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백지화…박근혜, 또 대선공약 깨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 입력 2016.06.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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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의 정치인'이라던 박근혜…MB는 사과라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공약을 파기했다. 그런데 사과 한 마디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하면서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것도 없다. 21일 신공항 관련 용역이 발표되기 1시간 전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했음에도 공약 파기에 관한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애매모호한 화법을 동원해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어 PK(부산.경남) 지역과 TK(대구.경북) 지역을 4년 가까이 극심한 갈등으로 몰아 넣은 것 치고는 허탈한 반응이다.

'원칙의 정치인'이라던 박근혜, 공약 파기 해놓고 침묵하나?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명박 당시 후보는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걸고 영남권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동남권 신공항이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점에서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3월 30일, 밀양과 가덕도를 두고 싸우는 TK와 PK 정서의 과열을 우려하며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 결국 신공항을 백지화했다. 그리고 4월 1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날 나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입장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당시 여권의 유력 주자였던 박 대통령은 31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 취임식 참석차 대구를 찾았다. 수많은 기자들이 그의 입을 주목해 따라 나섰다. 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을 향해 "이번 결정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며 "앞으로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향후 선거 공약으로 이를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제 입장은 이것은(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선거 공약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대통령 입장 발표 전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강단'은 박 대통령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음날인 4월 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돼 매우 안타깝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영남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전 대통령은 솔직했다. 그는 "후보 때 공약한 것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면서도 "그러나 이를 지키는 것이 국익에 반할 때 '계획 변경'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대통령이 백지화를 했지만 백지화가 아니었다. 차기 유력 대권주자가 선거 공약을 예고했는데, 백지화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공약집을 발표한다. 그런데 여기에 꼼수가 숨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중앙 핵심 공약 201개에 신공항 건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당시 공약 설계에 참여한 강석훈 의원(현 청와대 경제수석)은 "후보가 동남권 신공항을 반드시 실현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공약집에 없어도 그것은 공약"이라고 별도로 설명해야 했다. 

핵심 공약에서 빠진 대신 신공항 건설은 공약집 123쪽 지역 공약편에 들어갔다. '100% 국민행복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지역균형발전'의 8대 핵심정책 5번째 항목으로 '신공항 건설'을 넣었다. 다만 입지 관련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TK와 PK는 혼란에 빠졌다. 이들은 시도당별로 스스로에게 유리한 공약집을 만들었다. 새누리당 부산선거대책위원회는 2012년 12월 10일 "박 후보의 대선 공약집에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들어갔으며 이는 김해공항의 가덕 이전을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는 내용의 공약집을 냈다. 

반면 새누리당 대구선거대책위원회는 다음날인 11일 정책공약 설명회를 열면서 '신공항 건설'을 대구 공약 1번으로 올려놓고 "지역민들의 열화와 같은 희망이 공약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선대위와 중앙당은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방치했다. 대선 승리만을 위한, 정치적 이득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

결국 21일, 정부는 신공항 입지 관련 용역을 발표하며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김해공항 확장은 '신공항'과 의미 자체가 다르다. 

남은 것은 무엇일까. 2012년 대선 이후 약 4년간 TK와 PK의 극심한 대립과 분열이다. 2011년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됐던 것을 살려낸 것은 박 대통령이다. 야당도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2012년 대선에서 집권은 박 대통령이 했다. 그 이후, 영남 민심은 초토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공항 유치전을 위해 들인 그들의 시간과 비용에 대해 박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신공항 이슈를 방치하고 정치적 이득만을 취한 결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 파기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는 그나마 솔직했다. '원칙의 정치인',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별칭으로 한평생 정치를 해 왔던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내놓은 공약 파기와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 유발에 대해 여전히 특유의 모르쇠로 일관하게 될 것인가?

[프레시안] 2016.6.21 (독립언론네트워크 / 프레시안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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