장을 ‘배암’과 ‘여우’, ‘쥐’ ‘삵괭이’ ‘진드기’ ‘승냥이’ ‘빈대’같은 놈들에게 깎이고 물리고 더럽힐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는 일, “악어가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는 일도 감내해야 한다.
언제까지 타락한 독재자들의 폭력과 사술(詐術)을 마주할 것인가.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좀비처럼 살아 우리의 미래로 돌아온다. 우리는 이미 너무 충분히 겪지 않았던가.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배울 것인가. 감내하고 견뎌야 한다. 근사해 보이는 착한 정치, 타협의 정치를 서두르고 요청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그러한 “개수작”을 용납하면, 우리는 다시 죽을 고생을 하고 또다시 “불쌍한 백성”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 공동체가 파면한 “사납고 추잡한 놈”을, 그리고 ‘배암’과 ‘쥐’, ‘삵괭이’ ‘늑대’ ‘고슴도치’ ‘여우’ ‘수리’ ‘빈대’ 진드기’들을 청산해야 한다. 독일은 종전 후 20년이 지나 시작한 전쟁범죄의 청산을 무려 60년 이상 진행하고 있다. 우리 공동체가 기억할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란을 진압하고 부정한 역사를 청산하는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천국(天國)이 온다고 바라”보고 방심(放心)할 것이 아니라 천국을 만드는 도정(道程)에 함께 참여하고 고통을 꿋꿋하게 감내하는 일, 그것이 이 땅에 천국을 실현해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문주 칼럼 14]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