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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딛고 사랑의 공연 기획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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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지체1급 장애인 서상복(46)씨...[대구예술공연봉사단] 이끌며 공연활동
오는 24일 동구청에서 세번째 '독거노인 칠순잔치' 마련...일일장남.장녀도 맺어


전신마비 1급 장애에도 불구하고 [대구예술공연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상복(46.대구 동구 미곡동)씨.
전신마비 1급 장애에도 불구하고 [대구예술공연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상복(46.대구 동구 미곡동)씨.

"전신마비로 꼼짝도 할 수 없는 저를 어머니께서는 20년 넘게 돌보셨어요. 하지만 칠순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서 항상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전신마비 1급 장애인 서상복(46.대구 동구 미곡동)씨가 해마다 '독거노인 칠순잔치'를 여는 이유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전신을 쓸 수 없게 된 서씨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어머니의 도움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먹는 것부터 씻는 것, 옷 입는 것은 물론 돌아눕는 것조차 서씨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어머니는 이런 서씨의 수발은 물론 사고 이후 예민해진 성격까지 모두 받아내야 했다.

"사고가 나기 전에도 말썽만 피웠는데, 사고가 나서는 더욱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서씨는 지난 2000년 뒤늦게나마 어머니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지역에 혼자 사는 어려운 노인들을 모아 '독거노인 칠순잔치'를 열었고, 그것이 올해로 세 번째 계속되고 있다. 특히, 홀로 칠순을 맞는 노인들이 이날 하루만큼은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일장남.장녀, 일일손자.손녀도 맺어준다.

서씨는 지난 '97년부터 지역의 현직 예술공연가들로 이뤄진 [대구예술공연봉사단]을 구성해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록 장애인의 몸이지만 공연식순과 음식 마련, 장소 섭외, 인력배치 등 모든 공연의 총지휘를 담당하고 있다.

머리맡에 있는 전화기와 컴퓨터를 이용해 공연 전에 모든 준비를 한 뒤, 공연 당일에는 직접 현장으로 나간다. 사회, 춤, 노래, 악기연주 등 공연예술가들의 움직임도 전부 서씨의 지휘 아래 이뤄진다. 이런 활동 때문인지 서씨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그가 휠체어조차도 혼자 움직일 수 없는 1급 장애인이란 사실을 쉽게 믿지 않는다.

하지만 서씨가 처음부터 이렇게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79년 21살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순식간에 장애인이 된 그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8년 동안 잠과 공상으로 집안에서 세월을 보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잠만 자거나, '다시 건강해진다면 이렇게 삶을 바꿔보겠다'는 식의 헛된 공상만 계속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바람에 '건강해진다면'이라는 이뤄지지 않는 조건이 붙어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부터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가정을 이룬 서상복씨와 아내 김서희(48)씨. 서씨의 인터넷 강의가 한창이다.
지난해 가정을 이룬 서상복씨와 아내 김서희(48)씨. 서씨의 인터넷 강의가 한창이다.
우연히 무선통신(HAM)에 관심을 갖게 된 서씨는 대학생 동아리와 교류하면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장애인이 활동하기에 현실에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 '91년 [한국장애인협회]를 만들어 장애인 차량봉사나 가사보조봉사, 의료지원 등을 시작했고 이어 '93년에는 장애인의 집에 찾아가서 도서대여를 해주는 [사랑의 문고]를 만들었다.

또, '95년에는 장애인의 고충을 상담하는 [사랑의 전화]도 개설했다. 현재 서씨가 단장으로 있는 [대구예술공연봉사단]은 '97년에 만들어졌는데, 장애인시설은 물론 양로원과 재활원, 교도소 등 공연 요청이 들어오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언론에 소개가 되면서 공연요청은 점점 늘고 있지만 공연을 도와줄 자원봉사 인력을 구하기는 갈수록 힘이 든다. 게다가 후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형편이라 서씨는 그동안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 활동해왔다. 칠순잔치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옷 한벌 정도 겨우 해드릴 수 있는 형편이다.

오는 24일 열리는 독거노인 칠순잔치 장소를 구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동구청 지하강당 이용을 허락해주지 않아서 직접 구청까지 찾아가 구청장을 만난 끝에 허락을 받았다. 또, 지역의 독거노인을 모시기 위해 동사무소에 수소문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파악이 안 돼있어 복지관에 다시 문의를 해야했다.

"그동안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느낀 거지만 시민들한테 행정이 가장 닫혀있다는데 새삼 놀라곤 합니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행정기관에서 조금만 배려를 해줬으면 해요."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덕분인지 지난해 서씨는 꿈에 그리던 가정을 이뤘다. 아내 김서희(48)씨가 지금은 서씨의 손발이 돼 모든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저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요즘 서씨는 컴퓨터를 할 줄 모르는 아내에게 틈틈이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데,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장애는 평생 가지고 가야하는 겁니다. 몸이 이렇다고 해서 '나는 안 돼'라며 포기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해야해요. 사람이 사는 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예술공연봉사단 983-0005 / 983-0061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pnsun@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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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화뉴스에 2004년 11월 19일 보도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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