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학교는 사유물이 아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용락 칼럼 11 > "사립학교법 개정, 사학재단의 사사로운 이익에서 벗어나야"


대구에 있는 한 라디오 방송사에서 생방송 시사프로 진행을 맡은 지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겨우 문학 책 몇 권 읽은 것밖에 없어 세상을 이해하는 폭도 좁고 안목도 얕은 내가 많은 불특정 다수 청취자를 모시고 있는 시사프로 진행을 맡는 것은 과욕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방송국의 출연 요청을 굳이 거절하지 못한 것은 나에게는 비교적 낯선 영역이지만 한 번 해보고 싶다는 특유의 호기심이나 모험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방송을 개인의 모험심 때문에 감히 맡아 진행한다고 비난해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고 어느새 한 달여 가까이 되었다. 방송에 대한 소회는 나의 사적 영역이므로 이 자리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뛰어넘고, 방송하면서 직접 겪은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도 시사프로이니까 당연히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청취하고 또 방송으로 그 결과를 내보낸다. 이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대구 전교조 간부급 교사 한 분과 사학재단을 몇 개 소유하고 있고 현재도 한 사립고교 교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사학재단 측 인사 한 분을 모셨다. 한 시간 가량 방송 시간에 두 쪽은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방송은 1부 30분, 2부 30분으로 나눠 진행하는데 중간에 5분 뉴스가 끼어있다. 두 출연자는 5분 뉴스로 잠시 쉬는 시간 동안에 생방송 중의 격론에 대한 분을 채 삭히지 못한 듯 심한 말까지 해가면서 멱살 드잡이 직전까지 갔다. 나와 담당 PD가 겨우 뜯어말려 2부 진행에서는 두 사람의 좌석은 따로 떼어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 앉아 혹시 있을지 모를 방송사고(?)에 대비하면서 방송했다.

방송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잠시 차를 나누며 담소할 때, 교장이 말했다.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대구시 북구에 위치한)의 대지가 1500여 평인데 평당 땅값이 200만원이라 총 300억 원을 (학교에)넣어 놓고 내가 이 대접을 받아서 되겠느냐고 언성을 높인 끝에 "사립학교법이 통과되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학교 몇 개를 전부 폭파하겠다. 내가 애초 학교를 세울 때는 자유민주주의 교육하자고 세웠지, 반미 친북 하라고 학교를 세운 것은 아니다"라고 흥분하여 소리쳤다.

아마 이 분은 사립학교법이 통과되면 일선학교에서 반미 친북교육이 일어날 것으로 예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육 내용으로 반미 친북이 적절한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맡기겠다. 역사적으로 어떤 특정한 고비에서는 주체적이고 민족적인 교육이 수구 기득권자들의 눈에는 반미 친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은 부기하자.

그 분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럼 사학들이 이전에는 건학 이념대로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해 왔던가? 하는 점이다. 알다시피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국력이 형편없이 약했을 때나, 6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어 교육받은 많은 노동자들의 수요가 높아 질 때 정부에서 학교 세울 돈이 없어 민간인 부자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학교가 이른바 사학의 대부분이다.

이들이 부패한 자유당 정권이나 가혹한 군사독재, 파시스트 정권 아래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해 왔는지 국민들은 다 안다. 어떤 사학이 독재정권의 억압아래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고난을 겪었다는 소리는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직 들어 본 바가 없다. 독재권력에 영합하고, 더러는 앞장서서 독재 이념을 전파하면서 이득을 얻고 학교를 키우고 학교 살림을 불려 재단관계자들의 사욕을 채웠으면 채웠지, 이들이 숭고한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고초를 겪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발언을 쉽게 할 정도로 학교를 개인의 사적 소유물로 생각해온 사람이 수십 년간 일선 교육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개인이 세운 사학이라 하더라도 교육시설은 사회의 공공재이다. 그런데도 마치 사유물처럼 학교를 폭파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독선주의와 경솔의 극치이자 전혀 비교육적인 발언이다.

물론 우리교육 발전에 사학의 기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국공립 학교 못지 않게 컸다. 우리가 금방이라도 눈을 돌려 우리 주변에 있는 학교를 보면 초등학교를 빼고는 사립학교가 공립보다 그 수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도 있지만 국가가 어렵던 시절 교육인재발굴의 가능성에 주목해 훌륭한 건학이념의 기치를 들고, 가난한 사재를 넣어 사립학교를 세워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많은 인재를 배출한 것은 사학재단의 공로이며 마땅히 평가 받아야할 대목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있다. 교육내용이나 제도도 변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해야된다. 그래야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제대로 길러 낼 수 있다. 이 원칙은 국내 어떤 사학의 건학 이념과도 부합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학재단들이 사학법개정에 이렇게 까지 날카롭게 대각을 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언론을 보니 사립학교법이 통과될 경우 전국 중·고·대학 1742개의 사학이 학교 폐쇄를 의결했다(동아일보 2004. 11. 6)고 하고, 대구지역 사학법인 재단이사장, 교장, 대학관계자 1천여명이 항의시위를 위해 전세버스 20대를 빌려 서울행을 할 것이라고(대구 매일신문 2004. 11. 6) 보도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학교를 폐쇄할 수 있을지 나는 진짜 궁금하다.

6일 오후 한 백일장 행사장에서 만난 친구는 (그는 대구시내 한 사립여고에 근무하고 있다) 이날 아침 교무회의 시간에 교장과 주임선생님들이 서울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니 일반 선생님들도 가실 분은 신청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고 전했다.

사학법 개폐논란이 한창이던 며칠 전 라디오 뉴스에서 서울의 어느 사립학교에서는 서울 명문대 출신에게는 2-3천만 원, 지방 비명문대 출신에게는 1억 원의 기부금을 받고 교사로 채용한 학교 관계자와 브로커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뉴스를 듣는 순간 지방 비명문대 출신인 나는 사건의 본질인 돈 받고 교사를 채용한 불법적인 사실보다는, 그것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비명문대 출신에게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받았다는, 불법채용에서도 철저하게 학벌이 적용되는 이 지독한 학벌차별 사회에 대해 갑자기 열이 뻑 올랐다.

물론 이렇게 돈 받고 교사를 채용하는 학교는 많은 사학 중의 극히 소수이겠지만(문제는 국민들은 이런 파렴치한 학교가 극히 소수라고 믿지 않는데 있다), 사학재단은 국민들에게 이런 비리혐의를 받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사학법을 고치면 된다. 그게 이번 사학법 개정안에 반영되어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사학법안 개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들에게 이런 불신을 받지 않기 의해서라도 사학법은 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정치권과 국민 일각으로부터는 사학의 한계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고 비판받고 있는 게 현재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제출해 논란이 되고 있는 사립학교법개정안이다. 흔히 교육은 백년의 큰 계획이라고 한다. 바뀐 세계적 환경, 국내 환경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 훌륭하고 유능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법안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단 사학법 뿐 아니라 국내 모든 법안에 해당되는 원칙이다. 오랫동안 학교를 경영해온 경륜 있는 사학관계자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다만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본질을 제대로 못 보고 있을 뿐이다.

김용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시인. [대구사회비평] 발행인)
* 195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용락 시인은, 지난 '8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푸른별>, <기자치소리를 듣고 싶다>, <민족문학논쟁사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내며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일보] 논설위원과 [대구참여연대] 편집위원장,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계간 <대구사회비평>을 펴내며 CBS대구방송 <라디오 세상읽기>를 매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