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의 민원에 게으른 기자" - 매일신문 한윤조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4.09.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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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때문에 존재하는 기자인데...독자 위에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닌가”


'기자들의 고백' 원고를 부탁받은지 일주일...
1분전에 들은 이야기도 깜빡깜빡하는 정신인지라 까많게 까먹고 있다 마감시간이 지난 토요일 낮이 되어서야 겨우 생각이 났다.
일주일 중 간신히 편히 쉴수 있는 토요일 오후...
"간단하게 한줄 그리고(^^) 만화책이나 보며 뒹굴어야지"생각했었는데... 겨우 1년반 남짓한 기자생활중 왜 그렇게 맘에 걸리는 행동을 많이 했던지...

몇번 받아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받았던 촌지에 대한 고백도 해야겠고, 기사에 대해 날아올 항의와 비난 때문에 하고싶은 말 제대로 뱉어내지 못하고 두려움에 전전 긍긍했던 나의 소심함도 털어놔야겠고.

이것저것 고백하고픈 것들이 자꾸 떠올라 결국 밤 10시가 넘도록 썼다 지웠다만 되풀이하다 결국은 '민원해결'에 대한 나의 게으름을 이실직고하고 반성하고자 글을 시작해봤다.

우리회사 사회부로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적어도 2∼3통 이상의 전화를 해대는 소위 'fax아저씨'가 있다.
병이 있으신지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어눌한 말투의 아저씨는 "10년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가해자로 몰려 보상도 제대로 못받은게 억울하다며 자신의 사연을 팩스로 보냈으니 기사화 해 달라"고 매일같이 하소연한다.
문제는 이런 전화를 한번 두번 받는게 아니다 보니 이젠 아주 도가 텄다.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저..학생인데요!"라고 대답하는 것. 회사에 일하는 사환 학생임을 가장해 빨리 전화를 끊도록 만드는 것이다.

신문사에 들어와 새롭게 알게 된 점 중 하나는 신문사가 일종의 '민원해결 창구'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팩스 아저씨의 경우처럼 서민들이 살아가며 당하는 부당하고 억울한 각종 사연들이 최후의 방책으로 신문사를 통해 해결방법을 찾고자 밀려드는 것이다.
이런 민원들은 대략 2가지의 분류로 나눌수 있다.
기자의 힘이 닿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도움을 줄수 있는 민원이 있는 반면, 한맺힌 사연임에는 틀림없어 보이지만 사실 여부 파악이나 법적 해결에 있어 전혀 도움을 줄수 없는 경우가 있다.

현재 나는 이 두가지 경우 모두 '불성실'한 게으른 기자다.
처음 기자가 되고 나서 "내 힘으로 해결 가능한 민원이라면 당연히 독자를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해결해 줘야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사거리로 이어질수 없는 일이면 귀찮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단 사연을 들어본 뒤 전혀 해결이 불가능한 후자에 해당되는 사연이다 싶으면 그때부터 긴 하소연을 중단시키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이 지금 나의 모습이다.

기자란 사회의 목탁이며 한사람의 억울한 사연이라도 함께 들어주고 고민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기사거리만을 위해 찾아다니는 '기사 사냥꾼'에 불과한 처지로 스스로를 전락시킨 듯 하다.

독자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기자들일진데 언젠가부터 내가 그들 위에 있다는 어줍잖은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일부터라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독자들의 전화에 귀기울이고 해결 불가능한 사연이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함께 고민하고 길을 모색해 주는 '독자서비스'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

매일신문 사회부 한윤조 기자(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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