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연에 기쁨과 이상을 실어..."

평화뉴스
  • 입력 2004.11.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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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째 방패연 만드는 황의습(49)씨..."연은 꿈, 얼레는 현실, 실은 실천..."
외국서적까지 번역하며 방패연의 우수성 연구..."기술 이어갈 사람 없어 고민 커"


대구경북에서 20년 넘게 방패연을 만들고 있는 남구 대명5동 황의습(49)씨.
대구경북에서 20년 넘게 방패연을 만들고 있는 남구 대명5동 황의습(49)씨.


"방패연은 세계 최고의 연입니다"
대구경북 유일의 방패연 기능보유자 황의습(49.남구 대명5동)씨.
20년 넘게 방패연 연구에 몰두한 황씨에게 방패연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물이다.

"바람이 없어도 하늘에 잘 뜨고, 꼬리가 없어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미 가장 강한 싸움연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20여종의 방패연을 만들어 연락망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황씨는 "사람의 힘과 바람의 세기가 조화롭게 하나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면서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꽃 피울 줄 아는 자세를 연에서 배운다"고 말한다.
"연은 '꿈', 얼레는 '현실', 그것을 이어주는 실은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띄우는 연은 단순한 전통연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전하는 기쁨이고, 자유자재로 활약하고 싶은 나의 이상입니다."

되도록 좋은 연을 만들기 위해 황씨는 직접 대나무 고장인 단양까지 가서 마디가 길고 해풍에 견뎌낸 대나무를 가져온다. 얼레 또한 무겁고 정교하게 만든 것일수록 바람을 잘 견딜 수 있어 장인의 손에 맡긴다.

황씨는 방패연뿐 아니라 다른 전통문화에도 애정이 각별하다. 성씨별 전통가훈집을 14년에 걸쳐 연구해 지난 1999년에 발간했고, 초.중.고등학교와 기업체, 단체 등에 강연을 나가기도 한다. 또, 대학교에서 전통문화 수업도 맡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투 틀고 갓 쓴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렀다.

젊은 시절 왕성한 혈기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황씨는 지난 1979년 일본의 철학가이자 문학가인 이케다 다이사쿠가 쓴 '인간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감동 받아 인생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황씨는 "이 일본인의 사상과 철학에 감명 받아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있다"면서 "'국제화가 되는 21세기에 그 나라만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과 '한국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최고의 은인'이라는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평소에 관심이 있던 방패연의 전통을 잇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1981년 본격적으로 방패연을 연구해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노유상씨에게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와 함께 실을 감는 방향과 대나무를 휘게 만드는 이유, 바람의 세기와 부력의 원리 등 방패연이 하늘에 날 수 있는 원리를 혼자서 다시 연구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연에 대한 연구 책자가 없어 다른 나라의 전문서적을 사비를 들여 번역해 공부했다. 공군부대까지 찾아가 비행기가 나는 원리와 바람의 속력까지도 물어서 공부해 올 정도였는데, 그 덕분인지 이제는 60년 동안 연을 만든 전문가도 방패연만은 황씨에게 배우러온다.

그러나 황씨는 이 연을 결코 상업용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팔기 위해 만들면 더 이상 전통연의 가치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황씨의 생각이다. 그 대신 추석이나 단오 등 명절 때 연 띄우기 행사를 열기도 하고, 일년에 네 번 전시회를 열기도 하는데, 이 때 모인 돈은 전부 청소년 선도 사업으로 쓰인다.

황씨는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데, "다름이 철학"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무분별한 외국문화에 노출돼 있고 학교성적으로 평가되는 현실에서 청소년 각자가 서로 다른 자기만의 가치를 깨닫고 세상을 헤쳐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런 평소의 생각을 전통문화와 연결해 보호관찰소에 꾸준히 강연을 하고 있다. 또, 대구교도소와 안동, 청송 등 5개 교도소에도 10년 넘게 강연을 나가고 있다.

황씨를 만난 재소자들의 편지가 하루에도 몇 통씩 배달될 정도인데, 거기에 일일이 답장해주는 것도 하루일과에 포함된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험한 길을 가는 이들에게 유달리 애착이 간다"면서 몇 년 전부터는 갈 데도 없고,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 출소자의 재활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황씨의 재산은 사글세 아파트가 전부다. 게다가 일주일에 두 번은 청소년 유해업소에 야간단속활동을 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을 샌다. 하지만 아이들도 바르게 자라고 아내도 힘을 줘 항상 기쁘고 고맙다.

"행복의 척도는 돈이 아닙니다. 내가 연을 날리는 행동이, 남에게 전하는 격려의 말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고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이런 황씨에게 최근 고민이 있다. 전통연을 계승할 사람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연을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대구에서 아무도 전통연을 구경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더구나 일반인뿐 아니라 언론도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 때만 전통연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대로 소리 없이 사라질까봐 가슴 한 곳에 늘 걱정이 남아있어요."

하지만 "초조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면서 이내 연 만들기에 열중하는 황씨.
"하늘에 둥실 떠있는 연을 보고 기뻐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시름이 싹 가신다"면서 자신의 소망을 방패연 귀퉁이에 단단히 맨다.

글.사진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pnsun@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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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화뉴스에 2004년 11월 10일 보도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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