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이 더 고마운..어느 70대 노부부의 사랑

평화뉴스
  • 입력 2004.01.21 11: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소증과 중풍 앓는 상주 권경옥(71).우산월(72)씨 부부



◇ 정답게 웃고 있는 권경옥,우산월씨 부부

“제가 어디 사람 취급이나 받았나요. 이런 나를 40년이나 보살폈으니...”
성인 남자의 허리를 조금 넘을만큼의 작은 키. 태어날 때부터 왜소증을 앓아온 권씨 할아버지는 이런 자신을 평생 돌보며 같이 살아 준 할머니가 6년전에 중풍으로 앓아눕자, 이젠 자신이 보답할 때라며 늘 할머니 곁을 지키며 대소변을 받아내고 밥을 먹여주며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사진>“저 할망구가 똑똑했으면 내 같은 난쟁이하고 살았겠어요? 좀 모자래이 내하고 살지...” 권씨 부부는 모두 첫 결혼에 실패한 뒤 서른 즈음에 만나 4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왜소증을 앓아 온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놀림 때문에 그 유명한 상주 장날 한번 가보지 못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할머니를 만나 ‘잘 살아보자’는 꿈에 젖은 것도 잠시. 마을 공사를 하다 허리를 다쳐 그나마 왜소한 몸이 더 가누기 힘들어졌고, 20년이 넘도록 그 통증으로 힘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큰 불평없이 자신을 지켜주던 할머니가 6년전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혼자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중풍’이란 병으로 1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에 하루 종일 누워만 있다. 그 전까지 손바닥만한 텃밭에 고구마를 심어 장에 내다 팔아 푼돈이라도 마련하던 할머니. 이제는 할아버지 혼자 그 밭을 일구고 있다. 노부부가 먹을만큼의 고구마. 그리고 남의 묘를 관리해주고 받는 돈과 나라에서 주는 생계비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면 자꾸 짜증이 나요. 힘들어 미칠 것 같을 때가 많아 자꾸 술도 마시게 되고...”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앓아눕자, 매일 대소변을 받아내고 음식을 차려 할머니에게 먹여준다. 그 일이 6년째 되풀이되자 ‘솔직히 힘들다’는 말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어떨땐 힘들어 술기운에 기대 대소변을 받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야 평생 진 빚을 갚을 때라며 또 힘을 내고 정성을 다해 할머니의 수발을 들고 있다.
“사람 취급도 못받던 내를 여태 지켜줬으니 이제는 내가 보답이라도 좀 해야지. 내가 늦복이 터졌지.허허” 힘겨운 삶을 위로하듯, 할아버지는 몇 번이고 눈물을 훔치며 애처로운 눈길로 작은 방 천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했다.

“미안해 죽겠어요. 이 사람이 내한데 너무 잘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수발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늙은 아녀자의 대소변을 받는 것도, 불편한 몸으로 자신에게 밥을 차려오는 것도 한없이 안쓰럽고 미안할 뿐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세운 할머니는 “그래도 내 남편 밖에 없어요”
말하기가 너무 힘들지만, 곁에 앉은 할아버지가 들으라는 듯 힘주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 부부가 마을에 알려진 것은 상주 서문동성당 신자들의 각별한 사랑 때문이다. 서문동성당 신자들은 지난 5년동안 한주도 그르지 않고 화요일마다 이 곳을 찾아 할머니의 몸을 씻겨주거나 집을 청소해줬다. 이제는 할머니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서문동성당 이문자(62)씨는, “이들을 돕는 것보다 오히려 이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몸이 좀 안좋아서 그렇지 마음은 천사예요. 이렇게 착할 수가 없어요. 남들 같으면 벌써 도망갔을텐데 40년을 서로 의지하며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와요”. 노부부가 사는 집 둘레는 성당 신자들이 엮어준 비닐이 겨울 찬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닐을 감싸고 풀어주는 이들의 정성이 노부부의 사랑을 더 따뜻하게 보듬고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께 새해 소원을 물었다.
“솔직히, 돈 한번 써보고 싶어요. 평생 돈이 없어 고생했는데, 이 할망구하고 죽기전에 돈 좀 써보며 어디 좀 댕겨보고 싶어요. 그게 내 소원이래요”
방 안에 갇혀있는 할머니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할아버지.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이 겨울은 유난히 더 길고 따사로운 새봄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부족함이 더 고마운...

“서로 모자래이 같이 살지, 똑똑하면 같이 붙어살겠어요?”

부족함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는 더 어렵다. 그 부족함을 고마워하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사는 노부부. 작은 것에 상처받고 쉽게 헤어지고마는 요즘 젊은 부부의 삶이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성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3년전에 영세를 받은 이들의 세례명은 마리아와 요셉. 예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성가정의 모범’으로 불리고 있다.

상주시내에서 차로 20분정도 들어가는 겨울 농촌 상주시 청리면 율리1리. 떠나는 사람을 지켜보며 ‘찾아줘서 고맙다’고, ‘잘가라’며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
부족함에 더 고마워하며 또 한해를 보내는 70대 노부부. 인생의 긴 여정에서 새해 언제쯤 잠시라도 소박한 여행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글/사진 평화뉴스 들풀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