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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은 거지 빨래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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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칼럼 14>..."2005년 가장 큰 과제는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안정망"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서 월드컵도로 쪽으로 빠지지 않고 좌회전 해 신천지아파트 황금동으로 이어지는 길에 야트막한 고개가 있다. 원래는 고개가 아니라 제법 높이가 있는 야산이었는데 지산범물지구로 연결되는 왕복 6차선을 내면서 산의 중간을 뭉턱 잘라 작은 고개 수준의 경사가 있는 신작로로 변해버린 길이다.

나는 오전 11시쯤 볼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서 이 길을 주로 통과하는데 언제부터인지 고개를 다 오를 즈음 왼편 산기슭을 쳐다보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기슭에는 무덤이 두 개가 있는데 이 시간 무렵이면 겨울 햇살이 정확히 그 무덤 부근을 제법 따듯하게 비추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곳에는 50대 정도의 거지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뭔가에 골똘히 빠져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거나, 아니면 이를 잡는지 끊임없이 자신의 옷자락을 뒤적이는 모습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 내 눈에 띄었다.

첫날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갔는데 몇 일째 계속해서 그 시간대에 그 자리에 앉아 있기에 나는 속으로 그 사내는 거지인데, 아마 간밤 추위 속에서 떨다가 아침 햇살이 펴질 때쯤 햇살이 따뜻한 무덤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 혼자 속으로 단정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사내가 거지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삶을 모색하는 뜻밖의(?) 현자인지는 직접 확인해 보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는 시골동네에 거지가 꽤 있었다. 아침마다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와 한 상 차려주면 뜨락에 걸터앉아 다 먹고는 덧붙여 빈깡통에 가득 밥을 얻어가곤 했다.
어떤 집에서는 거지도 그 집 식구들과 마루나 방에서 함께 밥을 먹게 하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거지들은 철저히 마루 아래 뜨락에서 밥을 먹게 했다. 어쩌다 할아버지가 거지들에게 올라와 마루에서 식구들과 함께 앉아서 먹길 권했지만 어머니가 그것을 불허했다. 할아버지의 권위를 생각해 최대한 양보한 것이 본청 대마루에서 멀찍이 떨어진 툇마루 귀퉁이 정도에서 밥을 먹게 했다. 어린 나는 거지와 함께 밥 먹기 싫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그런 처사를 속으로 절대 지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거지들이 겨울이 되면 밤에 잠은 어디서 자는지는 모르지만 낮이 되면 뒷야산 따듯한 무덤가에 한 가족이나 아니면 몇이서 쪼그리고 앉아 이를 잡거나 자기들끼리 잡담을 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범물동 산고개 무덤가의 거지를 보면서 나는 내가 어릴 적 자주 보았던 옛 풍경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어떤 때는 정겨움 같은 묘한 기분을 가지면서 잠시 추억에 젖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그 거지가 무덤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아니면 일광욕(?)을 즐길 수 없을 만큼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무덤가로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기상청 분석에 따르면 그 유명하던 대구의 분지추위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고 한다. 근래 몇 년 간은 매년 기온이 섭씨 3도씨 이상 올라 얼음도 얼지 않고 눈도 구경하기 어려운 대구의 겨울이 되었다. 그러나 특유의 겨울 대구 혹한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영하 7-8도를 내려가는 근래 며칠 간의 추위는 보통 사람의 두 어깨를 움츠려 들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눈이 오면 어른들께서 반드시 하는 말씀이 "거지들 빨래하기 좋겠다"는 것과 날씨가 심하게 꽁꽁 얼어붙으면 "거지 얼어죽겠다"고 말이다. 나는 어릴 때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눈이 오면 거지 빨래하기 좋고 추워지면 거지 얼어죽겠다니 거지가 뭐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 가만히 그 말을 생각해보면 옛날 우리 어른들은 참 따듯한 분들이었구나. 별나게 티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이웃공동체와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알려진 것처럼 최근 대구 불로동에서 5세 아동이 희귀 질병으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의 주검이 장롱 속에서 발견되어 더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대구 평리동에서는 40대 중반의 사내가 죽은 지 한참 오래 뒤에 발견되었다. 그 역시 정상적인 식생활을 못하고 굶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렇게 굶어 죽거나 죽지는 않았더라도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많은 사회학자 혹은 정치인들은 2005년 을유년 새해, 우리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사회의 양극화 극복과 빈부 차 해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미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빈부 차는 재앙 수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사회가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소득2만 불을 공언하고 있는 참여정부 아래서 현재 우리사회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할 난제들을 안고 있다. 당장 국가보안법을 비롯 올 2월 임시국회로 처리가 연기된 개혁법안들이 그렇고, 구렁텅이에 빠져 언제 헤어날지 모르는 경제활성화 문제도 그렇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 안전망 구축이다.

범물동 산고개 무덤가에서 햇볕 바라기를 하는 거지 사내를 만나는 것이 나같이 덜 떨어진 센치멘탈리스트에게 가끔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매제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 당사자와 우리사회에는 명백한 인격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올 겨울 날씨가 풀려 다시 따듯해지더라도 출근길에 그 거지 사내를 만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김용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시인. [대구사회비평] 발행인. 경북외국어대 교수)






* 195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용락 시인은, 지난 '8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푸른별>, <기자치소리를 듣고 싶다>, <민족문학논쟁사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으며, 지금도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을 맡아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일보] 논설위원과 [대구참여연대]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계간 <대구사회비평>을 펴내고 있습니다. 또, [경북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CBS대구방송]의 <라디오 세상읽기>도 매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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