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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꼭 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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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으로 옥고 치룬 이재형(66) 선생 운명...지역 50여개 단체, 오는 24일 ‘민족민주장’ 지내기로
“평생 바라던 통일, 내 욕심이 너무 많았나...인혁당, 역사가 나중에 심판할 것”



‘사법살인’으로 8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그 일로 20년형을 선고받고 8년간 옥고를 치룬 이재형(66.사진) 선생이 어제(12.21) 저녁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대구경북지역 재야 민족민주운동의 ‘큰 어른’으로 살아왔지만, 그렇게도 바라던 통일과 명예회복의 날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지난 1938년 경북 상주에서 11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고 이재형 선생은,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돼 20년형을 선고 받고 8년을 복역했다.
그리고, 출소한 뒤 영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월혁명회(상임의장 노중선)> 회원과 <경북대 민주동문회> 고문으로 활동하다, 지난 10월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병생활을 하던 중 어제(12.21) 저녁 7시쯤 입원중인 영남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혁당은 실신할만큼 모진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역사가 나중에 심판할 것이다”

고인은 지난 1969년 부인 김광자(59)씨와 결혼해 영천에서 가전센터를 운영하며 지냈는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발표되기 두달 전인 ’74년 2월에 경찰에 연행됐다. 그리고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20년형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했다.

부인 김광자씨는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잡아갔는데, 몇 달 뒤에야 뉴스를 통해 인혁당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남편은 출소한 뒤에 인혁당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하시며 술로 울분을 삼키셨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또 “정보부에서 실신할만큼 모진 고문을 받아 수사관들이 남편(고인)을 부축해 끌다시피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인혁당 사건의 재심이 빨리 이뤄지지 않아 답답해 하시면서도, 조급하게 기다리지 않겠다. 역사가 나중에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내 욕심이 너무 많았나? 꼭 통일되는 걸 보고 싶었는데...”

고인은 숨지기 며칠 전, 투병중인 병실에서 부인 김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 욕심이 너무 많았나? 통일도 보고 싶고, 사회가 나아지는 것도 보고 싶었는데...”

고인과 15년동안 가까이 지냈다는 함종호(전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 의장)씨은 “고인이 폐암 판정을 받은 뒤 병원에 찾아가니, ‘내가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에 너무 목숨 걸었나? 그게 암이 된 건가’하실만큼 평생 굳은 신념을 간직한 분이다”고 회고했다.
함씨는 또 “고인은 우리 후배들에게 인격적으로 모범이 되신 분”이라면서 “늘 많이 베푸시고, 재야 민족민주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신 버팀목이며 큰 어른이셨다”고 고인의 인품을 떠올렸다.

또, 고인의 대학 10년 후배인 임구호(58)씨는 “뜻있게, 가치있게 사는 것에 대해서는 어버이 같은 분이고, 어렵고 힘들 때는 우리를 감싸안고 힘이 되 주시는 맏형 같은 분”이라고 회고했다.

대학 후배인 서훈(전 국회의원)씨도 “선배님(고인)은 그릇이 크신 분이며 늘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시는 분”이라면서 “지난 ’60년 2.28의거와 4.19혁명, 6.3항쟁, 3선 개헌반대투쟁, 민청학련, 6.10항쟁에 이르기까지 대구경북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셨다”며 고인의 삶을 기렸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대구 파티마병원에는, 함종호씨를 비롯한 지역의 재야 선후배들 뿐 아니라, 인혁당 사건으로 고인과 함께 옥고를 치룬 임구호씨와 인혁당 희생자 유가족들이 많이 찾아와 고인의 넋을 기렸다.

특히, 인혁당 희생자 유가족들은, 고인이 인혁당 사건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보지 못한 채 떠난 것을 가슴 아파하며 많은 눈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오는 24일 <민주통일지사 고 이재형 선생 민족민주장>..."앞서간 인혁당 희생자 곁에 안장"

한편, <사월혁명회>와 <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을 포함한 대구경북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평생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살아온 고인의 넋을 기려 <민족민주장>으로 장례 지내기로 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오는 24일 아침 8시 파티마병원에서 발인에 이어 거행되며, 고인의 유해는 경북 칠곡군의 현대공원묘지에 안장된다. 그 곳에는 앞서 간 인혁당 희생자들이 모셔져 있는데, 고인은 그들 희생자 곁에 안장될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어머니 이정문(86) 여사와 부인 김광자씨, 우용(34).수용(32) 두 아들이 있다.

고인은 평소 “살아서 천년보다 죽어서 천년을 살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끝내 보지 못한 통일, 그리고 역사의 진실.
고인은 그 끝없는 천년에 역사와 민족이 살아있음을 믿었던 것은 아닐까...
(빈소 053-959-4441. 함종호(장례집행위원장) 011-9700-3048)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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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화뉴스에 2004년 12월 22일 보도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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