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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 그 이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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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법과 생활 모두에서 완전히 폐지하자"


드디어 기나긴 논쟁의 끝이 보이는 듯하다.
여야가 호주제 폐지에 전격 합의했다니 말이다.
물론 아직 장담하기엔 이르다.
여전히 호주제를 붙잡고 늘어지는 세력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호주제는 전통이자 미풍양속이며, 호주제를 없애먼 가족간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가족이 해체되고 또한 가정이 붕괴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주제에서의 가족은 실질적인 가족관계를 규율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호주제가 폐지되어도 가족이 붕괴될 리 없다.
오히려, 호주제로 인한 가부장적 사고가 부부갈등을 조장해 가족해체를 촉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호주제가 관습헌법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노라고 떠벌이는 사람까지 있으니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호주의 권리가 거의 사라졌고, 호주제도 실제적으로 별로 기능하지 않으니 그대로 두면 되지 굳이 돈 들여서 폐지할 것까지 뭐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법과 제도를 허수아비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호주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그에 마땅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니 그렇게 에둘러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척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호주제로 인하여 남자, 남편, 아버지, 즉 모든 남성이 여성에 우선이다. 이는 남녀평등에 반하고, 부부평등에 어긋나며, 부모평등에도 역행한다.
호주제에 의하면, 가족은 호주를 중심으로 그 가(家)에 입적한 자를 일컫고, 호주는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남성이 호주가 되므로 그 남성 중심으로 가족이 형성되니 남녀평등에 반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예속되게 되므로 부부평등에 어긋나며, 자녀들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우위에 있으니 부모평등에도 역행한다.
결국 호주제는 성차별을 조장하는 것으로 헌법상 양성평등 조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법이 이러하니 사회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남성중심으로 돌아간다.
잘못된 법과 제도가 존속함으로써 그러한 법과 제도에 의해 인식 또한 잘못 형성되기에 문제는 심각하다. 사회 일반의 인식전환도 따라야겠지만 법과 제도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호주제의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우선 재혼가정을 보자.
민법상의 호주제와 부성강제조항 때문에 재혼가정의 경우 전남편 자녀와 계부의 성(姓)이 다르다. 이 때문에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는 불필요한 편견에 노출되며, 명절 때도 친지들 눈초리 때문에 어머니와 그 자녀는 깊은 상처를 입곤 한다.
더구나 계부의 자녀로 되어 있어도 호주가 따로 명시되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재혼할 때 여자가 데리고 온 아이의 성이 새 남편의 아이 성과 달라, 형제는 형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조부모는 며느리가 데리고 온 손자를 손자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혼모 가정도 마찬가지다.
홀로 아이를 낳아 자기 호적에 출생신고를 하고 잘 기르고 있을 때 느닷없이 나타난 예전의 남자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면서도, 그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며 자기 자식이니 자기 호적에 올리겠다고 한다. 뒤늦게 나타나서는 자기가 언제 버렸냐고 우기며 내 자식입네 하고는 빼앗아 가기 일쑤다. 자기 핏줄을 찾는다며 체면이고 도리고 다 뒷전이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동의 없이도 혼외자를 호적에 올릴 수 있게 만들어놓은 민법 규정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친아버지가 나타나 그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키길 원한다면 아무리 생모이고 자신의 호적에 올라 있더라도 이를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여자가 혼외자를 낳은 경우는 어떠한가. 법은 남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동의해줄 남자가 어디 있으며 그런 법이 없다고 한들 집안에 들일 수 있겠는가.

이혼 후 재혼하지 않고 사는 여자의 가정을 보자.
아이를 양육해도 아이는 여전히 전 남편의 호적에 올라 있고 내 호적에는 올릴 수도 없고 단지 동거인으로 기록될 뿐이다. 이혼하고 아이를 어머니가 키운다고 하여 그 아이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닌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호적에 올린다고 하여 아버지의 자식이 아닌 것도 아니건만, 아이를 어머니가 키우는데도 왜 아버지의 호적에 남겨둬야 하는가.

핏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남과 여의 구분 없이 인간을 인간으로만 바라본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내 핏줄,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할 것 뭐 있겠는가. 호주제 및 부성강제조항이 사라지고 성 변경이 가능하게 되는 민법 개정안에 의하면 재혼가정, 미혼모 가정, 이혼 후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사는 여자의 가정이 그 동안 안고 있던 문제는 일거에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가족이라는 일체감도 강하게 느껴질 것이고, 성이 달라 아이들이 겪는 고통도 없어질 것이다.

또한 민법상 호주제 속의 ‘가족’ 개념은, 실질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호주에 대응하는 형식적인 가족으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실제 가족의 개념과는 괴리가 있다. 민법 공부를 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가족은 현실에서 우리가 쓰는 가족 개념뿐이었다.
그러나 민법을 공부하고 가족의 개념이 호주를 중심으로 그 가에 입적한 자를 일컫는 것임을 새로이 알게 된 후에는 가족의 개념에 혼란이 생겨버렸다. 해서 어딘가에 제출하는 서류에 가족을 쓰는 난이 있었는데 고민하다가 민법상의 가족을 적어 넣은 후 제출했다. 후에 그것을 본 사람이 조카들도 가족에 포함되느냐고 물었다. 민법상 가족 개념으로 보면 내 조카들과 나는 같은 호적에 입적되어 있으니 분명 가족이 맞는데 말이다.

이렇다 보니, 실제로 한 가족이면서도 법률상 가족이 아니고, 법률상 가족이면서도 실제로는 가족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차이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을 것이다. 민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족의 범위가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바뀌게 되어 그 범위가 이제까지 실제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어진다. 따라서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해체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호주제 폐지 후 대안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다.
비용이나 국민 정서를 핑계로 또다시 가족부를 만들어 딸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본가족별 편제방식(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2대의 가족관계를 기록하는 것으로 부부 중 1인을 ‘기준인’으로 지정함)에 의하면, 또다시 기준인과 그 외 가족간의 불평등이 야기될 우려가 많다. 여전히 남아있는 남성우월의식 때문에 기준인이 남자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따라서 남녀불평등의 폐해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이참에 1인 1적제(개인 한명이 자신의 신분등록표를 갖는 것으로, 부모, 배우자, 자녀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만 기재함)를 만들어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자. 주민등록등본상에 호주 대신에 다시 기준인을 명시하여 사생활을 침해하지 말자. 부모의 이혼, 그로 인해 자연 발생되는 정신적 고통을 감당하기에도 벅찬데 왜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한단 말인가. 형제자매, 자식의 이혼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도 희망을 주자. 호주제는 남아선호사상을 낳는다.남아선호사상에 밀려 세상구경도 못하고 떠나는 딸들이 얼마나 많은가. 호주제가 사라지면 남아선호사상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성차별, 혈통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구조도 사라질 것이다. 호주제 하에서는 절반인 남성만 인간다운 권리를 갖는다. 호주제 폐지로 남녀 모두가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법상 호주제 폐지 뒤에 우리가 할 일은 실제 생활에서도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성들의 인식변화뿐만 아니라 어머니들의 발상의 전환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순간 자기가 언제 딸이었던가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남과 여, 아들과 딸 구별 말고 평등한 인간으로 대하고 동등하게 살아가자.
권미혜(변호사)

* 1966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권미혜 변호사는, 영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10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서른살에 법대에 진학해 올해 대구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현재 <종합법률사무소 다물>에서 일하고 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으로, <대구시 성매매방지대책협의회> 위원과 <우리복지시민연합> 운영위원, <대구 가정법률상담소>와 <대구 여성의 전화> 상담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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