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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폐지해도 법률상 공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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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냉전시대 유물...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대한민국의 원로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어깨띠를 두른 채 비장한 표정으로 시국선언을 하고, 광화문에서는 폐지를 반대하는 격렬한 집회가 열렸다. 한편으로는 얄팍하게 표 계산을 하면서 소신을 묻어둔 채 폐지와 존치, 개정 사이를 헤매고 있는 정치인들도 보인다.

표 계산을 하는 정치인들은 그렇다고 치고, 왜 이렇게 폐지반대론자들이 국가보안법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국가보안법이 폐지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착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과거 국가보안법의 폐해가 드러나고, 부정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가보안법은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법률이다.
비록 1990년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행위 등에 한정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적성, 반국가단체나 구성원에 대한 찬양, 고무, 회합, 통신행위 등 범죄의 구성요건을 판단함에 있어 법집행자의 주관이 개입될 위험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단적인 예로 공안문제연구소를 들 수 있다.
이 연구소의 감정서가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중요한 증거로 제출되었고, 이를 근거로 검찰이 공소장을 작성하고, 법원이 유죄판결을 해왔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사상과 그 표현물은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에서 토론과 검증의 과정을 거쳐서 평가되어야 함에도 우리사회는 그러하지 못했다.
신도 아닌 소수의 비밀 연구원들이(이들의 신분은 아직도 비밀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상, 심지어 학자들의 학문연구에 대해서도 이적성, 용공성을 평가해왔다. 중세의 종교재판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국가보안법의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폐지 반대론자들은 국가보안법의 폐지로 인한 법률상의 공백을 주요한 반대 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현행 형법은 내란죄, 외환죄, 간첩죄와 그 각 죄의 예비, 음모 규정을 두고 있고, 내란목적의 선전, 선동도 처벌하고 있어 폐지 반대론자들이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휘날리면서 북한 찬양집회를 하고 김일성 추모집회를 하면,그 행위의 위험성을 판단하여 형법의 내란 선전, 선동죄와 내란 예비, 음모죄로 처벌하면 된다.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들어간 자는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로, 북한에서 침입한 공작원은 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하면 된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따른 법률상의 공백은 기우일 뿐이다.
모든 나라는 자기방어를 위한 형법체제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국가방어체제를 갖춘 독일, 일본 형법을 모태로 제정되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1953년도 전시상황에서나 필요했던 법률이다. 이러한 법률이 그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정권안보를 우려하는 집권세력에 의해 유지되어 왔을 뿐이다. 수많은 민주인사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안보가 유지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국가보안법의 공백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상의 공백문제보다 국가보안법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남북화해의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헌법상 평화통일의 원칙과 충돌되고 있는 반국가단체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다. 이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우리의 기업이 북한에 투자를 하는 현실에 걸맞게 법률을 정비하는 문제이다.
반국가단체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반국가단체가 점령하고 있는 땅에 여행을 가고, 반국가단체 수괴와 정상회담을 할 수밖에 없도록 규율하고 있는 법률을 실질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에서 핵심은 생각의 전환이고,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냉전시대의 의식과 제도를 극복하는 것이다.

"국보법은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냉전시대의 유물"
..."대체입법으로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을 다시 생산하는 역사의 과오를 저지르지 말기를"


폐지 반대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국가안보는 냉전체제하에 남북이 오로지 군사적으로 서로를 위협하고,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시대, 소수의 권력자들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분단상황을 이용하면서 이 지구보다도 무거운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침탈하고, 신체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했던 시대의 개념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에서 국가안보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경험한 국민들이 그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할 때 유지되고, 공고해질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욱 더 구성원의 다양한 개성이 발휘되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과 그 안에서 얻어진 공통의 가치가 바로 국가의 이익이 되어야 한다.

어느 폐지 반대론자는 방송에 나와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 이외 일반 형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도 있었고,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전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침해도 감수해야 한다? 폐지를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담겨 있는 생각이 보이는 듯 하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바로 야만적인 권력이 인권을 유린했던 반문명적인 시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토론자의 말속에서 이러한 시대에 대한 향수가 보여 전율스럽다. 차라리 솔직해지면 좋겠다. 자신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동일시되고, 오로지 반공이데올로기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질서로 군림하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한편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체제로서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친북세력이 북한의 도움을 받아 대대적인 사상전, 김일성 추모집회를 열어서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 소위 친북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를 진전시켜온 경험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폐지 반대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허약하지는 않다. 그리고 다소 우리 사회체제나 이념에 반하는 표현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들이 공론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갖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정도이고, 존재이유이다.

오히려 필자가 걱정스러운 것은 안보위기를 대비하면서 그 때가 오면 언제든지 우리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의식구조와 행동이다. 분단시대에서 안보상업주의로 누린 이익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의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연대감의 부족이 걱정스럽다.

진정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 지방분권, 지역갈등의 해소, 평화통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과연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참여해왔는지 궁금하다. 이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다면 폐지를 반대하는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회에, 특히 여당에게 바란다. 대의기관으로서 지역구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국가보안법 문제에 있어 더 이상 표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국가이익에 충실하기를. 표를 의식해서 대체입법으로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을 다시 생산하는 역사의 과오를 저지르지 말기를 간절히 요청한다.

남호진(변호사)
* 1968년 경북 예천군에서 태어난 남호진 변호사는, 지난 '98년 사법연수원을 거쳐 [법무법인 대구하나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구지부> 회원, 대구 시민단체인 <주민과 선거> 집행위원장, <대구 서구의회> 공무해외여행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인권과 주민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대구참여연대] 소식지와 홈페이지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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