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우리는 누구나 좋은 병원에 갈 권리가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명서
우리는 누구나 좋은 병원에 갈 권리가 있습니다.

2013년 4월 12일 저녁,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 2명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진주의료원 폐업 조례안을 의결했습니다. 구태정치의 표본인 ‘날치기’는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절차적 정의를 무시했다는 말은 곧, 이 결정이 애초부터 정의롭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강성노조의 해방구’라고 이야기했지만 지금 경남도는 마치 ‘홍준표의 해방구’가 된 마냥 민심을 이반하고, 환자와 의료진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절차적 정의조차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주의료원과 같은 지방의료원들이 만성적인 적자경영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도심에서 벗어나 외딴 곳으로 옮겨가면서 발생한 열악한 입지, 저수가 정책 하에서 비급여행위나 부대수익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어려운 태생적인 이유, 지방공동화로 인해 의료진들이 도서산간 지역을 기피하는 현상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도외시 하고 방만한 병원경영이나 강성하지도 못해본 소위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원의 비율은 5% 수준입니다. 요즘 공공병원 폐쇄로 골머리를 앓는다는 스웨덴의 경우 95%,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체코의 경우도 90%이며, 비교적 가난한 멕시코의 경우도 65%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의료체계가 비슷한 이웃나라 일본도 30% 수준이고, 심지어 의료민영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미국도 25%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필요한 것은 공공병원 폐원이 아니라 합리적인 정책논의를 통해 더 나은 조건과 더 나은 시설을 가진 공공병원의 확충이 아닐까요?

 저희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도 지난 4월 10일과 13일에 진주의료원으로 가서 그곳에 남아계신 환자분들과 직원들을 만나고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진주의료원과 부설 요양병원에 남은 환자분들께서는 폐업을 밀어붙이는 이 상황에서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서 한결같이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이 병원만큼 좋은 병원이 없다”

 정치논리에 의해 휘청거리는 병원에서도 환자들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의사, 간호사 및 여러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다행히 남아계신 분들에 대한 진료공백은 전혀 없었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 좋은 병원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읍소하셨습니다. 요양병원은 오히려 민간요양병원과 가격이 비등함에도 불구하고 냄새 하나 없이 청결하고 욕창 하나 안 생길 정도로 빈틈없이 관리하는 의료진들이 있는 이 병원을 떠나고 싶지 않으신 것입니다.

 상세하게 문진을 해서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올바른 처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경남도의회는 이렇게 읍소하는 당사자들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사라는 신령님의 목소리에 의해 진단을 내리고 거기에 끼워 맞춘 처방을 내리는 무당 굿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처방대로 공공병원을 폐쇄하고 공공병원에 이윤추구 행위를 권장하게 되면 공공병원도 민간병원과 무한경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 의료생태계는 공사부문 할 것 없이 먹고 먹히는 정글이 됩니다. 이런 정글 안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런 우리 모두의 문제를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4월 10일부터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들을 비롯해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소속 여러 회원들이 시작한 릴레이 단식농성이 오늘로서 6일 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환자가 있기에 존재하는 우리 의료인들도 이제는 우리의 몸을 던져서라도 공공의료원을 지키겠다는 절박한 의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홍준표 도지사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환자와 가족들,  진주의료원의 직원들, 그리고 여러 의료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고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공공병원은 누추하고 비루한 이들을 차별적으로 격리하기 위해 만들어둔 병원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모두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필요한 시설들을 갖추어 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의 병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병원의 문턱은 이렇게 낮은 것입니다. 재벌가 회장이든, 대통령이든, 시골의 필부필녀든, 노숙인이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든 상관없이 누구나 낮은 문턱을 지나 좋은 병원에 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지금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좋은 병원의 문을 닫게 하고, 우리의 병원에 우리가 갈 수 없도록 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2013년 4월 15일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