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 자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4.11.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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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 쓰레기 정책, 5년 전이나 지금이나...”


1999년 어느 날 모 기관지에 게재한 원고에서...

대구 시민을 붙잡고 쓰레기 매립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태반이 잘 모른다고 한다.
10년 전에 조성된 매립장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정도니 수 년 전에 조성된 소각장 위치는 두말할 나위 없다. 하루에 5톤 트럭으로 500여대, 2천5백여 톤의 쓰레기를 쏟아 내고도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모든 시민이 너무 무관심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무관심이 수천억 원의 예산이 왔다 갔다 하는 대구시의 쓰레기 정책을 몇몇 관계자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 문제처럼 나의 문제이면서 남의 문제인 것이 또 있을까?
방천리에 위치한 대구광역시 위생매립장은 원래 90년 4월부터 내년(2000년) 4월까지 10년 동안 매립하는 것을 목표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쓰레기 정책이 변하고 쓰레기 처리 환경이 바뀜에 따라 매립양이 현저하게 줄었다. 그래서 매립장에는 현재까지 982톤 정도만 매립되어 있어 앞으로 518톤, 기간으로는 5년 정도를 더 매립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5년 뒤(2005년)에 발생하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다사, 성서, 방천리 주민 3천여 명이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대구시가 일방적으로 방천리 매립장의 매립기간을 5년간 연장함과 동시에 현 매립장부지에 24만평을 확장하려 하자 주민들이 뒤늦게 알고 이를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가진 것이다. 환경단체에서 참석해 발언을 해 달라는 주민의 요청이 있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집회당일 집회장소인 와룡공원으로 가면서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매립장 반대집회이니 만큼 대구시 관계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을 것이고, 따라서 많은 공무원들이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무원의 모습은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다른 지역처럼 대구시가 이 집회를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정해진 각본에 따라 매립장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각본은 즉, 원래 계획대로라면 방천리 매립장은 내년 4월 매립기간이 완료되기 때문에 대구시는 새로운 매립장을 조성을 구체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구시가 이러한 추진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한 지역 주민과 시민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대구시는 현 매립장에다가 5년간 더 매립을 하고, 더구나 같은 장소에 매립장을 확장하겠다고 한다. 내년이면 매립이 완료되는 줄 알고 있었던 주민들은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후 우려했던 일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고, 분노한 주민들은 결국 단체행동을 통해서 주민들의 의사를 전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새로운 입지를 선정하여 조성사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5년 뒤에는 전 대구시민이 쓰레기 대란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시기적 절박감을 이용하여 대구시는 매립장은 대구지역 어딘가에는 지워져야 된다는 당위성을 내세워 여론을 조성하면서 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로 내 몬다.

외롭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주민들의 투쟁은 이렇게 시작이 되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배출하는 쓰레기의 처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매립장 확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전가시키고자 하는 대구시의 각본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역주민들은 지치고, 이 틈을 타서 대구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매립장 확장을 추진한다. 동시에 지역주민들을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몰며, 너희들은 냄새나는 매립장 주변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공권력에 의지하여 인식시키는 각본...

그리고, 2004년 10월 매립장 쓰레기 반입사태...

5년 전에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방천리 매립장 주변지역에 사시는 서재지역 주민들이 대구시의 매립장 확장 계획에 반대하며 쓰레기 반입을 중단하고 나선 것이다. 대구시는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하여 공권력을 동원하여 주민들을 강제해산시키고 지도부를 비롯한 다수의 주민을 연행시켰다. 대구시의 예상과는 달리 이에 격분한 주민들은 자녀등교를 거부하면서까지 매립장 입구를 막고 나서는 최강수로 맞섰다.

매립 중단 8일 만에 비대위와 대구시는 합의문을 작성하고 쓰레기 반입 중단 사태는 종결되었다. 결국 대구시 각본의 전제는 250만 대구시민의 불편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지난 5년 동안 대구시는 이미 마련한 각본을 착실하게 실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은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대구사회는 그들을 지역이기주의자로 인식하게끔 길들여졌다.

그러나 쓰레기 반입 중단 사태는 아이러니하게 시민들의 의식을 바꾸어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시민이 불편하지 나는 불편하지 않다고 대구시장조차 외면했던 대구시민이 기꺼이 지역 주민의 고통에 함께 하고자 했던 놀라운 공동체 의식의 발로다.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이야말로 대구시의 쓰레기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결국 쓰레기 대란이 쓰레기 정책의 근간을 뒤 흔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구시정부의 선택이다. 우리의 기대는 이 시점에 이르러 항상 좌절되어 왔다. 제3의 길을 주창한 앤서니 기든스는 “보수주의는 언제나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신중하고 실용적인 접근을 의미했다. 전통의 지속이 보수주의 이념의 핵심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지방 권력의 구심에서 한번도 물러나지 않았던 보수적인 지방정부,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고 여하한 이유를 제외하고는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던 대구시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신중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한 쓰레기 정책은 무엇일까? 대구시정부로 하여금 전례가 없었던 쓰레기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지역이기주의와 님비현상, 이 두 가지 말은 혐오시설이 자기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기피한다는 현상적인 면에서는 매우 유사하지만, 어떤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가에 따라서 매우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 이기주의라는 말은 사회의 해악요소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자기 뒷마당에 냄새나는 쓰레기매립장이 생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에서 님비현상은 오히려 국민의 당연한 권리(환경권)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계획추진론자들은 매립장이 어디엔가는 건설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워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라고 몰아쳐 왔다. 그러나 이것은 독성폐기물을 후진국에 몰래 버리다 들킨 선진국이 이것은 지구상의 어딘가에는 처리되어야 한다. 반대하는 후진국 너희들은 이기주의자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매립장에 대한 님비현상은 행정기관이 매립장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경우 님비현상은 지역이기주의로 매도되는 것이 일쑤다. 님비현상은 행정 기관 스스로가 시민의 알권리, 헌법상의 환경권을 무시하고 관료적 비밀행정을 지속하는 한 극복될 수 없으며 이것은 오히려 관료 이기주의이다. 님비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전제는 행정기관과 계획을 추진하는 세력의 민주적 과정에 대한 성숙이다.

결론적으로 방천리 매립장 확장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로 몰뿐,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구시 스스로의 자성과 노력이 없는 한 대구시의 매립장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대구시의 획기적인 쓰레기정책 전환 없이는 향후 쓰레기 문제로 인한 엄청난 고통을 250만 모든 시민이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문창식(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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