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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참아내며 함께 만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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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는 파괴적인 여성 억압의 실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덧씌우지는 않는가”
“성매매 동기가 처절해야만, 목숨 걸고 탈출을 시도해야만 성매매 피해자인가?”


'성매매 없는 사회를 위한 대구시민연대'는 어제 오후 동성로 중심가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탈성매매를 지원하는 현장 활동가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주변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동안, 캠페인 참가자와 지나는 사람들의 눈과 귀는 모두 풍물놀이, 노래, 댄스, 오카리나 연주, 퍼포먼스 공연에 쏠려 있었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광장에서 풍물놀이의 꽹과리는 목이 쉴 듯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퍼포먼스는 숨죽이며 온 몸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그 자리의 사람들, 악기들, 몸짓들, 소리들, 느낌들, 글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향해 외치고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도, 그녀들도, 당신들도 아닌 우리들을 향해서였다. 성매매와 피해자 여성들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사는 다른 이야기’이고, 성구매를 하면서도 그 속에 있는 여성을 사람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그 여성들은 왜 성매매를 선택했을까?’며 완곡한 어법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우리들 스스로를 향해서였다.

1970년대 중반 미국 허스트 신문재벌의 상속녀 패트리샤 허스트는 한 테러집단에 의해 납치되었고, 납치자들과 함께 은행강도를 하는 등 범죄행위를 하던 그녀는 2년 만에 체포되었다. 자본가를 증오하며 자신을 납치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총을 든 그녀의 모습과 행적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으며, 미국사회는 그녀가 그 테러집단과 공범일 뿐만 아니라 배은망덕하고 반항적이라며 격분하였다.

그러나 여성학자 캐슬린 배리는 패트리샤의 경험을 여성 성노예화의 원형이라고 단언하고, 사회가 얼마나 그녀를 이해하지 않으려 했는지 분명하게 지적한다. 납치, 구타, 고문, 강간을 당한 피해자였지만, 그 결과로 범하게 된 범죄로 인해 더 이상 납치 피해자가 아니라 범죄자로 되어버린 그녀에게 사람들은 ‘왜 죽음을 무릅쓰고-혹은 죽음으로써- 그 집단을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그녀는 포주가 아니라 좌익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되었고, 성매매자가 아니라 강도가 되었지만, 그녀를 파괴시킨 길들이기 과정은 잘 훈련된 노예 중개인과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과 너무나 유사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피해자가 된 원인이 그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성매매를 하게 된 동기가 처절해야만, 성매매 과정에서 상상도 못할 가혹한 대접을 받아야만, 목숨을 담보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해야만 우리 사회에서 그 여성이 피해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

여성들의 몸을 팔아 자신을 위한 부를 쌓는 사람들과 여성들을 물건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에 앞서, 사회가 제시한 방식으로 성매매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을 분류하고 비판하기에 더 열중한다면 우리는 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덧씌우게 될지도 모른다.

성매매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파괴적인 여성억압의 실례이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인권을 침해당하고 성적으로 학대받고 있다면, 남은 우리들 중 아무도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없다. 우리는 결코 피해자 여성들과 격리되어 있지 않다.

장거리달리기를 잘 하기 위한 방법 중에 스피드 훈련이 있다.
평소보다 속도를 몇 배로 높여서 일정 구간을 달리고, 다시 천천히 뛰기를 여러 번 하는 것이다. 이 훈련에서 빨리 달리는 구간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훈련을 하면 중간에 멈춰버리고 싶을 때도 끝까지 버티게 되고, 매번 함께 견디면서 익숙해지면 훈련 때보다 수 십 배나 긴 거리에서 거뜬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신념을 갖고서 지금처럼 숨을 몰아쉬며 속도를 내야하는 구간을 함께 견딜 수 있다면, 성매매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성의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탈성매매를 위해 용기를 내고, 성매매 피해자 여성들을 이해하고 지원하고, 직장의 접대문화를 바로잡고. 상황은 다를지라도 이들은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가쁜 숨을 참아내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강세영(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성매매 없는 사회를 위한 대구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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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는,
[성매매 없는 사회 만들기 대구시민연대(34개 단체)]와 [평화뉴스]가 함께 마련해
2004년 12월 23일 첫 글을 시작으로 오는 2005년 2월 25일까지 모두 10차례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의 올바른 성문화와 인권을 위한 이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글 싣는 순서 -
차정옥(12.23), 강세영(12.30)
안이정선(1.6). 김희진(1.13). 김동옥(1.20).
박정희(1.27). 김양희(2.4). 영숙(2.11). 윤종화(2.18). 이두옥(2.25)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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