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제대로 알고 써요”
- 경향신문 백승목 기자

평화뉴스
  • 입력 2005.02.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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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는 나름대로 단단하게 한다고 자부했는데...”
"`한 건'을 위해 사는 기자들...그러면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새해 1월은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기자들도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때다. 묵은 해에 무엇을 잘 했고, 또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좀 더 나은 기자가 되고자 다짐을 한다.

`메신저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지사(志士) 같은 기자가 되겠다'는 거창한 생각들은 언제부터인가 나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자 명함을 들고 다닌지도 십수년이 되다 보니 메너리즘에 빠진 탓일까.

분명한 것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개선되는 것들을 보며 짜릿한 만족을 얻고, 어깨가 으슥해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한 건 했다'고 생각되는 날 귀가하는 발걸음은 더 없이 가볍다.
만약 낙종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기자들은 그와 같은 `한 건'을 위해 그날 그날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날이 갈수록 더하다.

신문시장의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루 하루는 정말 피를 말린다.
마치 정해진 시간에 링 위에서 상대를 때려눕혀야 하는 권투경기 처럼 말이다.
독자에게 어떤 유익한 정보를 전달할 것인지, 사회 병리현상을 일소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는 자연 뒷전으로 밀린다.

새해 초순에 나는 철도청 직원인 듯한 한 네티즌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내가 `한 건'의 부담에 눌려 `얼씨구,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으로 쓴 `희한한 철도체계-무궁화호가 새마을호보다 더 빠르다'는 기사에 관한 메일이었다.

그는 기사가 게재된 목적을 충분히 인정했지만 내용상의 문제점을 조목 조목 지적하면서 `뭘 좀 알고 써라'고 질타했다.

당시 나의 기사는 대충 이러했다.
"하루 두차례 포항을 출발, 동대구로 향하는 새마을호가 요금이 더 싸고 정차역도 많은 무궁화호보다 느리게 운행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마을호가 포항을 출발, 경주 한 곳만 정차하고....(중략)....동대구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45분이다.
이에 비해 무궁화호가 안강.금장.영천.하양 등 4개의 정차역을 거쳐 동대구에 도착하는데는 1시간38분이 걸려 새마을호보다 7분가량 빠르다.
반면 요금은 새마을호가 8,600원으로 무궁화호(5,800원)보다 더 비싸다.
새마을호가 더 느린 것은 포항을 출발, 경주역에 도착한 뒤 승무원 교대와 기관차 방향 전환 등의 과정에서 약 15~20분 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이하 생략)"

내게 보내진 메일은 `새마을호가 경주만 서는 것이 아니라 경주에 앞서 안강, 그리고 경주를 지나 영천에도 정차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열차가 한번 정차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분에서 5분은 걸리고, 이러한 잦은 정차 때문에 결국 포항~동대구간 소요시간이 길어진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덧붙였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글은 어눌해도 취재는 나름으로 단단하게(?) 한다고 자부해 온 내가 이런 어의없는 실수를 하다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철도청으로부터 "열차의 시간개념을 도입해 불합리한 요금체계를 재조정하겠다"는 답변을 들어 위안이 되긴 했지만 그 네티즌의 따가운 질타는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수학문제를 푼 학생이 답은 맞췄지만 풀이과정이 엉망이어서 해당 교사로부터 꾸중을 듣는 기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새해설계를 했다-`제대로 알고 똑바로 쓰자'.

경향신문 백승목 기자(전국부.포항. smbaek@kyunghyang.com)

(이 글은, 2005.1.30 평화뉴스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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