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의 생존 이유, 그러나...”
- 매일신문 최정암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4.11.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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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언론이 살아야 대구경북이 산다”
“그러나...권력과 광고주에 무뎌지는 비판, 가진 자를 대변하는 논조, 진보에 대한 편견...”


몇년전 금융업무를 담당할 때다.
광주은행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 당시 광주은행은 금융권 통폐합 열풍이 휩쓸면서 우리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될 위기에 놓여 있어 지역민과 은행 직원들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독자 생존을 하는 것과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돼 결정권을 상실하는 것은 종사자 입장에선 엄밀히 말하면 독립국가 국민이냐, 식민지 국가 국민이냐 정도 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거기다 필경 구조조정이 따를 것이고 보면 은행 직원들의 고민을 이해할 만 했다.

휴식 시간에 은행 노조 간부에게 물었다.
"지역민들도 광주은행의 퇴출을 원치 않을 것인데 왜 지역 여론을 활용하지 않습니까".

그 간부 왈. "광주.전남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많지만 독자 수가 워낙 적어 여론 형성이 안됩니다. 그렇다고 시장을 장악한 전국지들이 실태를 정확히 보도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이 자리에서 대구은행이 전국 최고 은행으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설명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구은행도 은행 인수합병 거론 때마다 대상은행으로 떠오를 정도로 경영상황이 안좋았다. 대구지역 대형 건설회사들이 줄도산 하고 지역 대표업종인 섬유산업이 침체되면서 은행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대구은행은 위기 돌파를 위해 증자를 시도했다. 당시 이 은행 주가는 3천원대였다. 경제 논리대로 하면 증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역언론이 앞장 서 대구은행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 형성에 나섰다.
지역은행이니 살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구경북지역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대구에 본점이 있는 은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환위기 직후 대구에 있던 대동은행도 국민은행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대구은행까지 합병된다면 지역경제는 엄청난 타격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신문에 연일 대구은행 살리기가 보도되면서 대구은행은 두차례나 증자에 성공했다. 지역민들은 증시에서 3천원이면 살 수 있는 주식을 액면가 5천원에 기꺼이 인수했다.
요즘 대구은행 임직원 대부분은 만약 대구도 광주처럼 전국지가 시장을 장악했다면 여론 형성이 안돼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지역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지역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사실 전국지들은 지역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도하기가 불가능하다. 해당 지역판이 있기는 하지만 1개면 정도에 불과해 지역 현안을 지속.심층 보도할 수가 없다. 여기다 서울의 논리로 전국을 관찰하기 때문에 '지방민'의 이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방분권국민운동이 지난해 11월18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한 '지방살리기 3대 특별법 제정촉구를 위한 국민대회' 때 전국지나 전국방송은 한줄도 비추지 않았지만 다음날 원로학자 몇십명이 발표한 '행정수도이전 반대' 성명은 엄청 크게 취급해 지방분권국민운동 관계자들의 분노를 산 적이 있다.

이런 일은 소위 전국언론들이 서울의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이다. 지역민들이 지역언론을 외면하면 이같은 상황은 가속화 된다.

비단 광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전국지가 신문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대구와 부산에서만 해당 지역신문이 1위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거대 자본력을 앞세운 전국지들의 지역 공략이 강화되고 있어 이 상태로 가면 대구와 부산도 안심할 수 없다.

물론 지역민들이 지역언론을 사랑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권력과 광고주에 대해 무뎌지는 비판의 칼날, 재미없는 편집, 서민과 민중의 아픔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가진 자를 대변하는 듯한 논조, 진보 진영에 대한 편견 등은 갈수록 독자를 멀어지게 하는 요인들이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위해 과감히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회사의 생존 논리에 순응하는 바람에 한낱 월급쟁이로 전락해 버린 것도 독자 감소의 주요인이다.
이런 암세포 제거를 위해 시민단체나 독자들이 끊임없는 비판과 감시를 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지역언론을 사랑하기 위한 물결도 일게 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광주은행 노조간부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별로 읽을 게 없다고 지역신문을 외면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후회됩니다".
대구경북 언론이 바로 서지 못하면 대구경북의 미래도 없다는 것이 15년 넘긴 기자 생활의 결론이다.

매일신문 최정암 기자(노조위원장.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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