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기자" - TBC 이지원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4.10.05 00: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섣부른 의견을 소리 높여 외치지는 않은가?”


기자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9년째다. 편집장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뭔가’를 ‘고백’하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주어진 시간은 다 지나고 적절한 소재는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고백’할 일이 없어서?... 푸하~ 그러면야 정말 뿌듯하련만,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누구나 ‘No’라는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9년이 다 돼도록 하루하루 취재하고 기사쓰고 시간에 쫓기면서 아무 생각없이 지내왔다는 건데... “생각하면서 살게 해주세요!”
<기자들의 고백>이란 제목만 달랑 써놓고 텅 빈 백지와 씨름하는 내 모습이 바로 오늘 고백해야 할 주 대상인 것 같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외형적인 이미지와는 다를 지 모르겠지만, 난 유난히도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다. 학창시절에는 더 심했고 지금도 사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단지 험한(?)일을 하다보니, 충격에 적응하는 능력이 길러졌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겉으로나마 강한 모습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겉과 속이 다른 人間(?)으로 느끼는 감정의 괴리와 어려움들.., 별 준비없이 시작한 기자생활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얼마 전 방송기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기사작성과 리포팅을 강의한 적이 있다. 대부분 신문방송학 전공자이긴 했지만 필기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작성이나 리포팅등 실무에도 꽤 ‘준비’가 돼 있었다. 그 학생들을 보면서 기자 초년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기자가 되고 2-3년차까지의 나는 잔뜩 겁먹어 있었던 것 같다. 전공자가 아닐 뿐더러 학창시절 학보사나 방송국 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여고.여대를 다니면서 조용히 노는데(?)만 익숙했던 나이기에 취재와 기사작성, 리포팅은 물론 취재원과의 인간관계 등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먼 발치에서 건물 외형만 봐왔던 경찰서에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느낌이란...

그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경찰인지 피의자인지 구별도 안 될 뿐더러 그 삭막한 공간에 새벽부터 나가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 당시 경찰서는 왜 그렇게 추웠는지... 낯선 느낌까지 가세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모두 꽁꽁 얼어버렸다. 담당 경찰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난생 처음 듣는 엄청난 욕을 쏟아놓는 피의자들, 그들과 인터뷰라도 할라치면 등에선 식은 땀이 주르륵 흘렀다. 유혈이 낭자한 현장이나 무서우리만큼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을 취재한 뒤에는 며칠씩 소화불량과 악몽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시간의 흐름과 경험들, 선배들로부터 얻은 조언과 노하우등의 결실이랄까? 사귈수록 깊은 정이 드는 ‘경찰아저씨’들과 ‘경찰서’라는 공간은 이제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유혈현장(?)나 화재현장을 본 뒤에 우황청심원을 먹어야 하지만 외줄타듯 뒤뚱거리던 내게서 어설픈 초년병의 모습을 없애도록 도와주셨던 많은 선배들에게 ‘고백’하는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얼떨결에 ‘겁많은 기자’임을 고백해 버리긴 했는데... 변명이라면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겁많은 모습을 벗고, 취재의 노하우를 익히고, 많은 사람을 접하고, 또 대구의 정서를 이해하는 등등에 묻혀 ‘생각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9년 동안의 기자생활을 돌이키는 글을 쓰면서 이제는 ‘생각하는 기자’가 돼야 겠다고 굳게 결심해 본다.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경제, 정치, 문화등 다양한 분야를 보는 내 시각은 얼만큼 바른지, 그럴만한 기본지식을 갖추고 끊임없이 자기개발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고, 앞을 보고.., 그런 과정을 거쳐 조금씩 내 목소리를 내야 할텐데...

인터넷등 뉴미디어의 발달로 언론은 순기능과 역기능의 양면을 모두 드러냈다. 기자와 기사, 언론에 대해 다양한 가치판단이 난립하고 있는 지금, 기자라면 누구나 ‘언론의 正道’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과연 바른 가치관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거시적으로 사물을 보고 있는가? 우물안의 개구리적인 잣대로 사회를 보고 섣부른 의견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글을 쓰면서 기자로서 지내온 내 모습에 대해 반성하고 작지만 기분좋은 다짐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가감없이 ‘고백’하는 자리기에, 부끄럽고 쑥스러운 마음을 접고 글을 마무리 해본다.

TBC 이지원(wonylee@tbc.co.kr)





---------------------------

<기자들의 고백>은,
대구경북지역 기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싣는 곳입니다.
평화뉴스는, 현직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고백들이
지역 언론계의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평화뉴스는,
지금까지 16개 언론사, 27명의 기자가 글을 쓴데 이어,
앞으로도 이 고백 글을 이어가기 위해 기자님들의 글을 찾습니다.
취재.편집.사진.영상기자 등 우리 지역의 모든 기자가 참여할 수 있으며
글을 써주신 기자님께는 작은 선물을 드립니다.
(053)421-6151. pnnews@pn.or.kr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자기 스스로 반성하고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의 글을 써 주신 기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매일신문 조두진 / 2. 연합뉴스 김용민 / 3. TBC 양병운 / 4. 한겨레신문 박주희
5. 영남일보 김기홍 / 6. 내일신문 최세호 / 7. 경북일보 김정혜 / 8. 대구신문 최용식
9. 뉴시스 최재훈 / 10. 대구일보 노인호 / 11. CBS대구방송 권기수 / 12. 대구MBC 도건협
13. 한국일보 전준호 / 14. 경북일보 이기동 / 15. TBC 이혁동 / 16. YTN 박태근
17. 영남일보 백승운 / 18. 매일신문 이창환 / 19. 대구신문 최태욱 / 20. 영남일보 정혜진
21. 대구일보 황재경 / 22. 오마이뉴스 이승욱 / 23. 경북일보 류상현 / 24. 교육저널 강성태
25. 매일신문 한윤조 / 26. 대구MBC 심병철 / 27. TBC 이지원 / 28. (대구신문 윤정혜 - 10.10)
(평화뉴스 [기사 검색]에 ‘기자들의 고백’이나 기자의 이름을 쓰면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뉴스 http://www.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