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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퍼주는 행복, 그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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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 보기 15>
...“2005년 새해, 힘들어도 서로 나누며 살아요”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롭게 한해의 설계를 세워본다.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의 그림을 또 한번 그리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연말이 되면 허망함이 커지고 한 해동안 그럴듯한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한 자신이 안쓰럽고 딱하기도 해 다시 한번 자책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다시한번 조그마한 삶의 법칙이라도 만들어 계획도 세우면서, 세상 살아가는 힘을 다시 얻곤 한다. 근데 나이가 들면서 그 삶의 원칙이, 앞서 산 부모의 삶에서 찾아지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싶다.

내 어릴적 설날이 되면 엄마는 항상 분주했다.
설날 전날까지 시장판에서 장사하느라고 바빴지만, 설날 아침에는 차례상에 음식이 항시 정갈하고 푸짐하게 놓여져 있었다.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한 보자기 가득 음식을 담아주었다. 그리곤, 집 안팎에 음식을 두둑히 놔뒀다. 퍼주기 쉽도록...

엄마는 엄마가 집에 있는 한 집에 온 누구든지 두둑히 먹여 보냈다.
특히 끼니 때 온 손님에게는 꼭 밥을 먹여 보냈으며, 심지어 불청객인 거지에게도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한 깡통 가득 음식을 담아줬다. 밥먹다가 밥한덩이 떨어뜨리면 음식 아껴먹지 않는다고 호되게 혼났지만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만큼은 아끼질 않았다. 먹는데 정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사실 계란 1개, 김 한쪽이 귀한 때였고, 흰쌀밥에 고깃국이 최고의 밥상이었던 시기였으니만큼 먹는 것 이상의 보시는 없었던 때였다.

우리 집은 항상 드나드는 사람으로 벅적거리고, 엄마는 항시 뒷처리에 바빴지만 엄마는 사람사는데는 사람이 모여야 한다면서 “주인은 그런거야...”고 말했다. “집 주인은 내 지붕안에 들어 온 사람을 절대 굶기면 안돼”라는 엄마 나름의 신념을 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는 사람이 기분 좋으라고 대문앞 먼저 쓸었고, 댓돌 위의 신발을 가지런히 해놓으면서 들어오는 사람의 신발놓을 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동지면 동지라고, 설이면 설이라고, 김장이면 김장했다고 등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골목 위아랫집에 음식을 나눠주는 엄마를 보고, 나와 동생은 쫒아다니면서 “그만줘~ 그만줘~” 하면서 엄마의 바지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엄만 “먹는 것 옹색하게 굴면 못써”하면서 우릴 떨구고 다시 이웃의 문을 두드리곤 하였다. 당시는 양말이 헤지면 전구놓고 꿰매신던 시절이고, 석유난로 하나놓고 밥이며 모든 음식을 순서대로 해야하는 그 시절에 엄마의 수고로움은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어리석기까지 해보였다.

그 안해도 될 구진 일을 자청하는 엄마는 바보 같았다.
돈들고 고생하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벌어서, 있는 것 가지고 남들처럼 재면서 살지도 못하는 엄마, 자기를 위해 밍크목도리 한번 사고 싶다고 벼르다가 결국 우리 대학가서야 밍크목도리를 사놓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 엄마, 그러나 그것은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삶의 원칙일거라는 생각이 이제사 든다...

엄마는 가난에 찌들려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상경해 남의 집살이도 하셨고 일찍 남편을 여의여 싸움 잘하고 욕 잘하는 분이었지만, 엄만 공것바라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다. 엄만 목소리도 크질 않았고 과시할 힘도 없는 분이었다. 근데 그 어리숙한 엄마를 통해 난 지금에 와서야 삶의 지혜를 배운다. 엄만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내 손을 잡고 우셨었다. 그리곤 “믿는다”는 말밖에 하시질 않았다. 난 엄마의 눈물앞에서 내가 잘했다고 우길방법이 없었다.

엄만 그 흔한 초등학교도 못나왔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도 하두 윤나는 까만구두가 신고 싶어 엄마에게 졸라 추석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곤 다음 날 학교가서 자랑을 했더니 친구들이 보고 뿔뿔히 흩어진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집에와 엄마에게 하니 엄마는 “그 아이들이 집에가서 얼마나 볶아댔겠니” 하면서 당신이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때 운동화가 없어 챙피해 학교를 못가고 산에가 숨어있었단 얘길 했다. 형편이 어려운 시절에 다른 아이들의 심정을 몰랐는데 일깨워 준 것이었다.

산다는 것이 남처럼 산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살면서” 사람들 속에서 삶에 대한 기쁨을 느꼈었다. 엄마가 100포기 넘은 김장을 해서 장독가득히 담아놓고 오는 사람들에게 퍼주는 것은 엄마의 시각에선 일이라기보다는 행복이었던 것 같다.

어렵고 힘든생활의 소용돌이에 들어와있다.
살기가 팍팍해지는 요즘이다. 살기가 어려운 것은 현실적인 삶의 무게보다도 오히려 서로가 사랑하며 위로하고 서로가 살아있어야 할 존재임을 알아주고 배려해주는 장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서로간에 힘들게 살더라도 서로를 인정해주고 나누는 법칙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가르쳐 준 주인됨을 가르쳐주고,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가르쳐주고 싶다.
그럴듯한 내집에서 나만의 세상을 맘편히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내안에 내품에 들어온 사람을 살피고 챙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알며, 잘 관리하고 집 구석구석에 그리고 사람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존재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선 물론 나부터 실천해야 될거다.

김재경(방송인. 사회학 박사)
* 지난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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