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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잣대로 해댔던 가위질...”
-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

...“섣부른 예단이 부른 아찔했던 기억..."
2005년 01월 16일 (일) 14:30:05 평화뉴스 pnnews@pn.or.kr

   
‘기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여러 선배 기자들이 다녀간 자리에, 1년이 채 안 된 햇병아리 기자의 고백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지금껏 ‘기자들의 고백’ 코너를 채워왔던 많은 선배들의 글을 보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반성하고, 때로는 애잔한 가슴으로 종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몇 년 차”라는 말 자체를 쓸 수 없는 나의 고백은, 모험담도 없거니와 비판적인 눈을 들이대는 것은 더더욱 미숙할 뿐이어서 조심스러움이 앞선다.
“최소 3년이 지나야지 뭐가 좀 보인다”는 선배의 말을 떠올리면 “고백이나 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보았던가...”라는 생각뿐이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바꾸기 위해 선택한 ‘기자’.
어릴 적부터 꿈꿔온 길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기에 대안언론 기자를 망설임 없이 택했다.

햇병아리 기자가 생각하는 세상의 중심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정치권 이야기도 아니었고, 섬뜩한 범죄나 사건.사고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기에 기사 작성 능력이 조금씩 늘면서 자연스럽게 미담에 더 정성을 쏟았다. 그러면서 몇 몇 사람에게는 ‘미담 전문 기자’로 불려지기도 했다.

한 달 전쯤, 예전에 취재했던 한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이 잘 아는 동생 하나가 있는데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옷가게도 하면서 소극장 책임자로
있단다. 우선 연락처를 받아 적고 감사하다는 말은 했지만 왠지 “여느 자선가들처럼 살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겠거니”라는 생각에 그리 취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보름이 지난 뒤에야 어딘가 놓아두었던 연락처가 발견됐고, 기사거리가 없던 차에 잘 됐다 싶어 만난 그... 고운 첫인상과는 다르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굴곡 그 자체였다.
어려운 형편에 무용을 하고 싶어 서울까지 갔지만 24살에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9년간 식물인간. 깨어났을 때 남은 것은 남편에게 버려진 자신과 부모 없이 자라고 있던 아들뿐. 후유증으로 무용을 포기하고 민요가수로 활동하며 소극장을 꾸려 갈 곳 없는 50명 아이들의 어머니로 살기까지... 그 기사가 실리고 다른 신문사와 방송국으로부터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소중한 이야기를 내 머릿속 가위로 무참히 잘랐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면 지금도 아찔해진다. 그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짧은 잣대로 해댔던 수많은 가위질...
한정된 시간 안에 의미 있는 일만 담기 위해 무엇을 취재할지 ’노심초사‘ 고르는 기자들.
그 노심초사 때문에 “출입처에서의 하루가 짧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제대로 알아보겠다는 노력보다 섣부른 예단이 앞서 야단맞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그 ’노심초사‘가 녹슨 가위로 이뤄진 것은 아닌지 또 한번 경계하게 된다.

그런데 녹슨 가위질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중심을 잃은 ‘펜’인 것 같다.
최근 관심을 모았던 불로동 어린이 사망사건. 아사다, 병이다 호들갑을 떨면서 사회안전망 구축 어쩌고 떠들었지만 진정 아이의 죽음을 슬퍼한 기자는 얼마나 될까...

국가보안법 폐지...지난해 여름을 시작으로 가장 많이 취재한 기사면서 나는 최근에야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생긴 건지, 왜 잘못된 법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언론사의 기자임을 떠나서, 한 사람의 지성인으로 당당한 한 글자를 쓰기 위해서라도 솔직하게 부끄러워하고 노력하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관공서에서 기자들에게 대접하는 밥과 차, 공짜 전화와 인터넷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는 것에 양심 찔려했던 날들, 이런 노력 한 톨만으로 그 밥값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햇병아리'라는 말을 채 떼 내기도 전에 '기자'라는 이름으로 한 어설픈 고백... 기자로 생활했던 내내 '기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기자는 무엇을 봐야하는지' 선배들의 진심 어린 충고 속에서, 때로는 내가 봐도 아닌 것 같던 일부 선배들의 모습 속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비록 잠시 기자라는 신분을 내려놓으려 하지만 기자만이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동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했던 고백과 반성을 잊지 않는다면 어디에 있던 또 다른 형태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화뉴스 배선희 기자(pnsun@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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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자기 스스로 반성하고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의 글을 써 주신 기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매일신문 조두진 / 2. 연합뉴스 김용민 / 3. TBC 양병운 / 4. 한겨레신문 박주희
5. 영남일보 김기홍 / 6. 내일신문 최세호 / 7. 경북일보 김정혜 / 8. 대구신문 최용식
9. 뉴시스 최재훈 / 10. 대구일보 노인호 / 11. CBS대구방송 권기수 / 12. 대구MBC 도건협
13. 한국일보 전준호 / 14. 경북일보 이기동 / 15. TBC 이혁동 / 16. YTN 박태근
17. 영남일보 백승운 / 18. 매일신문 이창환 / 19. 대구신문 최태욱 / 20. 영남일보 정혜진
21. 대구일보 황재경 / 22. 오마이뉴스 이승욱 / 23. 경북일보 류상현 / 24. 교육저널 강성태
25. 매일신문 한윤조 / 26. 대구MBC 심병철 / 27. TBC 이지원 / 28. 대구신문 윤정혜
29. 경북일보 김종득 / 30. 영남일보 이춘호 / 31. 매일신문 최정암 / 32. TBC 이종웅
33. 대구MBC 윤영균 / 34. 영남일보 이진상 / 35. 평화뉴스 배선희
(평화뉴스 [기사 검색]에 ‘기자들의 고백’이나 기자의 이름을 쓰면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뉴스 http://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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